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안동 문화

원림에 온 이른 더위

이산저산구름 2016. 11. 25. 13:53

 

 

 원림에 온 이른 더위

(글/사진/백소애_편집기자)

 

남선면 원림
남선면 원림으로 간다. 대구방향 남안동 검문소를 지나 우측 남선방향으로 고개를 틀어 솔고개 가든에 들어서면 원림이다. 계속 직진하다보면 고즈넉한 풍경에 신축 건물과 기존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동네가 나오는데, 입구 비석에는 노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느티나무 옆과 맞은편에는 두기의 선돌이 서 있다. 선돌은 남선면 원림리 양지마을 어귀 도로변 동북쪽과 서남쪽에 위치한 높이 130cm의 청동기 시대의 것이다. 원림교회에서 남동쪽으로 150m 정도 떨어져 마을을 지키고 서 있다. 잘 닦여진 도로를 마주 보고 양지마을과 노암마을 사이에는 다래들이 펼쳐져 있다.


원림은 남선면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2008년 12월 현재 면적은 7.84㎢이며, 총 197가구에 458명(남자 238명, 여자 22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원림1리와 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노암, 서원, 양지마, 손고개, 구석마, 토갓마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동쪽으로 현내리, 서쪽으로 남후면 무릉리, 남쪽으로 의성군 단촌면, 북쪽으로 수상동과 이웃하고 있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남선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노암리, 노림리,원리, 토파동, 외하동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안동군 남선면 원림리로 개편되었다. 이때 원리와 노림리의 ‘원’자와 ‘임’자를 따 원림리라 하였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남선면 원림리가 되었다.


이곳의 자연마을 중 손고개(일명 손치)는 손씨들이 모여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구석마(일명 우촌)는 구석진 곳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옥토끼가 보름달을 바라본다는 지형인 ‘옥토망월형(玉兎望月形)’은 풍수가들이 일컫는 명당의 하나인데 이곳 토갓도 그러한 명당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노암은 권씨가 일직에서 이주하여 와 살 때 마을 이름에 ‘암(巖)’자를 쓰면 좋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원(일명 원리)은 1653년(효종 4년) 비지(賁址) 남치리(南致利)를 배향하기 위한 노림서원(魯林書院)이 창건되었다가 1868년(고종 5년) 철폐된 뒤, 서원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노림천 지류가 마을 가운데를 지나고, 하천 양쪽에 들과 구릉지가 펼쳐져 있다. 서원마을 동쪽에는 천지산이 있고, 부근에 강정골, 재인절골, 새절골, 혈래골, 독산이 있다. 토갓마 앞에는 토선지(兎先池)가 있다.

새식구 맞은 노암마을
올해 일흔아홉 된 강씨 할머니를 느티나무 아래서 만났다. 할머니는 열여덟에 권씨 가문에 시집 와 자식들 건사하고 타지로 다 내보냈다. 영감님은 9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마을입구에 버티고 선 느티나무는 할머니가 시집온 다다음해쯤인가 심었더랬다.
“원래는 여 옻낭구가 있었는데 태풍에 쓰러져뿌랬어. 이 느티나무는 내가 시집오고 이태 후던가? 그때 심었지.”
할머니의 고향은 안동 시내다. 대구에 있는 자식들이 한번 씩 찾지만 ‘즈그들도 즈그 생활’이 있는 터라 그리 자주 오지는 못한다고 한다.
“여가 인자 신도시라카데. 텔레비에도 나왔다카던데. 원래 권가가 많이 살았는데 지금은 많이 나가부렀어.”
할머니는 챙모자를 고쳐 쓰며 보행기를 다잡고 가던 길을 다시 간다.
신축건물이 많이 보이는 이곳 노암길에 몇 해 전부터 마음 맞는 이들이 이웃해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 그렇게 들어온 집이 열댓집, 전원주택부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시내와 가까워 교통편이 크게 나쁘지 않고 주산인 갈라산이 버티고 선 형세며 지형이 배산임수라 명당이고 풍경도 좋다.

