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구간>
- 상산마을 가마집
정자에 앉은 할머니 이야기에 빠져
마동창작마을에서 들어간 길을 되짚어 돌아나와 충북 청원군 문의면 산덕리 상산마을로 향한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정신 좀 차리고 걸어야 한다. 산덕마을 비석 아래 상산과 하산이 조그맣게 표시돼 자칫 놓치고 지나칠 수 있다. 길 옆으로 오래 전 마을 기념사진을 걸어둔 정자를 만나면 그곳이 진입로라 생각하면 된다.
진입로를 따라 들어선 상산마을은 골짜기에 드문드문 집 몇 채가 놓여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이 마을 정자에서 연규숙 할머니와 오옥순 할머니는 찬바람을 맞으며 윷놀이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에게 이 마을에 있다는 상여집 이야기를 물었다.
“아, 그것이 상여집이 아니고~ 가마집이야. 상산마을에 시집오는 사람은 다 거기 둔 가마를 타고 시집왔지. 나는 신탄서 와가지고, 저기 보이는 함바재에서부터 타고 왔어. 언덕이 이만큼 가파르니까 자꾸 몸이 뒤로 쏠리는 거야.”
“아니, 그러면 내려서 왔어야지~”
“색시가 어떻게 내려서 와. 끙끙거리며 가마 안에 있는 기둥 잡고 타고 왔지.”
“맞아. 나도 그 가마 타고 왔어~ 가마꾼들이 델러 와가지고, 고개 넘어오는데 고생 좀 했지. 옛날에는 다 그렇게 했어. 마을에 잔치 있으면 가마집에서 그릇도 빌리고. 지금 가보면 안에 다 남아 있어. 옛날에 마을서 쓰던 가마랑 그릇이랑. 안 쓰니께 그냥 넣어 놔서 많이 상했을겨.”
할머니들은 그렇게 옛날이야기를 한참 해 줬다. 버스 타고, 가마 타고, 그렇게 고향을 떠나 상산마을에서 산 세월이 60년 가까이다. 할머니들이 말한 가마집 안에는 가마 형태로 보이는 것과 쓰지 않는 그릇이 먼지와 함께 쌓여 있었다. 대나무 뼈대에 황토흙을 펴 바른 집은 무성하게 자란 풀로 뒤덮였다. 가마집 뒤에는 엄마와 아들이 함께 감을 따느라 바빴다. 감이 꽃처럼 활짝 핀 나무가 마을 곳곳에서 보였다.
- 작은 용굴
좁은 문으로 들어가 만난 넓은 세상
상산마을에서 나와 청남대를 지나 노현리 습지공원에 이르기 전, 주위를 잘 살펴야 한다. 작은 용굴이라 부르는 동굴이 구룡산 중턱에 있다.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상장리다. 석회암 동굴인 작은 용굴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두 개다. 마주 보았을 때 오른쪽 동굴은 입구가 높고 널찍하다. 왼쪽 동굴은 날씬한 사람이 엎드려서 머리부터 들어가야 나올 수 있을 만큼 작다. 힐끗 보았더니 작은 입구는 물이 가득 차 있다.
용이 승천한 동굴이라는 전설이 있고, 구석기인의 생활 유적지로 추정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들락거려서인지 바닥이 무척 미끄럽다. 길쭉한 진입로는 낮고 그보다 한 단 높은 곳에 제법 넓은 공간이 있다. 1230×730cm 공간이니 그곳에서 충분히 사람이 생활할 수 있었겠다.
<20구간>
- 노현리 습지공원·문의문화재단지
충·효·예가 함께한 문화재단지
작은 용굴에서 노현리 습지공원까지는 걸어서 대략 30분 정도 걸린다. 호수를 따라 조성한 습지공원은 산책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해질녘 이곳을 찾으면 노을에 물든 대청호를 볼 수 있다.
노현리 습지공원에서 양성산을 넘어 도착하는 문의문화재단지는 여유로운 날 하루를 잡고 둘러보는 것이 좋다. 수몰 위기에 처한 마을에 있던 문화재를 옮기기도 했고, 당시 생활 풍습에 맞게 주막, 대장간 등을 세워 관광객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청원 관정리 민가(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38호)는 청원군 낭성면 관정리에서 신방호 씨가 살던 곳으로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초가집이다. 조선 후기 민가로 1994년에 원래 모습 그대로 지금 위치에 이전, 복원했다. 황토, 나무, 볏짚, 돌로만 만들어진 초가집은 요즘 말로 ‘웰빙’ 그 자체다. 황토로 지은 집은 겨울에 건조할 땐 습기를 내뿜고, 여름에는 습기를 빨아들인다. 자연이 내어준 것으로만 지은 집에 살면, 절로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요즘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고 한다.
“이엉을 엮는 기술자가 사라져 간다고 해요.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엉 한번 엮으려면 먼 곳에서 모셔 와야 하죠. 그분들 말씀이 요즘 볏짚과 옛날 볏짚이 달라서 촘촘히 엮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하시더라고요.”
김영미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민가에서 선조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옛날 집들 보면 집 주변에 봉숭아를 많이 심었어요. 미관상의 이유도 있지만, 봉숭아에 뱀이나 지네가 싫어하는 성분이 들었대요. 농약이 없던 시절에 각종 해충이나 위험한 뱀을 쫓는 방법이었죠. 또 초가는 굴뚝이 짧아요. 지붕보다 아래에 있죠. 굴뚝으로 나오는 연기로 지붕에 있는 각종 벌레나 해충을 없앤 거죠.”
