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 구체적인 과정은 잘 알려져있지 않다. 사대부의 반대를 예상한 세종이 비밀리에 작업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정치적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 세종. 그의 자취를따라 훈민정음에 담긴 큰 뜻을 만난다.
- 백성을 사랑한 임금, 세종을 만나다
광화문광장 한가운데에는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왕, 세종의 동상이 서 있다. 그리고 이 동상의 뒤편에는 세종이야기 전시관으로 가는 문이 있다. 눈에 잘 띄지 않아 어쩐지 비밀스럽게 느껴지는 문을 열고 내려가면 세종의 일생과 업적이 일곱 마당으로 펼쳐진다. 한글을 창제하고 과학을 발전시켰으며, 인재를 등용하고, 군사력을 강화하는 등 세종의 업적은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전시의 진짜 주제는 그의 업적이 아니라 백성의 삶을 깊숙이 살피는 세종의 마음이다. 세종이 추진한 다양한 정책의 공통점은 백성의 고충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했다. 한글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주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나자 세종은 백성들이 예와 법도를 알지 못해 생긴 일이라며 자책한다. 한자로 된 책을 읽지 못해 범죄자가 되는 백성들의 현실이 마음 아팠던 것이다. 세종은 그 마음을 잊지않고 1443년(조선 세종 25년) 한글을 만들어낸다.
- 숨 막히는 첩보전, 훈민정음 창제기
전시관에서 나와 10분쯤 걸어가면 한글이 탄생한 경복궁을 만난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강녕전. 본래는 왕의 일상 공간이지만 비밀리에 훈민정음을 만들었던 세종은 아마 이곳에서 가장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강녕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수정전은 그런 세종이 유일하게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던 곳이 아니었을까. 수정전은 우리에게 집현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된것을 고종이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갈고 닦던 집현전은 재건된 뒤에 군국기무소로 쓰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박람회장이 되는 굴욕을 겪기도 한다. 세종이 한글 창제를 세상에 알린 것은 한글을 완성한 지 3년이 지난 1446년(조선 세종 28년)이었다. 세종은 관리들도 훈민정음을 쓰도록 하기 위해, 한문으로 한글의 창제원리와 사용법을 설명한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을 만들었다. 하지만 명나라를 향한 사대 정신에 젖은 일부 학자들은 이를 크게 반대했고, 집현전 부제학이었던 최만리는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새 문자를 만드는 것은 오랑캐나 하는 짓’ 이라며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 역사의 굴곡을 버텨낸 한글 이야기
그러나 한글의 시련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사대부들의 반대에 부딪힌 것도 모자라 연산군(1476~1506) 때는 한글로 된 책을 모두 파기하라는 명이 내려지기도 했다. 게다가 일제의 혹독한 탄압까지…… 경복궁부터 한글학회로 이어지는 한글 가온길엔 한글이 겪어온 아픔의 흔적이 구석구석 새겨져 있다.
그 길에서 처음으로 만난 것은 일제에 맞서 한글을 지키려 애쓴 주시경 선생의 집터다. 지금은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 과거의 흔적을 볼 수 없는데, 재미있는 건 그 자리에 들어선 건물 이름이‘용비어천가’라는 점이다. 대신 멀지 않은 도렴녹지공원에 주시경 선생의 업적을 정리한 조형물이 마련되어 있다. 조금 더 걷다 보면 나지막한 5층짜리 벽돌 건물이 나타나는데 이 건물이 바로 조선어학회사건(1942) 같은 탄압 속에서 한글을 지켜낸 한글학회 건물이다.
- 빛나는 문화유산, 한글
훈민정음은 그 과학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아 1997년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한글의 우수성을 살피기 위해 찾아간 곳은 동대문구에 있는 세종대왕기념관.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세종의 일대기를 비롯해 그가 남긴 업적들을 전시하고 있다. 입구에서 커다란 세종대왕의 초상화를 보는 것으로 시작해 그림을 통해 세종의 일대기를 살펴볼 수 있어 아이들도 흥미롭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전시관에서는 세종의 다양한 업적을 두루 다루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여겨지는 한글 관련 전시가 제일 초입에 자리하고 있다. 훈민정음을 비롯해 용비어천가, 향약집성방, 월인천강지곡 등 적극적으로 한글을 활용했던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한글 창제에 관련한 전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글은 창제자와 창제 연도를 밝혔고, 문자가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 알수 있는 매우 드문 언어다. 특히 소리와 글자의 상관관계를 고민하여 만든 기본자부터, 자음 14개와 모음 10개의 조합으로 운영되는 시스템까지, 그 창제 원리가 과학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는다. 무엇보다 큰 한글의 장점은 배우기 쉽다는 점이다. 복잡한 한자를 배울 수 없었던 백성들에게 글을 만들어주려 했던 세종의 뜻을 떠올려보면,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한글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한글은 세계문자학회에서 주최한 세계문자올림픽에서 가장 배우기 쉽고 풍부하게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로 2009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훈민정음,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한글과 함께하는 여정, 그 마지막 목적지는 세종의 무덤인 영릉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아이들이 뛰노는 풀밭을 지난다. 영릉은 다른 왕릉들과 달리 능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는데, 나무를 등지고 능 근처에 앉아 있으면 문득 주변이 고요해지는 것 같다.
영릉 주변에 앉아 세종과 그가 만든 훈민정음을 생각했다.
문자가 권력이던 시절, 백성들에게 문자를 선물하려 했던 세종의 발상은 혁명 그 자체였다. 그는 백성들이 글을 배워 스스로 깨어나 자신들의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권리를 찾기 바랐다. 그리고 글이 백성을 더 좋은 삶으로 이끌기를 꿈꿨다. 더많은 소통으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꿨던 세종의 마음이야말로 이 시대의 모든 권력자들이 갖춰야 하는 덕목일 것이다.
- 함께 가보면 좋을 곳들
● 길에서 만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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