인근 사람들이 이곳에 하나둘 이주해 사는 모양새를 본 어떤 이들은 원림 문화마을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시인과 교사, 대학교수와 NGO활동가들이 터를 잡고 있어서인가 자연스레 바깥에서 본 사람들이 부르게 된 명칭이다. 이곳에는 피재현씨가 운영하는 서각공방 ‘노암공방’이 자리하고 있다. 국제유교문화서예대전 서각부문 특별상을 수상한 그는 몇 해 전부터 서각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작년에 문을 연 공방에는 그의 작품이 걸려있다. 공방 앞마당에서는 장난꾸러기 아이 하나가 자갈을 고르며 놀고 있다.


가문 날이 계속되어서인가 좁은 도랑에 흐르는 물조차도 반가웠다. 노암길 골목에는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담장으로 고개 내민 장미는 마치 거대한 장미다발 같다. 폐가의 흙벽은 허물어지고 있고 논에는 개구리밥이 한창이다. 기존의 주택과 마주하고 있는 신축주택이 마을 사람들과 새로 이주해온 이들의 조합과 같다. 골목 안 모기장을 덮어둔 원두막에는 선풍기까지 달아놔 여름 대비를 단단히 하고 있고 새들은 사람을 무서워할 줄 모르는지 도망쳐 날아가지 않았다.

양자 바른 마을 양지마
원림에는 양파와 마늘수확이 한창이다. 양파를 적재하는 트럭에는 인부 여럿이 달라붙어 있다. 양파값이 폭락했다는데 그들의 인건비도 못 건질까 걱정이다. 하우스마다 뽑힌 마늘이 줄지어 눕혀져 있고 가지와 파, 옥수수까지 이 계절 잘 견디어 자랄 기세다. 계절은 이미 여름,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거리엔 강렬한 햇볕을 이길 방법이 없어 인적도 드물다. 이불 속 삐져나온 솜처럼 새하얀 구름이 덩어리져 하늘에 있고 가끔 부는 바람에 허수아비대신 세워둔 헝겊조각만 펄럭인다.


양지마에 들어서는 시골길에는 경운기를 몰고 부부가 지나간다. 경운기의 모터소리는 시끄러웠으나 부부의 모습은 풍경처럼 고요하다. 밀짚모자를 쓰고 수건을 덮어 쓴 촌로들의 노동이 경건해보이기까지 하다. 양지마는 양지 바른 곳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양지마에도 새집을 짓는 곳이 보인다. 기존 동네 집주인이 신축하는 것이리라. 일반 주택가에서 건물 신축은 이웃에게도 영향을 주는 법, 막 터를 닦아낸 곳에는 건축자재가 쌓여져 있다. 나무를 때는 어느 집 담벼락 아래에는 잘 쪼개놓은 나무와 허문 집에서 나왔을 법한 문짝들이 쌓여있다. 어떤 집 대문 앞에는 불면의 밤을 한잔두잔 소주로 달랬는가, 꽤 많은 소주병이 쌓여있다. 석유를 파는 ‘원림석유’담을 지나 요강과 솥단지가 걸린 집의 정겨운 마당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문 앞에는 고무신이 놓여있다. 학교를 파한 중학생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가고 챙모자를 푹 눌러쓴 아주머니가 도랑 옆을 걷는다.


도랑 중간에 놓인 디딤돌을 건너는 아이의 뒷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마치 바닷속 파래처럼 가문 도랑에는 녹색의 이끼가 가득하다. 원림은 먼숲처럼 조용하고 아늑한 기운이 가득하다.
기존 마을사람들과 새로 이주해오는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곳. 행동의 반경이 조심스러운 지역사회에서 거주지를 시내에서 벗어나 조금은 불편해도 자연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모양새가 보기 좋았다. 이웃한 사람이 타지 가족보다 더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자연에서 나온 사람들은 다시 자연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회귀본능이 있는 것인지 당분간 원림의 골목길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서 텃밭 가꾸는 재미를 한창 느끼지 싶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