청원 부강리 민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1호) 가까이 있는 청원 노현리 민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0호) 역시 조선 후기 기와집으로 이양훈 씨가 살던 가옥을 1993년에 이전했다. ‘ㄱ’자형 안채와 대문간, 축사가 있다. 사랑채는 옮겨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ㄱ’자 형태의 전통 목조기와집인 청원 부강리 민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1호)도 안채만 조선 후기에 짓고, 광채는 새로 지었다.
이렇게 예부터 내려온 것도 있지만, 옛 가옥을 그대로 재현해 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도 있다. 문화재단지 내에 사대부 이상의 집안을 그대로 재현해 집에서 느껴지는 가치와 철학을 들려주기도 한다.
“대문이 곧 가문이라는 말이 있어요. 높은 벼슬을 하지 못하면, 대문을 높게 세우지 못했죠. 반대로 방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낮췄어요. 몸을 숙여야 방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죠. 자세를 낮춰 최대한 겸손한 자세로 들어오게 한 거죠.”
가옥 말고도 효와 예를 함께 볼 수 있는 ‘시묘살이’를 그대로 재현하기도 했다. 무덤 옆에 조성한 여막에 실제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3년 간 시묘살이 했던 조육형 씨의 물건을 그대로 옮겨왔다. 조육형 씨의 아버지인 조병천 씨도 3년 간 시묘살이를 했으니 2대째 아버지 가시는 길을 지키며 정성을 다한 것이다.
청원 문산리 석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2호)를 지나 청원 문의 문산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9호)에 이르면 그때의 ‘충(忠)’을 만날 수 있다. 조선 시대 객사 건물인 이곳은 임금의 궐패를 모셨던 곳이다. 지방 관리들은 초하루와 보름이면 궁궐 쪽을 향해 네 번씩 절을 했다. 중앙에서 관리가 내려오면 숙소로 쓰기도 했는데, 일하러 내려온 관리도 예외 없이 임금을 향해 절을 올렸다고 한다. 언제 지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1666년에 옮겨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김영미 문화해설사는 “깨끗하게 단청 입힌 것을 보고 이게 뭐 그렇게 오래된 건물이냐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라고 말하며 문산관 뒤편으로 가 와송을 보여주며 “자연에서 자라는 와송은 100년 이상 된 기와에서 자라는 것이 진짜예요.”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문산관 앞으로 대청호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나란히 선 세 그루의 소나무와 문산관을 등 뒤로 두고 바라보는 대청호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21구간>
- 차윤주, 차윤도 효자 정려각·비
효자 형제와 소나무 형제
호수가 주는 바람과 함께 걷는 길, 다시 대청댐으로 돌아온다.
문의에서 구룡산 장승공원을 거쳐 대청호 인근 대규모 식당 밀집지역까지 통과하면 용방이들에 다다른다. 좌측으로 대청댐에서 흘러나와 서해로 들어가려는 금강이 몸을 풀며 서서히 움직이는 구간이다. 호수는 이 지점에서 다시 강으로 변해 제모습을 찾는다. 물가 버드나무 군락에 몸을 숨기고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는 오리떼를 볼 수 있다.
용호제를 건너면 용호동유적(대전광역시 기념물 제42호)을 만난다. 2001년까지 발굴을 진행한 구석기 유적지인데 설명판만 있을 뿐 아무 것도 없다.
그 부근에서 잘 조성한 탐방로를 따라 걷는다. 곳곳에 친절하게도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오는 곳에 표지판을 설치했다.
물버드나무 사이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좋아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선정한 그 지점에서 데크를 벗어나면 차윤주, 차윤도 효자 정려각과 비석을 만난다.
1891년에 세운 것으로 기록은 전한다. 이 비의 주인공 차 씨 형제는 어린 시절부터 효심이 남다른 형제였다고 한다.
동생인 차윤도는 17세 때 모친이 병으로 눕자 자신의 살을 베어내 달여 완쾌시켰으며, 형 차윤주는 3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어버이 묘소에 가 성묘했다. 이러한 형제의 효심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고, 고종 때 효자 정문을 세워 이들의 효심을 기린 것이다. 나란히 선 형제비 뒤로 소나무 두 그루가 쌍을 이루어 서 있다. 의좋은 형제처럼 의좋은 소나무 두 그루가 형제비를 든든하게 지킨다.
- 취백정
대나무 숲길 지나 만나는 서당
차윤주, 차윤도 효자 정려각·비에서 과수원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나오면 대청로다. 그 길을 따라 대청댐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취백정(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9호)을 만난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미호동이다. 언덕 위로 올라가야 모습을 드러내는 취백정은 송규렴이 만년에 제자를 모아 강학하던 곳이다. 그곳에 있던 마을 주민은 “보수한 지 3년도 안 됐어요.”라고 말문을 연다.
“지금은 문 닫혔지. 문 닫아놓기 전에는 가끔 올라와서 앉아 있고 그랬죠. 어릴 때는 친구들이랑 놀기도 했고. 거기가 시원해요.”
지금은 취백정 주변에 집이 없다. 예전에는 집이 몇 채 있었는데 모두 나가고 집마저 헐었다. 취백정 아래로는 집이 있고 나머지 방향은 모두 밭이다. 마을 맨 위에 오도카니 취백정이 앉은 꼴이다.
많은 사람이 나가고, 문 닫힌 취백정에도 사람이 잘 오르지 않는다. 취백정 출입문과 아랫집 사이를 가르며 길을 만드는 것은 대나무 숲이다. 대청호 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취백정을 감싼 후 대나무 숲을 지나며 소리를 담아 간다. 대청호 구석구석 옛 이야기를 담아 이곳까지 달려온 바람과 함께 대청호 오백리길을 마무리한다. 야트막한 구릉 위에 내리쬐는 가을 햇살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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