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양 일대
영산강 시원 ‘용소’와 추월산 금성산성, 관방제림
폭포의 바위틈 사이로 용이 꿈틀대며 지나간 듯 움푹 파인 나선의 흔적이 여럿이다. 전남 담양군 용면 용추산(523m) 자락의 가마골 계곡.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들이 모여 형성된 원형의 연못이 바로 장장 350리 영산강의 시원지인 ‘용소(龍沼)’다. 승천의 꿈을 이루지 못한 용의 슬픈 전설이 역사 속의 숱한 미완의 꿈을 대신 말해주는 듯하다.
옛시절 이곳 가마골에는 숯 굽는 가마가 많았고 벌목하는 산판도 많았다. 용추사 근처에 남아있는 가마터에서 ‘가마골’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용소에 이르는 가마골 입구의 29번 도로는 계곡 물길을 따라 담양읍에 이르는데, 이 길을 따라 추월산 그늘 아래 모습을 드러낸 담양호는 절경을 이룬다.
담양 추월산에는 금성산성(사적 제353호)이 있다. 내성 길이만 700m, 외성은 2000m에 달한다.
고려시대에 쌓았다는 이 성의 별칭은 ‘이천골(二千骨)’. 그만큼 백성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정유재란 때 왜군이 호남의 성들을 유린할 때도 이곳 금성만큼은 쉬이 함락하지 못했다 한다. 이때문인지 남원성과 더불어 의병항쟁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조선말 역사의 격변기에는 담양, 광주, 장성, 순창 일원의 1천여 명의 동학군들이 관군에게 밀려 찾아든 곳이다. 동학군은 이곳에서 20여 일을 버티며 관군에 맞서 싸웠으나 결국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때 성내의 모든 건물과 시설이 파괴되고 소실되었다. 이곳을 거쳐간 이들은 동학군들만이 아니었다. 구한말의 의병들 역시 이곳에서 일제에 맞서 항쟁을 펼치기도 했다. 이처럼 금성산성은 격변의 중심에서 세상을 바꾸고자 꿈꾸던 이들의 혁명의 터이자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한 이들의 피땀과 눈물이 어린 성이 되어 오늘도 말없이 영산강 물길을 굽어보고 있다. 영산강 물길은 담양읍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관방제림과 죽녹원으로 이어지며 영산강 상류 풍광의 정점을 이룬다. 담양과 순창을 오가는 24번 도로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화려한 휴가> 등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받아온 담양의 명물. 2003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담양천이 흐르는 둑길로 접어들면 관방제림(천연기념물 제366호)이 펼쳐진다. 용소에서 시작된 영산강 상류 담양천의 물길을 다스리기 위해 조선 중기에 이 고을 부사가 백성들을 동원해서 쌓은 인공제방이 관방제. 물을 다스리기 위해 울창한 숲도 조성했으니 그것이 바로 관방제림이다. 숲을 걸으면 수백 년 된 고목들의 오랜 숨결이 느껴진다. 자연과 하나되는 시간. 담양 일대의 영산강은 일상의 쳇바퀴에서 잠시 벗어나 느릿한 여유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 광주 일대
극락강 풍영정과 서창나루 뱃사공 박호련
담양을 거쳐 광주로 흐르는 영산강을 ‘극락강(極樂江)’이라 부른다. 광주광역시 신창동 광신대교 옆 언덕, 새아씨의 도톰한 입술처럼 도드라진 곳에 풍영정(風詠亭·광주광역시문화재자료 제4호)이 있다. 한석봉이 쓴 ‘제일호산(第一湖山)’ 편액이 선명하다. 이곳에 정자를 지은 이는 조선후기의 문인 김언거(1503~1584). 1560년 벼슬에서 물러나며 ‘맑은 바람 쐬며 시를 읊고’ 살고픈 소박한 꿈을 꾸었다.
정자 현판의 ‘풍(風)’자에는 이런 전설이 깃들어 있다. 정자에 걸 현판을 써준 갈처사는 김언거에게 “정자를 지을 터에 도착하기 전에는 절대 글자를 펴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궁금함을 참지 못한 김언거가 첫 장을 열자 그만 ‘풍’자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놀란 김인거가 갈처사에게 되돌아가 다시 써줄 것을 청했지만 거절당하고 그의 제자인 황처사에게 어렵사리 ‘풍’자를 받았다. 이 때문인가, 현판을 자세히 보면 기울어진 ‘풍’자를 발견할 수 있다. 옛 시절에는 이 정자아래 나루터가 있었다. 영산포에서 소금을 싣고 오는 소금배들이 오르내렸다 한다. 소금장수 총각과 장씨 처녀의 못다 이룬 사랑 이야기도 전해진다.
