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여행길 15 - 영산강 350리 길을 따라

이산저산구름 2014. 8. 26. 10:53

 

 

 

- 무안 일대
왕건과 견훤의 이야기 얽힌 몽탄, 그리고 품바의 고향

 

영산강은 무안군 몽탄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어미의 너른 품처럼 넓고 아늑하다. ‘몽탄(夢灘)’을 한자 그대로 풀면 ‘꿈여울’이다. 그 옛날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영웅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후삼국 시절, 왕건과 견훤은 영산강 주변의 패권을 두고 한치의 양보없는 일전일퇴의 격전을 치렀다. 이 지역의 지형지세에 능했던 견훤의 군대에 밀려 지금의 동강면 일대로 쫓겨 온 왕건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뒤로는 드넓은 영산강이 버티고 있고 앞에서는 견훤의 군대가 압박해 왔다. 왕건은 불안감에 휩싸여 깊은 잠을 이루지못했다. 그런 긴장 속에 어느 날 소나무에 기대 설풋 잠이 든 왕건의 꿈에 나타난 현자가 그에게 살 방도를 귀띔해줬다. 그 현자 덕분에 무사히 강을 탈출한 왕건은 훗날 꿈을 꾼 소나무 자리를‘몽송(夢松)’이라 하고, 현몽 덕분으로 건넌 강을‘몽탄(夢灘)’이라 이름했다.
흐르는 강물을 벗 삼아 걷노라면 어느새 무안 회산백련지에 이른다. 법정 스님은 수필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서“어째서 이런 세계 제일의 연지가 지금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는지 까닭을 알 수 없다. 마치 정든 사람을 만나고 온 듯 두근거림과 감회를 느꼈다”고 말했다. 아시아 최대의 백련 자생지라는 이곳에선 해마다 백련축제가 열리고 있다.
일로읍 연꽃방죽 동네의 초입에는‘품바’로 유명한 김시라(1945∼2001)의 생가가 있다.
품바의 익살스런 해학과 신랄한 풍자는 억압과 폭압의 시절 민초들의 한과 웃음을 담은 한국형 모노드라마의 진수로 통한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로 시작하는 고(故)김시라 선생의 품바는 1996년 한국 연극사상 최장기 최다공연, 최대관객동원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기록됐다.

 

 


- 영암 일대
왕인 박사, 도선국사 이야기 흐르는 구림마을

 

 

영산강 물길을 갈무리 하는 영암군에는 2200여 년의 긴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중의 하나인, 구림마을이 있다. 구림은 삼한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고대 중국과 일본을 왕래하는 국제무역항이었다. 목포에서 영산강 뱃길을 타고 들어오면 이 마을 상대포까지 배가 들어왔는데 1944년에 만든 학파방조제 때문에 뱃길이 끊겼다. 백제의 왕인 박사도 일본으로 건너갈 적에 이 상대포 나루에서 배를 탔다고 한다.

 


구림마을의 국사암에는 도선국사(827∼898) 출생에 얽힌 유명한 전설이 전해온다. 비둘기가 아이(도선국사)를 보호한 숲이라 하여 마을 이름도 구림(鳩林)이 되었다.
이 마을엔 조선시대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도 아련히 전해진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의 손에/ 자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조선 선조 때 함경도 경성의 기생이었던 홍랑(洪娘)은 고죽(孤竹) 최경창(1539~1583)에게‘묏버들 가려 꺾어’라는 시조로 사랑고백을 했다. 최경창은 기생과의 사랑이 빌미가 돼 파직을 당하면서도 ‘홍랑에게 주는 글’을 자신의 문집에 남겨 사랑을 확인했다.

 

 

이제 영산강 강물은 가마솥 뚜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소댕이섬’을 지난다. 이곳에는 서해바다로 나가는 배들의 식수를 책임지던 ‘생기미샘’이 있다.
생김새 또한 심상치 않다. 샘 위로 들어선 집의 방구들 아래 바위틈에서 물이 나온다. 바다의 뜨거운 햇볕에도 주눅 들지 않던 생기미 샘물은 다른 샘물들과 달리 보름이 지나도 물맛이 변하지않아 먼 뱃길 오르는 어부들에게 생명수 역할을 했다.

 


영산강은 바야흐로 영암의 매월포와 남창천을 합류하며 영산호에 이른다. 강물은 하구둑 갑문아래로 몸을 낮추고 서해바다로 천천히 스며든다. 삼백오십 리 길을 쉼없이 달려온 영산강이 긴숨을 토해 내며 바다에 몸을 푼다.
골짜기 연못물이 넘쳐 시내를 이루고 강이 되어 쉬엄쉬엄 대양에 이르는 물길. 웅숭깊게 흐르는 그 강으로 타박타박 떠나가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