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삶이 내세까지 이어지길 바라다
고분벽화 제작 초기인 3세기 중엽부터 5세기 초 벽화의 주제는 생활풍속이다. 무덤 주인의 생전 생활을 재현하는 여러 장면을 무덤 안 석실의 벽과 천장에 그려 넣어 내세에도 같은 삶이 계속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경우로, 계세적(繼世 的) 내세관에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생활풍속 벽화의 소재로는 무덤 주인의 초상, 시종과 군사들을 거느린 행렬, 산야에서의 사냥, 춤과 노래, 곡예를 즐기는 부부 등을 선호했다. 안악3호분, 덕흥리벽화분, 각저총 등이 초기 벽화고분을 대표하는 유적이다.
벽화 제작 중기인 5세기 중엽부터 말기는 고구려의 전성기로 벽화의 주제가 다양해진다. 기존의 생활풍속 외에 장식무늬, 사신(四神) 등이 벽화의 주제로 더해지며 여러 주제가 혼합된 사례도 자주 발견된다. 연꽃을 중심으로 한 장식무늬 주제 고분벽화는 불교의 전생에 대한 내세관이 유행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평양의 동명왕릉이나 집안의 산성하983호분 등은 연꽃 장식무늬가 벽화의 주제로 사용된 경우다. 집안의 장천1호분은 앞방의 천장고임에 여래상과 보살상이 그려져 있고, 무덤 주인 부부의 관이 놓인 널방은 연꽃으로 장식되어 무덤 주인 부부가 불교의 낙원인 정토에 왕생하기를 간절히 바랐음을 알게 한다.
고분벽화의 주인공 ‘사신’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태양이 지나는 길인 황도(黃道)의 28개 별자리를 7개씩 방향을 나누어 형상화 시킨 우주적 방위신이다. 사신은 고분벽화 제작 초기부터 벽화의 소재로 등장하지만 비중이 크게 높아지는 것은 중기가 끝날 무렵이다. 대동의 덕 화리 1호분과 2호분은 널방의 세 벽에 청룡, 백호, 주작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북벽에만 무덤 주인과 관련한 행렬과 현무를 함께 묘사해, 벽화의 주제가 사실상 사신인 경우에 해당한다.
후기인 6세기 초부터 7세기 전반 사이에 제작된 고분벽화의 주제는 사신이다. 진파리1호분이나 4호분 속 사신을 묘사한 부분은 중국 남북조와의 회화 교류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강서대묘, 강서중묘 등 마지막 시기 고분벽화의 사신은 6세기 후반 이 후 사신을 표현하는 고구려 고유의 회화 양식이 성립했음을 보여준다. 강서대묘의 현무는 배경 묘사를 생략해 공간적 깊이를 느끼게 함으로써 고구려 미술이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음을 잘 보여준다.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한 ‘고분벽화’
고구려는 589년 중국을 재통일한 수나라와 갈등을 겪다가 598년부터 전쟁 상태에 들어간다. 수의 뒤를 이은 당나라와의 전쟁도 피하지 못하게 된 고구려는 7세기를 고비로, 수준 높은 미술 작품을 담아왔던 벽화고분 축조에 어려움을 겪는다. 668년 신라와 당 연합군에 의해 평양이 함락되어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 문화의 가장 주요한 산물이기도 한 고분벽화는 버려지고 잊힌다.
하지만 고구려 고분벽화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70년에 걸친 중국 왕조들과의 전쟁으로 상당 부분이 손실된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가 고분벽화를 통해 복원되어 다시금 평가받을 기회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5세기 내내 그리고 6세기 전반까지 동북아시아의 패권국가로 군림하며 동아시아 문화의 호수 역할을 자임하던 고구려의 의식주, 놀이, 예술, 종교, 문화, 사회제도 전반을 재발견할 길을 찾아낸 셈이다.
성(城)과 고분, 벽화는 고구려 문화가 독자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구현한 좋은 사례이다. 특히, 고분에 그려진 벽화는 외래문화에 대해 개방적이면서 고유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고구려인의 정신을 담고 있다. 고분벽화는 고유의 색에 보편성 과 국제성을 더한 고구려인의 문화적 재창조를 엿볼 수 있는 생생한 역사자료이자 예술작품이다. 2004년 북한과 중국에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이 때문이다.
고분벽화는 밀폐된 공간에서 보존될 것을 전제하면서 제작된 미술작품이다. 이에, 무덤 주인의 내세 삶을 위해 그려졌던 벽화의 보존 환경이 변화하면 오래지 않아 제 모습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구려 고분벽화가 세계유산으로서 현재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관심과 연대, 연구 및 지원이 필요한 때이다.
글‧전호태(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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