영산강변의 광주광역시 남구 신창마을은 사방이 툭 트인 들판에 호젓하게 서 있다. 담양을 거쳐 광주천을 만나 몸을 불린 극락강이 장성 땅을 적시고 광주에 이른 황룡강과 만나 드디어 영산강 본류를 이루는 곳이다.
이곳에 마을이 생긴 건 불과 20세기 전후다. 지긋지긋한 홍수로 인해 사람들이 살 수 없던 질곡의 땅. 영산강은 가히 홍수의 강이었다. 오죽하면 ‘광산(광주 광산구)큰애기 오줌만 싸도 물이 넘친다’고 했겠는가. 홍수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마음과 돈을 나눈 이도 있었다. 인근 서창나루에 살던 뱃사공 박호련이 그 주인공이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뱃일을 하며 알뜰하게 모은 돈으로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돕곤 했다. 흉년이나 홍수로인해 농사를 망친 이웃들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자신이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주민들은 그의 씀씀이를 높이 사 그를 기리는 송덕비를 나루터 인근에 세웠다.
- 나주 일대
영산포 등대와 홍어, 그리고 반남고분군
영산강은 담양과 광주를 휘돌아 나주평야를 적시고, 천년 목사골 나주로 접어든다.
전라도라는 이름이 전주와 나주를 합친 데서 나온 이름이듯, 나주는 전라도에서 전주 다음으로 큰 고을이었다. 쌀과 목화, 누에고치가 유명해 예로부터 ‘삼백(三白)골’이라 불렸다.
영산강을 밝히던 영산포구는 이곳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영산강의 심장이다. 목포에서 영산포구까지 오가던 수척의 배들이 몸을 누이고 쉬어가던 포구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천년 이상 이어온 영산강 뱃길은 1976년 영산강 하구둑 건설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외로이 선 영산포 등대(등록문화재 제129호)만이 흥성했던 뱃길의 기억을 간직할 뿐이다.
영산포 등대는 일제강점기의 산물로, 일본은 호남의 곡창 나주평야에서 난 곡물들을 영산강 뱃길을 통해 수탈해 갔다.
영산대교에 가까워질수록 코끝을 간질거리는 알싸한 향이 짙어진다.
톡 쏘는 맛이 일품인 홍어 냄새다.
삭힌 홍어는 남도음식의 정수로 매김돼 왔다. 600년을 이어온 삭힌 홍어의 고향이 바로 이곳, 나주 영산포다.
삭힌 홍어의 역사는 고려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극성스러운 왜구를 피해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정책에 강제로 피난을 떠난 흑산 영산도 사람들이 영산강을 타고 올라와 정착한 곳이 지금의 영산포다. 흑산도 홍어가 주인을 따라 올라온 것인데, 영산포까지 올라오는 10여 일 동안 홍어만이 썩지 않고 삭은 맛이 나 별미로 먹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좋은 음식들을 차린 잔칫집이라도 홍어 없으면 소용없다”는 남도 사람들의 말은 빈말이 아니다. 코끝이 뻥 뚫리는 그 알싸한 맛은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중독성이 있다.
문자가 남겨지기 이전, 영산강 유역은 ‘마한’의 땅이었다. 지금도 ‘장고분’이라 불리는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형태의 대형 고분들이 곳곳에 산재한다. 영산강을 끼고 펼쳐진 평야지대에 봉긋 솟아오른 봉분들은 형태는 물론 규모 또한 경이롭다. 이 곳에서 독무덤들이 발견되곤 한다.
이 장고분들은 일본의 고분들과 닮은 구석이 많다. 영산강이 고대 일본으로 이어지는 문화교류의 통로 구실을 했음을 말해주는 증거다. 그 중심에 반남고분군(사적 제513호)이 있다. 반남 지역에는 금동관(국보 제295호, 삼국시대) 등이 발굴된 신촌리 8호분을 비롯, 덕산리 14호분, 대안리 12호분 등 총 34기의 고분들이 있다.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대형옹관고분도 수십 기나 분포해 있다. 인근 복암리에도 32기의 다양한 고분들(사적 제404호)이 있다. 옹관묘, 석실묘, 석관묘 등 형태도 다양하다.
또 하나, 나주 영동리에는 ‘샛골나이’가 있다. ‘샛골마을에서 나는 베라는 뜻’이다. 지금은 목화를 생산하는 곳을 찾기 어렵지만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목화는 ‘백색 황금’으로 불릴만큼 농가의 큰 수입원으로 앞다퉈 재배하던 작물이었다. 나주 남평은 일제강점기 전라도 최대의 면화 재배지이자 거래지였다.
‘남도땅에 장마 지면 종성(鐘城, 함경도 최북단) 처녀 눈물 짓는다’는 말이 있다. 목화 주산지인 남도에 흉년이 들어 목화 값이 치솟으면 목화를 빌려다 쓴 함경도 사람들이 딸을 팔아 빚을 갚았다는 비극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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