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구간>
- 벌랏한지마을
산과 호수가 병풍을 친 곳
분저리 농촌체험마을에서 대청호와 산줄기를 돌아 남대문교를 건너 충북 청원군 문의면 벌랏한지마을로 향한다. 벌랏한지마을을 둘러싼 봉우리가 많기도 많다. 마을 사람들은 이 많은 봉우리에 각각 이름을 붙였다. 아가씨봉, 처녀봉, 과부봉, 홀애비봉…. 임진왜란 때 피난한 사람들이 모여 이곳에 마을을 이루고, 시간이 지나고 이곳은 부촌으로 이름이 났다. 이곳을 ‘삼천 냥 골’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한지를 생산해 돈을 버니 천 냥, 과일이 많이 나니 천 냥, 산나물과 산채소가 많이 나니 천 냥, 합이 삼천 냥이란 뜻이다.
집집마다 벽화 작업을 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평화로운 이 마을도 대청댐 담수로 변한 것이 많다. 대청댐을 만들며 대청호가 생기기 전에 벌랏한지마을의 생활권은 대전이었다.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장성말까지 가 어부동까지 걸어가면 대전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대청호가 생기면서부터 배로 이동하는 길이 막혔다. 마을이 대청호와 접하는 곳에는 아직도 옛 나루터가 남아 있다. 더는 배가 들어오지 않지만, 남아 있는 나루터와 간이대합실이 지난날 금강 줄기를, 물에 잠긴 마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7대째 살고 있다는 한 할아버지는 댐이 생기며 생활이 불편해졌다고 말한다.
“땅도 매매가 되지 않구, 호수 때문에 안개가 자주 끼잖여. 그래서 곡식 농사가 잘 안 되야. 좋아진 것도 있지. 금강은 조그맸잖여. 대청호는 얼마나 커. 경치는 좋아졌지….”
할아버지가 말하는 마을 풍속이 재밌다. 산골짜기에 자리잡은 이곳은 다른 마을과 거리가 멀어 마을 혼인이 잦았다. 나이가 비슷하고, 성씨만 다르면, 혼삿말이 오고 갔다.
금강이 대청호로 변하고 물길은 막혔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을을 잇는 신작로가 생겼다. 그 신작로를 따라 벌랏한지마을에 한지 체험, 농촌 체험을 하러 외부인들이 찾는다.
대청호는 시간 흐름과 함께 마을을 변화시켰다. 그동안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 이도, 다른 지역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이도 있다. 환경의 변화에 처음엔 어쩔 줄 모르던 마을 사람들도 이제는 제자리를 잡아간다.
어둠이 내린 벌랏한지마을은 고요하다. 맑은 기운이 가득한 마을에 유난이 별이 많고 또 밝다.
<17구간>
- 사향탑
사라진 고향을 가슴에 새긴 비석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소전길 소전교 삼거리에서 시작해 다시 소전교 삼거리로 돌아오는 17구간 길. 다리를 건너 적막한 나무 그늘을 따라 걷다 ‘사향탑(思鄕塔)’을 만났다.
“아! 조상 대대로 살아온 내 고향! 서로를 귀히 여기고 언제나 정성을 다하여 정을 나누었던 내 고향 벌말이여! 정답게 어울어 살아온 삶의 쉼터! 포근한 어버이 품속 같아라. 아! 이곳에 잊지 못할 동심이 있었으니 꿈엔들 어이 잊으리오. 국가 백년대계의 사업으로 대청댐이 완공되니 때는 1979년. 당시의 가구 수는 100여 호 인구는 700여 명 문닾뜰, 노개뜰, 느저울뜰, 기름진 옥토를 경작했으며 동쪽으로는 뒷골 남쪽으로는 독골, 서쪽으로는 우리가 가장 정이 깊었던 금강물과 나루터 하얀 백사장이 있었네.” - 비문 中 -
사향탑 뒤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벌말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새겼다. 사향탑에서 조금 내려가다 보면 입구에 귀여운 솟대가 죽 늘어선 충북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 탄
17구간
현마을이 있다. 벼 베기가 한창인 최성근 씨 부부 역시 고향 벌말을 잊지 못한다.
“벌말이 물에 잠기기 전에 여기는 논 취급도 안 했던 데야. 발이 푹푹 빠지고, 여기서 농사지을라믄 고되지. 벌말은 얼마나 좋은 땅이 많았다고. 옛날엔 문의면 소재지보다도 컸어. 나도 고향 떠났다가 25년 만에 다시 내려왔어. 지금 이 마을에 벌말 사람은 나밖에 없어.”
비석에 남긴 이야기처럼 벌말은 100가구가 넘게 사는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고향으로 다시 내려온 최성근 씨는 후곡리 탄현마을에서 다시 농사를 짓는다.
- 청원 이강영당
대청댐 공사로 옮겨온 영당
다섯 가구가 산다는 탄현마을에서는 최성근 씨 부부 말고는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산기슭에 한옥 기와가 보인다. 한옥은 바로 아래에 있는 집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집에도 한옥에도 사람이 없었다. 최성근 씨는 그곳이 청원 이강영당이라고 한다. 연안 이씨 이광정과 이만원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세운 영당으로 1930년, 후곡마을에 세웠다. 이것 역시 대청댐 공사로 1980년 탄현마을로 옮겼다.
“지금은 후손들이 대전으로 영정을 다 모시고 갔다던데. 이강영당이 문화재 등록은 안 돼 있는데, 군에서 보수는 해줘.”
