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티아고에만 있고 유럽엔 없는 것들 [퇴직 후 걸은 산티아고]

이산저산구름 2016. 7. 21. 10:50

 

 

산티아고에만 있고 유럽엔 없는 것들 [퇴직 후 걸은 산티아고]

셋째날, 라라소아냐에서 시수르 메노르까지 20.7Km

[오마이뉴스 글:이홍로, 편집:박혜경]

 

 

 

 

 

 새벽에 순례길을 나선 순례자들

ⓒ 이홍로

 

 

 순례길 옆의 목장

ⓒ 이홍로

 

 

 순례길 3일차, 오늘도 오전 4시에 일어나 조용히 식당으로 내려가 일기를 쓴다. 5시 30분 알베르게 주변을 산책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주택가를 10분 정도 걸으니 작은 공원이 있고 마을이 끝났다. 한국과 시차가 있어 아침 이 시간에 카톡을 하거나 보이스톡을 하곤 한다. 딸하고 보이스톡으로 통화를 하는데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 있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오는데 부지런한 순례객들은 벌써 출발한다. 일찍 출발하면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알베르게에 들어가 일찍 샤워하고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뜨거운 물만 부으면 우거지국이 되는 국에 햇반을 먹고 오전 7시 30분에 출발한다.  이제 햇반이 떨어져 내일 아침부터는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해야 한다. 걷기 3일차가 되니 오른쪽 발목 아래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순례길을 시작하기 전부터 등산을 하고 하루에 두 시간 이상 걷기를 할 때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걱정이 된다.

 

 

 산의 바위에 붙여 지은 건물 짓다가 공사가 중단 되어 있다.

ⓒ 이홍로

 

 

 다리 위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

ⓒ 이홍로

 

 

 지금까지 1시간에 4Km 정도 걸었는데 속도를 조금 줄여서 걸었다. 주택가를 벗어나 밀밭길을 걷다가 산길을 조금 걸으니 목장이 나타났다. 마을로 들어서는 포장길을 한참 걸으니 작은 마을이 보이고 그 마을 끝에는 산의 바위에 맞대어 집을 짓던 건물이 있었는데 중간에 건축이 중단되어 폐허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같이 걷던 이탈리아 포토그래퍼가 큰 카메라로 구석 구석 사진을 찍고 있다. 마을을 벗어나 한참을 걷다 보니 아르가강 다리 위에서 한 할아버지가 낚시를 하고 있다. 낚시를 좋아하는 친구가 "부에노스 디아스" 인사를 하고  어망을 구경해도 되냐고 물으니 몸짓으로 괜찮다고 하신다. 친구가 어망을 보더니 송어라고 한다. 어망에 송어 세 마리가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물살이 꽤 빠른데 고기가 제법 잡히는가 보다. 친구가 "그 할아버지 참 행복해 보인다"며 "우리도 저렇게 늙어 가자"고 이야기 한다.

우리가 걷는 길 옆에 아르가강이 흐르고 있는데 이 강을 여러번 건너서 순례길을 걸어간다.

 

 

         아름다운 성문을 통과해 만나는 도시 팜플로나

 

 보행자 전용 다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순례객

ⓒ 이홍로

 

 

 막달레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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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1시간 걷고 10분 쉬기로 하면서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걷다가 BAR(커피, 맥주, 빵 등을 파는 가게)가 나오면 커피에 빵을 먹으며 쉬었다. 얼마를 걷다 보니 아름다운 막달레나 다리가 나왔다. 여기서 조금만 더 걸으면 팜플로나라는 큰 도시가 나온다. 순례길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만나는 큰 도시다. 젊은이들은 순례길을 빠른 속도로 걷고, 큰 도시가 나오면 하루나 이틀을 쉬었다가 출발한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도시를 좋아하니까.

팜플로나 시내에 들어가려면 성을 통과해야 한다. 무척 높은 성 옆에 운치있는 길이 있어 마치 내가 잠시 중세 사람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성 안으로 들어가려면 두 개의 문을 통과해야 된다. 처음 보는 성문이 신기하고 멋져 보인다. 특히 두 번째 성문을 수말라카레이문이라고 하는데 이 문이 더 아름답다. 이 문을 '프랑스의 문'이라고도 하는데 중세 이후 프랑스에서 오는 순례자들을 위해 언제나 문을 열어두었다고 한다.

 

 

 팜플로나로 들어가는 성 입구

ⓒ 이홍로

 

 

 성으로 들어가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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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플로나로 들어가는 수말라 카레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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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문을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 같다. 중세에서 현대 사회로 온 것 같다. 

