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도기와 자기 감별
역사적으로 도기(陶器)는 인류의 탄생과 궤를 같이했다. 주변의 점토로 형태를 완성하고 불에 구우면 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자기(瓷器/磁器)는 중국의 경우 한(漢)대 이후, 서양은 17세기 이후, 우리는 고려청자가 제작되는 10세기 이후에 등장했다.
또한, 유물이 아닌 문헌에 자기가 기록된 것은 조선시대 이후로 여겨진다. 고려시대만 해도 고려청자를 청옹(靑甕), 청사기(靑砂器) 등으로 기록했고 명확하게 자기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후 조선시대 백자의 유행과 함께 문헌에 도기와 자기를 구분해서 기록했으며, 19세기 북학파 학자들의 문헌에는 도기, 자기, 사기, 옹기, 토기 등으로까지 나누기도 했다. 도기와 자기를 구분하는 방법은 두드려서 ‘챙’하는 소리가 나면 자기요, ‘퍽’하는 소리가 나면 도기로 보면 된다고 했다. 도기와 자기를 구분하는 정확한 방법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손쉬운 감별법을 제시한 것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당시에도 도기와 자기가 물리·화학적 성질이 다름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각기 사용하는 원료와 원료의 생산지, 가마와 장식, 굽는 방법 등의 차이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양의 경우 도기(Earthenware)와 자기(Porcelain), 그리고 그 사이에 석기(Stoneware)라는 것을 설정해서 굽는 온도와 색상 등의 차이로 구분하고 있다. 무엇보다 몇 ℃에 구운 그릇이냐가 가장 중요했고, 철분이 적어야만 자기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 자기라 함은 적어도 1250℃ 혹은 1300℃ 정도로 구울 수 있어야 하고, 색상은 반드시 흰색이어야 한다. 유약 역시 잿물을 바르는 것은 기본이고, 몇 번을 굽더라도 최고 온도가 이러한 기준에 도달해야 한다.
반면 도기의 경우는 굽는 온도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색상 역시 흰색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유약을 발랐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굽는 온도가 낮으면 전부 도기에 속한다. 1200℃ 정도에 구운 푸른색을 띠는 고려청자의 경우, 서양에서는 석기로, 동양에서는 자기로 구분했다.
원료에서부터 차이를 갖는 도기와 자기
도기와 자기를 원료에서부터 성형, 장식, 유약, 소성(굽기) 등 몇 가지에 따라 비교해보자. 도기와 자기를 가장 쉽게 구별하는 방법의 하나는 그릇의 기본 재료를 ‘흙’으로 썼느냐(도기), ‘돌’로 썼느냐(자기)이다.
우리나라의 도기는 선사시대 토기부터 대부분 산비탈이나 산 아래, 논밭 아래 지하 1~2m 정도의 점토를 원료로 사용했다. 끈기가 강하고 색상은 당연히 철분이 많아 회색이나 갈색을 띠었다. 정상의 하얀 바위가 풍화되어 산 아래로 내려온 흙으로, 여러 불순물이 섞여 주황색이나 검붉은 색을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료의 화학 성분 중에는 규석보다는 알루미나(Al2O3) 함량이 높고, 철분도 3~5% 정도로 꽤 높다. 광물학적으로 보면 장석이나 규석, 카올리나이트 등이 함유되어 있지만, 자기로 분류되는 조선시대 백자와의 차이점은 같은 장석이라도 높은 열에 견디기 어려운, 내화도(열에 견디는 정도)가 낮은 장석이 함유되어 있고, 내화도를 높여 주는 규석의 비율이 낮다는 점이다.
