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따라 대청호 따라
충청권의 젖줄이라 부르는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신무산에서 발원한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일반적인 강줄기와 달리 금강은 남쪽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거슬러 오른다. 진안고원을 지나며 용담호를 만들고 다시 흘러 충청남도 금산군과 충청북도 영동군, 옥천군, 청원군 등을 지난다. 이곳에서 대청호를 만든다. 대청호에서 잠시 갈 길을 멈췄던 금강은 충청북도 청원군 부강면 즈음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미호천을 더하고 백제 고도인 충청남도 공주시와 부여군을 차례로 지난다. 공주에서 남서쪽으로 고개를 돌린 금강은 논산군을 지나 전라북도 군산시와 충청남도 서천시 사이에서 도 경계를 이루며 서해로 흘러든다. 금강은 천 리다.
금강은 충청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크다. 공주와 부여라는 백제 왕도가 금강에 기대어 건설되었고 내륙 깊숙한 곳까지 물줄기가 이어지며 황포돛배와 뗏목 등을 이용해 농수산물을 비롯한 다양한 물자를 옮겼다.
그 금강 줄기에 기대 1980년, 대청댐을 만들었다. 대청댐은 충북 청원군 현도면 하석리와 대전 대덕구 신탄진동 사이 금강 본류를 가로지른다. 대청댐으로 막힌 금강은 호수를 만들었다. 대청호 아래로 마을을 잃은 사람들은 산 위로 올라와, 이제는 대청호와 함께 살아간다.
대청호 오백리길은 대청호를 동무 삼아 도는 길이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문화유산은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삶’에 관한 사유의 시간을 주고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힌다. 대전, 옥천, 보은, 청원의 경계를 넘나들며 흐르는 대청호를 따라 걷다 보면, 많은 것이 마음속에서 경계 없이 허물어진다.
<1구간>
- 대청댐 물문화관
물을 담아 이야기하는 길
1980년 완공한 대청댐은 은빛 물길을 막아 호수를 만들었다. 댐은 높이 72m, 길이 495m의 중력식 사력댐이다. 흐르던 물은 갈 길을 잃고, 사람이 살던 곳으로 올라와 호수가 되었다. 강물이 산자락과 만나 구불구불한 선을 만든다. 대청댐 조성 이후 생긴 대청호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다.
대청댐 건설로 수몰예정지역에 있던 4075세대 2만 6천여 명의 주민은 모두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마을은 물을 품었지만, 사람을 잃었다. 사람도 물을 얻은 대신 고향을 잃었다. 대청댐 주변에 공원 등 휴게시설과 함께 만든 대청댐 물문화관은 고향을 잃은 사람의 마음을 달래며 이들 삶을 기록해 두었다. 금강 주변 마을과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사진을 전시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를 연다. 대청댐 물문화관 옆으로는 대청호 오백리길을 시작하는 1구간 진입로가 있다
- 민평기 가옥
좋은 기운이 흐르는 마을
대전광역시 대덕구 삼정동 앞에서 바라본 대청호에 쇠백로가 날아든다. 큰 쟁반을 띄워놓은 듯한 인공습지는 주변 호수 풍광과 잘 어우러진다. 이곳 삼정동은 한 노승이 찾아와 정승 세 명이 나올 것이라는 예언을 해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대전역사박물관은 이 마을 명당으로 천혈(天穴), 지혈(地穴), 인혈(人穴)이 있고 이곳에 은진 송씨, 여흥 민씨, 충주 박씨가 각각 묘를 써 크게 일어났다는 후대 이야기를 전한다. 이중 여흥 민씨, 민후식 선생이 지은 ‘전통 가옥’이 이 마을에 있다. ‘민평기 가옥’이라 부르는 이 가옥은 조선 말 고종황제의 승지를 지낸 민후식 선생이 ‘삼정골’ 마을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처음 지은 것이다. 민후식 선생은 구한말 혼란스런 중앙정치권을 벗어나 초야에 묻혀 생활하기 위해 산과 강이 함께 보이는 이곳으로 내려왔다. 이후 여흥 민씨 4대가 연이어 이곳에 살았다.
19대 장손인 민후식 선생부터 22대 민평기 선생까지 마을을 지켰다. 이후 댐 건설로 물이 차오르고, 마을이 사라졌다. 민평기 가옥은 그 모습을 간직한 채 대청댐 위로 올라왔다.
“저기 지금 물이 찬 곳에 삼정골이 있었어. 처음 시집올 적에는 거기로 시집을 갔지. 자식들은 외지로 나가고, 지금은 남편이랑 나랑 둘만 있어.”
