Q.옛날에는 무겁고 커다란 돌을 어떻게 쌓아 올렸을까요?
높이 13.4m의 국보 제112호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높이 13.5m의 국보 제86호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등과 같이 상당한 높이를 자랑하는 석탑의 경우, 꼭대기 까지 무거운 석재를 어떻게 올렸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흙비계 가설(흙을 이용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흙을 석탑 외부에 완만히 경사지게 쌓아 더미 를 만든 후, 그 위로 돌을 굴려 올린 다음 흙을 제거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익산 미륵사지 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기중기가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두 개의 간대를 연결하고 맨 위에 도르래를 달아서 거대한 석탑의 석재를 끌어 올렸던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1,400여 년 전에도 이미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현재의 건설 장 비와 같은 기능을 가진 기중기를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Q.탑의 층수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우리나라 탑은 홀수층이 대부분인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짝수층으로 조성된 경우, 그 이유도 함께 알려주세요.
탑의 층수는 지붕돌을 세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탑의 층이 홀수인 이유는 수직적인 의미에서 홀수가 영원한 생명의 수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수평적인 각, 기단 에 적용되는 수는 짝수입니다. 이것이 탑에서 나타나는 홀수와 짝수의 원칙입니다. 홀수는 양(陽)의 수이고 짝수는 음(陰)의 수로, 탑의 구조는 불교의 교리나 사상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고대 동양의 우주관인 음양오행의 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4각 3층이나 4각 5층, 8각 9층과 같은 구조가 그 예입니다.
흔치는 않지만 짝수로 되어 있는 석탑이 있습니다. 바로 10층인데요. 이것은 단순한 ‘10’이 아니라 ‘3’과 ‘7’의 조합으로 볼 수 있습니다. 탑을 자세히 살펴보면 평 면이 아(亞)자 형을 이루는 아랫부분의 3층과 일반적인 석탑과 같은 모양으로 7층이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탑 속에서 귀한 유물들이 발견되는 이유는?
탑이란 열반한 석가의 유골을 봉안하여 모시기 위해서 만든 묘(부처의 무덤)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탑을 만들면서 탑 내부에 신사리(身舍利)라고 부르는 유골을 상징적 으로 봉안하였습니다. 또한, 석가는 열반에 들기에 앞서 “나에게 의지하지 말고 내가 설한 법과 너 자신에 의지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부처의 설법을 담은 경전인 법 사리(法舍利)도 탑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담아 모셔둔 것이 사리장엄구인데, 후대에 탑을 해체하여 수리·보수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리장엄구는 탑의 몸돌과 지붕돌이 차례로 얹어져 각 층을 이루는 탑신부 내부에 주로 위치합니다. 발견되는 유물로는 소탑이나 금동제 사리함, 불상, 다라니경 등이 있으며,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대표적입니다.
지난호
<기술 그리고>에 소개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언제 세워졌으며, 이 석탑이 갖는 남다른 가치가 있다면?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어 있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7세기에 지어졌습니다.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양식이 목탑에서 석탑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어 한국 석탑의 기념비적인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 무왕 대에 미륵삼존을 모시기 위해 미륵사를 창건할 때 함께 건립한 것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돌로 만든 석탑 말고, 나무나 벽돌로 만든 탑을 소개해주세요.
우리나라에서도 나무로 만든 목탑이 건립되었으나, 여러 차례의 전란과 자연적 요인 등으로 충북 보은군 속리산에 있는 국보 제55호 법주사 팔상전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높이 22.7m의 법주사 팔상전은 내부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여덟 폭의 그림으로 그린 팔상도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팔상도는 고대 불교사원에서 탑 안에 주로 봉안되었기 때문에 법주사 팔상전은 탑과 같은 기능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높이 약 80m(아파트 기준으로 약 30층)의 웅장한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역시 지금은 그 실체가 없지만, 황룡사역사문화관에 가면 1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모형탑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탑은 흙으로 구운 작은 벽돌을 촘촘히 쌓아 올린 형태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전탑으로는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국보 제16호),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보물 제189호) 등이 있습니다.
글‧김환대(문화재 해설사)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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