반면 자기의 경우는 조선시대 백자처럼 산 정상의 바윗덩어리를 으깨어 가루를 내어 만든다. 그렇다고 화강암 같은 바위가 아니라 장석과 규석, 알루미나, 석회석 등이 적당히 섞여 있는 백토여야 한다. 자기는 규석의 성분비가 60% 이상으로 높고, 장석이나 도석 중에도 내화도가 높은 광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제 · 성형 · 유약 등 도기와 자기의 차이점
흙 따위를 물속에 넣고 휘저어 잡물을 없애는 수비(水飛)와 정제(精製)에 있어서도 도기와 자기는 다르다. 도기는 점토를 간단히 물에 씻어서 불순물을 거르고 건조한 후 막대로 두들기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기의 경우는 물에 씻은 후 불순물과 철분을 제거하고, 체로 걸러서 일정한 크기 이하의 입자로 만든다. 건조 시간도 상대적으로 길고, 건조 후 다시 막대로 두들기거나 발로 밟는 과정을 더욱 세밀하게 진행해서 입자 사이의 틈을 좁혀 공기를 제거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경우 입자 사이가 더욱 치밀하고 강도도 세지만, 도기는 입자의 크기를 제어하지 않아 공기구멍이 보일 정도로 치밀하지 않다.
성형기법 또한 자기와 도기는 다르다. 우리가 흔히 보는 발이나 손, 혹은 막대기, 전기 등의 힘으로 회전시키는 물레 위에 점토를 놓고 가운데를 손으로 구멍을 내어 원심력을 이용해 원을 만들며 성형하는 것은 자기식 성형법이다.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모두 이러한 성형법을 사용한다.
반면 도기의 경우는 점토를 길게 가래떡처럼 뽑아서 코일로 감거나, 점토판을 만들어 원을 쌓아가며 만드는 테 쌓기 기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성형법은 도기와 자기 구분 없이 얼마든지 상호응용이 가능해서 참고 사항에 불과하다.
장식의 경우 대부분의 조각 기법은 도기와 자기를 구분할 필요 없이 다양했다. 음각이나 양각, 투각 기법은 물론이고 고려청자에 사용된 상감기법이 도기에도 사용되었다. 별도로 조각한 후 몸체에 부착하는 첩화기법도 양쪽 모두 나타난다. 다만 붓을 사용하는 조선백자의 청화기법은 코발트를 주성분으로 하는 청화 안료가 높은 온도에서 구워지는 고화도 안료이기 때문에 자기에만 사용되었다. 그러나 같은 코발트 안료라도 중저화도의 경우에는 도기에도 사용했고, 산화철은 어디에나 사용 가능했다.
다음으로 유약을 살펴보자. 유약은 크게 나무 재를 주원료로 하는 재유와 납을 주원료로 하는 연유로 나눈다. 이 두 유약은 서로 녹는 온도가 다르다. 연유는 700℃ 전후에 녹아내리기 때문에 주로 도기에 바른다. 재유는 고화도용으로 1200℃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 자기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고화도의 재유를 발라서 백자를 만들고 이후 연유를 다시 덧발라 낮은 온도에서 굽기도 하는데, 중국 명대 이후 등장하는 오채자기가 그것이다. 도기의 경우 반드시 유약을 바르지 않아도 되지만, 자기는 반드시 고화도 유약을 입혀야 한다.
소성의 경우 사용하는 가마와 도구, 온도 등에서 차이가 있다. 도기 가마의 경우 지하식과 반지하식, 지상식이 있고 아궁이와 굴뚝, 소성부로 구성되어 있다. 불을 때는 방식도 기본적으로 공기를 지속해서 주입하는, 다시 말해 별도의 압력이나 연료 공급량의 차이가 없는 일정한 방식이다. 반면 자기 가마의 경우 반지하식과 지상식이며, 아궁이와 굴뚝, 소성부 이외에 압력과 연료 공급량을 조절하여 산소를 가마 안에 넣거나 차단할 수 있는 측문과 구멍 등이 설치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도기와 자기의 구별은 다양하고 자연과학적인 지식을 필요로 한다. 도자사 측면에서 보면 도기에서 자기로, 점차 저화도에서 고화도 소성으로, 다양한 장식이 가능하고 강도가 강한 그릇으로 발전하였다. 사용이 편리하고 바라만 보아도 기분 좋은 아름다운 그릇이면, 도기든 자기든 도자기 하나로 통일한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
글‧방병선(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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