22대 종부인 김화중 할머니 이야기다. 가옥은 야트막한 언덕에 기대어 섰다. 가운데 마당을 두고, 입이 트인 ‘ㅁ’자 형이다. 이전하면서 목조 일부분이 벽돌조로 바뀌었다고 한다. 마당에서 안채로 올라서는 기단이 무척 높다. 행랑채를 양 옆에 두고 대문을 만들었다. 마당에 들어서면 ‘ㄱ’자 형태로 안채를 배치했다. 동향에 야트막한 구릉이 집 뒤편을 위압적이지 않게 막아주어 안온한 느낌이다.
이현동생태습지공원
대청호 오백리길을 따라 걸으며 느끼는 재미 중 하나는 표지판 찾기다. 곳곳에 숨은 표지판을 찾아 길을 따라가다 보면, 대청호 두메마을(www.dumevil.com)을 만난다. 두메마을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던 전옥순 할머니에게 ‘담배창고’ 위치를 물었다. 담배농사는 농촌에서 소와 함께 중요한 수익원이었다. 그때는 담배창고가 시골 마을에 몇 개씩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흙담으로 높이 솟게 만들어 놓은 담배창고는 정미소와 함께 마을에서 도드라졌던 근대 풍경 중 하나다. 담배창고가 이 마을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쉽게 사라진 후였다.
“담배창고가 있었지. 근데 작년인가에 없어졌어. 낡아서 부쉈나 봐.”
스무 살에 시집와 육십 년을 마을에서 산 할머니는 변화한 마을을 초연하게 바라봤다.
“변하는 걸 어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올라와 살 사람은 올라오고, 떠날 사람은 다 떠났지. 지금은 사람이 별로 없어.”
마을 뒤로 난 둥글넓적한 산은 배처럼 생겼다고 해서 ‘배산’이라고 불렀다. ‘배오개’라는 마을 이름은 배산 동쪽 아래에 있는 고개 이름에서 따왔다. 마을로 들어오는 고개 초입에 크고 오래된 배나무가 있어 배오개라고 한다. 마을을 찬찬히 바라본 후에야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름이다. 지금은 배 이(梨) 자를 써 이현동이라 부른다. 농촌체험마을을 조성하며 새로 붙인 이름은 ‘대청호 두메마을’이다.
배오개 마을은 깊이 들어갈수록 매력적이다. 남쪽으로는 계족산을, 북쪽으로는 대청호를 두고 들어앉은 마을이 의젓하다. 2012년에 생태습지공원을 조성해 마을은 잘 정돈된 모습이다. 주차장부터 억새 습지로 들어가는 길이 잘 닦였다. 대청호로 흘러가는 개울 하단부에 자리잡은 억새 습지에서는 아직 어른 키만큼 자란 억새를 보지 못한다. 2014년 즈음이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지나던 마을 주민이 말한다. 고개를 둘레둘레 흔들며 걷다 독특한 묘비명을 발견했다. ‘도토리지묘’, 묘비 뒤쪽에는 <2007년 7월 (구) 배오개 주민 일동>이라고 적혔다. 마을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묘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에 자식도 없이 논 한두 마지기 부치며 살던 사람이 있었어. 마을에서 그이를 ‘도톨네’라고 불렀던 모양이야. 그이가 나이 먹고 갈 때 되니까 동네에 논을 기부했어. 자기 죽으면 묘를 써주고, 제사 지내달라고 유언하면서. 본래는 저 아래 있었는데, 댐 지으면서 묘지를 지금 자리로 옮겼지. 나 어릴 때도 있었고, 훨씬 전에도 있었어. 묘비명은 이곳으로 묘를 이장하면서 새로 만들어 세운 것이지.”
<2구간>
- 성치산성
풍경을 담은 산성
억새 습지 길을 계속 따라 가면 찬샘 마을(www.chansaem.com)로 향하는 길이나온다. 찬샘마을은 마을 공간과 자원을 활용한 체험마을이다. 생계수단이었던 농사가 체험수단으로 변하는 모습을 조금씩 볼 수 있다.
찬샘마을을 지나 부수동에서 멈춘다. 부수동은 연화부수(蓮花浮水: 연꽃이 물에 떠있는 모양의 명당자리)라는 말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청남대가 호수 건너로 보이는 이 길은 대청호를 따라 자전거를 타는 코스이기도 하다. 청남대를 개방하기 전 그곳을 지키는 군부대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 부수동 끝자락, 나무 틈새로 보이는 대청호가 눈길을 빼앗는다. 나뭇가지가 만든 거친 틈으로 풍광과 함께 산과 호수가 내뱉는 청량한 숨이 들락거린다.
부수동에서 산길을 따라가면 성치산성(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9호)을 만난다. 보존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다. 산세를 해치지 않고, 그 결을 따라 이어놓은 산성은 이제 그 흔적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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