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아홉 번째 이야기 길 -푸른 눈의 목격자 - 3.1 운동에 숨겨진 이야기

이산저산구름 2015. 8. 4. 13:16

 

 

서울시 종로구 서촌에 있는 붉은 벽돌집 딜쿠샤. 이곳은 3·1운동을 세계 최초로 보도하고 제암리 사건을 국제 사회에 알린 UPI 서울 특파원 앨버트테일러의 집이다. 그는 1942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추방될 때까지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쓴다. 한국을 유난히 사랑했던 푸른 눈의 목격자, 앨버트 테일러가 남긴 기록을 따라 3·1 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 희망의 궁전, 딜쿠샤로 가는 길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언덕 위에는 한눈에도 오래된 건물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붉은 벽돌집이 있다. 일제강점기 UPI통신의 서울 특파원이었던 앨버트 테일러(Albert Taylor,1875~1948)가 지은 이 집의 이름은 딜쿠샤(Dilkusha), 힌디어로 ‘희망의 궁전’을 뜻한다. 테일러는 이 집에 부인과 인도에서 보았던 딜쿠샤 궁전의 이름을 붙이면서 따뜻하고 행복한 삶을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조선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결코 기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 등을 세계에 알리고 일제에 의해 이 땅에서 추방된다. 죽은 뒤에도 한국 땅에 묻어달라고 했을 만큼 한국을 사랑했던 그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보았던 것은 무엇일까?

 


- 정동길에서 만난 3·1운동의 숨결

 

딜쿠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정동길은 국권을 잃고 3·1운동이 일어나기까지, 아픔의 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곳이다. 이야기는 중명전(重明殿)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을사늑약(1905)이 체결된 곳이자 그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고종이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장소이기도 하다. 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의 문서에는 제목도 없고 고종황제의 직인도 없다. 합법적으로 체결된 조약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명전은 현재 박물관으로 만들어져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전하고 있다.

 

 

 

정동길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유관순 열사가 다니던 이화학당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서재필 박사 등을 배출한 배재학당, 길모퉁이에서는 항일 운동의 거점이었던 정동교회도 볼 수 있다. 정동길을 따라 걸으며 자존심 강하고 용감했던 조선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앨버트 테일러가 반했던 것 역시 옳은 일 앞에 두려움을 모르는 조선인의 단단하고 곧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앨버트 테일러는 일제의 만행을 서구에 보도한 대가로 6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42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추방된다.
앨버트가 갇혔던 서대문형무소는 많은 애국지사들이 고초를 겪었던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도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에서 그 잔인했던 탄압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고된 노동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문을 이겨낸 독립투사들의 곧은 기개와 절절한 애국심이 묻어 있다.

 


- 또 다른 진실을 전하다

 

 

앨버트 테일러가 세계에 알린 또 다른 사건은 제암리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약 한 달뒤, 그는 3·1운동의 현장을 확인하면서 제암리의 참상을 알게 된다. 당시 일본 군대는 “만세운동을 진압하며 너무 심한 매질을 한 것을 사과하러 왔다”며 15세 이상의 제암리 남자들을 교회에 모이게 한 뒤, 모든 문을 봉쇄하고 집중 사격을했다. 사격이 끝난 뒤에는 짚더미와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때 예배당 안에서 죽은 사람이 23명, 뜰에서 죽은 사람이 6명이었다.
하지만 일제의 만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웃 마을인 고주리로 가서 천도교인 6명을 총살한 것이다. 불탄 예배당터에 세워진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에서는 아직도 그때의 비명이 들려오는 듯하다.


 

- 이 땅에 희망의 집을 지은 이유

 

 

고종황제의 장례식을 지켜보며 앨버트가 남긴 기록을 보면, 이 푸른 눈의 외국인이 얼마나 조선인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만약 일본이 이 장례식을 통해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잊을 거라고 기대했다면 크나큰 착각을 한 것이다. 자기 나라의 마지막 황제가 저세상으로 가는 모습을 말없이 침통하게 지켜보는 한국인들의 가슴속에는 증오와 절망이 가득했을 것이다.”
조선의 현실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바라보았을 뿐 아니라 일제의 폭력성과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렸던 앨버트 테일러. 죽은 뒤에도 조선 땅에 묻히고 싶어 했던 그는, 일제의 총칼 앞에 힘없이 당하기만 하던 조선이 언젠가 그 괴로운 시간을 딛고 희망의 나라를 만들 거라 굳게 믿고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시간을 떠올리며 그는 행복을 위한 집을 짓고, 이 땅에 묻히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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