청원군청에서는 “이강영당은 비지정 문화재이기 때문에 군에서 관리하지 않고, 개인이 관리합니다. 군에서는 보수가 필요하다고 요청할 때에 보수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영당까지 구경하니 작은 마을은 모두 돌아본 것 같다. 마을을 둘러보고 나가려다 최성근 씨에게 마을 입구에 있는 솟대를 물었다.
“내가 세웠어!”
소나무로 직접 만든 솟대를 보니 탄현도 벌말처럼 조금씩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입구에 놓인 솟대가 고요한 땅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 옛 도로가 고요한 산책길로
곡계고개 우람한 상수리나무 마주하고
후곡리 탄현마을에서 버스가 다니는 길로 걸으면 오른쪽에 대청호를 둔다. 길 아래로 드문드문 집 몇 채가 모여 작은 마을을 만든다. 옛 마을이 물에 잠기기 전에는 그냥 산비탈 거친 밭이었을 곳에 집이 들어앉은 꼴이다. 상실의 아픔을 간직한 낯선 풍경인데 물과 산과 나무와 바람, 햇볕 등이 섞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얼마쯤 걷다 후곡리 버스 종점 즈음에 다다르면 지금과는 다른 길이 새롭게 펼쳐진다. 옛날 가호리 주민이 이용한 도로다. 대청댐 수몰로 주민이 모두 이주하면서 사용하지 않아 다시 산책로로 조성한 길이다. 수풀이 우거진 길은 평화롭고 고요하다.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아름다운 그 길을 따라 걸으면 17구간의 반환점 구실을 하는 곡계고개에 다다른다. 수몰 전에는 가여울 마을과 곡계 마을 간의 유일한 통로였다. 보호수로 지정한 우람한 상수리나무가 자라고 고개를 넘나들던 주민이 하나씩 쌓았을 돌무더기와 동복 오씨 비각을 마주한다.
여기서 나즈막한 산길로 접어들어 오른쪽으로 대청호를 두고 걸으면 사향비를 통해 여행을 시작한 소전교에 닿는다. 이 구간은 길쭉하게 반환점을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구간으로 어느 쪽을 먼저 가든 상관없다.
<18구간>
- 담배창고·청원 월리사 대웅전
미루나무 길 지나 만나는 선물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소전마을을 빠져나와 걷는 길에서 단연 아름다운 것은 죽 뻗은 미루나무다. 키가 큰 미루나무가 짙은 그늘을 만들어 뜨거운 햇살을 가려준다.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에서 쉼표를 찍을 수 있다. 짙은 그늘을 지났는데, 독특한 형태의 집이 있어 발길을 멈춘다. 대청호를 바라보며 솟은 언덕 위에 담배창고가 눈에 띈다. 배오개 마을에서 찾던 담배창고를 이곳에서 찾았다. 누군가 아직도 사용하는 듯한 흔적은 보이는데 사람이 없었다. 17세기 초 우리나라에 들어온 담배는 기술이 발전하기 전까지만 해도 농사짓기가 매우 버거웠다. 잎을 따서 한 곳에 모아 잎을 말리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점차 담배농사 짓는 마을이 많아지자 마을마다 창고를 지어 담배를 말렸다. 요즘은 담배 말리는 것에도 기술이 생기고 담배농사 짓는 사람이 줄면서 담배창고가 쓸모 없어져 대부분 허물었다. 길에서 발견한 담배창고는 쓰지 않는 물건을 두는 창고로 활용하는 듯했다.
담배창고가 있는 외딴집 아래로는 산비탈 밭과 대청호 풍광이 이어진다. 그곳에서 조금 더 가면 월리사 입구다. 오래된 표지석과 세운 지 얼마 안 된 듯한 표지석이 나란히 손님을 맞는다. 월리사는 신라 무열왕 때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절이 높아 달에 가까워 월리사라는 이름을 썼다는 이야기, 절 아래 있던 월동사라는 절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 등 이름에 관한 유래 몇 가지가 있다. 청원 월리사 대웅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8호)은 조선 시대에 건립하고, 1970년에 보수했다.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으로 정사각형 모양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양손으로 치맛자락을 잡고 인사하는 소녀가 떠오른다.
- 마동창작마을
폐교에 불어넣은 예술의 향기
마동창작마을은 대청호 오백리길에서 선택 코스다. 이 마을은 대청호를 바라보기엔 멀리 떨어졌다. 염티리에서 긴 골짜기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한다. 그곳 마동리 마쟁이 마을에 마동창작마을이 있다. 마을은 전형적인 남향 마을로 햇볕이 잘 들어 한없이 포근하다.
그 깊은 골짜기 끝, 고요한 마을에 창작마을을 조성한 것은 이홍원이라는 작가다. 1992년 문을 닫은 회서분교에 이홍원 작가가 들어와 작가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마동창작마을 안에는 작품을 걸어 놓은 갤러리와 카페도 있다. 카페는 누구나 와서 차를 마시고 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돈이 있으면 내고 가고, 없으면 그냥 가도 좋다는 문구도 함께 쓰여 있다. 구석진 마을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는 것 같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충청권 - 예와 강직함을 지닌, 충청도 선비정신을 좇아 (0) | 2014.10.21 |
---|---|
여행길 2 금강 천 리, 대청호 둘레 오백 리(2) (0) | 2014.10.14 |
여행길 2 - 금강 천 리, 대청호 둘레 오백 리(2) (0) | 2014.10.02 |
(국가) Turkey (Republic of Turkey) 소개 (0) | 2014.09.30 |
여행길 1 - 금강 천 리. 대청호 둘레 오백 리(1) (0) | 2014.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