스페인의 구 도시들은 건물 사이의 도로가 아주 좁다. 사진을 찍으면 독특한 구도가 나오는데, 예전 사진을 배울 때 유럽의 작가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 이런 모습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 느끼는 것은 이곳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도 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한국 사람들은 기분 나빠하며 피하거나 못 찍게 하는데, 이들은 오히려 멋진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팜플로나는 대학 도시라고 한다. 길을 걷다가 대학 정문을 지나는데 잠깐 본 느낌은 우리나라처럼 거대한 건물이라기 보다 조금 큰 고등학교 같다는 것이었다.  보이는 것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팜플로나 시내 모습

ⓒ 이홍로

 

 

 팜플로나 시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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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플로나 시내 모습 - 순례객이 사진을 찍어도 즐겁게 포즈를 취해 준다.

ⓒ 이홍로

 

 

 오른쪽 발목이 아파 걷기도 힘들고 어깨의 배낭도 무겁다. 우린 배낭에 양파 와인을 만들어 가지고 쉴 때 조금씩 마셨다. 스페인에서 와인은 슈퍼마켓에서 3유로 정도 주면 한 병을 살 수 있다. 또 순례자 메뉴(보통 10유로에 야채, 파스타, 돼지고기와 감자튀김, 아이스크림이 나오는 코스요리)를 시키면 포도주 한 병이 나오는데 남은 것으로 양파 와인을 만들어 먹었다. 시내에 들어와 조금 걸었더니 피곤하다. 우리는 건물 앞 적당한 곳에 앉아 배낭을 내려 놓고 빵과 양파 와인을 먹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우릴 구경하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사진을 찍기만 하다가 찍혀 보기는 처음이다. 우리는 카톡 등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 영국 통신회사의 Three 유심을 사서 사용하였는데 대도시에서는 잘 되지만 시골로 들어가면 인터넷이 거의 되지 않았다. 인터넷이 잘되는 도심에서 서울에 있는 아내와 보이스톡으로 통화를 하였다. 같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 아내가 그립다.

 

 

 팜플로나 성당

ⓒ 이홍로

 

 

 팜플로나 시청

ⓒ 이홍로

 

 

 시수르 메노르의 파미리아 론칼 알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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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가운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즐거운 순례길

 우리는 팜플로나에서 숙소를 잡는 게 아니어서 가게에서 빵을 사가지고 도시를 벗어났다.  시수르 메노르까지 걷는데 이 길은 자동차 도로다. 태양은 뜨겁고 배낭은 어깨를 눌러 조금 가는데도 힘들다. 밀밭 옆에서 잠시 쉬면서 도시를 바라본다. 양파 와인 한 잔씩 마시고 힘을 내어 언덕을 오른다. 언덕 왼쪽에 성처럼 보이는 성당이 보인다. 망루에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주변 푸른 초원과 어울려 너무 아름답다. 성당을 왼쪽에 두고 알베르게를 찾고 있는데 한국인 여성 한 분을 만났다. 그 분의 안내로 우리가 원하는 파밀리아 론칼 알베르게에서 쉬게 되었다. 이 알베르게는 깨끗하고 시설도 좋아 인기있는 곳이라고 한다.

샤워를 하고 빨래까지 마친 후 우린 캔 맥주를 하나씩 사 가지고 작은 공원으로 가서 이야기 하며 맥주를 마셨다. 생각하면 꿈과 같다. 순례길을 걸을 계획은 했지만 실제 이렇게 걷고 있다는 것이 정말 즐겁다.

 

 

 성당에서 바라본 팜플로나 시내 풍경

ⓒ 이홍로

 

 

 폴란드 여인이 머물던 알베르게 겸 성당

ⓒ 이홍로

 

 

 숙소로 돌아가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나섰다. 시수르 메노르는 작은 마을인데도 성당이 3곳이나 있다. 힘들게 언덕을 올라올 때 아름다워 보이던 '자비의 성모마리아 성당'에 갔다. 오래된 성당의 모습이 주변과 어울려 아름답다. 성당을 한 바퀴 돌으니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이 성당에도 알베르게가 있는데 어제 같은 방에서 묶었던 폴란드 여인 에니카씨를 여기서 만났다. 서로 얼마나 반가웠던지 가볍게 포옹을 했다. 애틋한 가족도 아니요, 오래 사귄 친구도 아닌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순례길에서 이렇게 반가운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다. 이런 감정은 이 카미노 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감정을 느끼고 싶다면 꼭 이 순례길을 걷기를 권한다. 순례길을 마치고 유럽 몇 개 국가를 여행했는데 어디서도 이런 느낌은 가질 수 없었다.

 

 성당을 산책하다 만난 폴란드 여인
ⓒ 이홍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