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안동 문화

흙을 터전 삼아 살아온 우리네 풍경 - 김홍도의 <춘일우경.과 <논갈이>

이산저산구름 2017. 3. 14. 09:36

 

봄날 농촌의 생활상을 담다
봄이 되자 부드러워진 땅은 농작물을 길러낼 수 있는 터전이 된다. 흙이 너무 얇고 무르면 씨앗이 뿌리내리기 힘들고, 너무 두껍고 단단하면 움트기도 전에 말라버린다. 세 번 네 번 깊게 간 땅은 얇은 땅에 거름을 내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몸으로 보고 배운 농업지식이 남정네의 머릿속에 꽉 들어차 있다. 팔과 다리를 걷어붙인 모습이 쟁기질을 시작한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지게를 벗어놓기가 무섭게 이랴! 이랴! 쟁기질하는 목소리가 우렁차다. 그의 뒤쪽에서는 두 사람이 쟁기질한 흙을 괭이로 으깬다. 굵게 덩이진 흙은 고르게 으깨야 씨 뿌리기가 수월하다. 밭갈이하는 남정네들 옆쪽에서 아이를 업은 아낙네가 나물을 캔다. 오늘 저녁은 쑥국이다. 밭 갈고 괭이질하고 나물 캐는 사이로 딸랑거리는 워낭소리가 울려 퍼진다. 봄날 농촌에 가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춘일우경(春日牛耕)>은 김홍도의 《행려풍속도병》에 들어있는 작품이다. 병풍 그림이라 세로로 긴 화폭이지만 인물, 나무, 소를 지그재그로 배치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1795년 김홍도의 나이 51세 때 완성한 작품이다. 그의 풍속화는 각 인물의 표정과 태도가 마치 이야기하듯 생생하다. 당시 사람들의 농사짓는 풍속과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백 편의 논문보다 훨씬 더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 시대 사람들이 하던 일은 무엇이고, 어떤 옷을 입었으며, 무엇을 하며 여가를 보냈는지, 또한 춤출 때는 어떤 악기를 사용하는지, 길쌈할 때 아이는 누가 돌보는지, 밭을 갈 때 소는 몇 마리를 썼는지 등 시시콜콜한 생활상이 드러나 있다.


농사의 철을 알 수 있는 풍경
김홍도의 작품 중에 봄갈이하는 풍경이 또 있다. 봄갈이는 겨우내 잠든 땅을 갈아엎고 흙덩어리를 부수는 작업이다. 밭갈이와 논갈이가 이에 해당한다. 《단원풍속화첩》 속 〈논갈이〉에는 쟁기를 이끄는 소가 두 마리다. 땅이 아주 단단하거나 질척하다는 뜻이다. 뒤쪽에 있는 남정네들은 쇠스랑으로 땅을 고른다. 이 작업이 끝나면 논에 물을 대고 써레질을 한 뒤 모내기를 할 것이다. 제목을 〈논갈이〉라 붙였으나 논갈이인지 밭갈이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주변에 나무가 보이지 않아 논으로 추정했을 뿐이다. 〈논갈이〉라 추정한 이유는 또 있다. 쇠스랑질을 하는 남정네가 웃통을 벗어부쳤기 때문이다. 밭갈이 때보다 날씨가 더 많이 풀렸음을 시사한다. 계속 일을 하다 보면 더위를 느낄 수도 있는 날씨다. 밭갈이와 논갈이를 같은 시기에 하는 경우도 있으나, 논갈이는 논에 물이 있어 질척하기 때문에 밭갈이보다 조금 늦게 한다. 이것이 〈춘일우경〉보다 제작 시기가 빠른
<논갈이>를 나중에 소개한 이유다. 〈춘일우경〉이 들어있는 《행려풍속도병》에는 나무와 언덕 등 배경이 자세하게 그려진 반면, 〈논갈이〉가 포함된 《단원풍속화첩》은 배경을 생략하거나 간략하게 그린 것이 특징이다.


삶을 일구는 것, 그것이 농사!
우리 민족은 농사와 함께 살아왔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얘기했듯 농사는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다. 농부들만 농사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다. 왕사(王事) 또한 오직 농사를 제대로 짓게 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다. 제사에 올리는 자성(粢盛: 그릇에 담아 제물로 바치는 곡식)은 물론, 생활하는 모든 물자가 농사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현명한 왕들은 깊은 구중궁궐에서도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를 붙여 놓고 농사짓는 어려움을 잊지 않았다. 궁중에서 중화절(中和節)을 기념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중화절은 궁중에서 농사철의 시작을 기념하던 날로 음력 2월 초하루다. 만물이 소생하는 경칩 전후에 있는 절일(節日)이다. 중화절은 음력 3월 3일의 상사절(上巳節), 음력 9월 9일의 중양절(重陽節)과 함께 삼령절(三令節)로 일컬어질 만큼 중요하게 여겼다. 조선에서는 1796년(정조 20)에 중국의 풍습을 본떠 처음으로 중화절을 시행했다.


무기보다 낫이나 호미 등의 농기구를 먼저 만들게 했던 이유도 농사가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때를 맞추는 것이다. 나라에서는 군대를 조련하는 일을 추수를 마친 10월과 밭갈이하기 전인 2월에 시행하도록 했다. 오죽하면 농사에 부리는 소는 죽이지도 않는다 했을까. 천하의 근본인 농사의 공은 전부 경우(耕牛)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 상고시대의 정치를 기록한 『상서(尙書)』 「홍범구주(洪範九疇)」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 ‘먹는 문제’라고 적혀 있다. 고대에 천자나 제후가 해마다 봄철에 논밭을 가는 춘경(春耕)을 하기 전 직접 쟁기를 잡고 땅을 가는 시범을 보인 이유도 농업을 중시한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봄 농사는 씨를 뿌리는 파종에서부터 시작된다. 파종을 잘해야 가을걷이를 기대할 수 있다. 파종하려면 그 전에 준비 작업을 해야 한다. 농부들은 1월에 호미, 삽, 괭이, 쇠스랑, 쟁기 등의 농기구를 손질하고 2월에야 비로소 봄갈이를 시작한다. 봄갈이, 여름 김매기, 가을걷이 등의 삼농(三農)을 끝내면 그제야 비로소 수확이다. 쌀 한 톨이 입에 들어오기까지 이렇게 많은 공력과 땀이 필요하다. 농사는 밭이나 논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이나 뛰어난 인재를 키우는 것도 농사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인문정신을 지키는 것도 농사고, 연구자가 백신을 발견하여 질병을 물리치는 것도 농사다.


예나 지금이나 흙에 터전을 두고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다. 봄갈이부터 시작된 농촌 일은 파종, 모내기, 가래질, 논매기, 밭매기, 시비, 타작, 추수까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농부들은 농사짓는 일이 아무리 팍팍해도 묵묵히 순응하면서 산다. 힘들다고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거나 엄살 피우지 않는다.

글‧조정육(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