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여행길 14 - 뭇생명들의 집, 서해안 갯벌을 따라

이산저산구름 2014. 8. 10. 15:28

 

 

“고것 하나문 고봉밥도 뚝딱이여. 서렁기! 내가 고것 잡는 선수제. 우리 고향이 돌머리 갯벌이거든.”
서렁기! 칠게를 부르는 이곳 남도의 말이다. 부산으로 이사간 지 삼십 년 세월이 다 되어가는 어느 아짐은 고향 하면 맨처음 ‘서렁기’가 떠오른다 했다. 혀에 새겨진 고향의 맛이다. 아짐에게 서렁기는 고향 갯벌과 고향 산천을 통째로 떠올리는 존재. ‘구녕(구멍)을 쑤셔서’ 서렁기를 잡는 기술은 몸에 새겨져 아무리 세월이 가도 닳지 않는다고 했다.

서해안 갯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렁기(칠게)는 건강한 갯벌의 지표이다. 칠게는 펄갯벌을 선호한다. 양쪽 집게발을 숟가락 삼은 듯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유기물을 먹는 사이, 수질을 정화하는 역할까지 한다.
서렁기 뿐일까. 농게, 꽃게, 짱뚱어, 갯지렁이, 낙지, 숭어, 민어, 도요새 할 것없이 수많은 생명들이 기대어 사는 터전. 서해 갯벌은 북해 연안, 캐나다 동부 연안, 아마존 유역 연안, 미국 동부 조지아 연안 등과 더불어 세계 5대 갯벌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갯벌에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일 년에 펄이 쌓이는 양은 겨우 1cm. 지금의 갯
벌이 있기까지 5천 년에서 8천 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수수많은 시간과 생명이 깃든 그 길을 따라가는 걸음을 함평 돌머리부터 시작해, 무안 월두마을, 용산마을, 도리포 그리고 증도로 이어본다.

 


- 함평 돌머리갯벌
“추워지문 석화 깔 일만 남았제”

 

  

함평 돌머리 갯벌(함평읍 석성리 석두마을). 조개를 따는 도구인 조새만 들고 가면 빈 손으로 안 나온다는 갯벌이다. ‘바닥(갯벌)을 보고’ 사는 삶. 그만큼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갯벌이고, 그만큼 거기에 바쳐지는 노동도 많다.
석두마을 사람들에게 겨울은 ‘석화(굴) 까는 시간’이다. 11월 말부터 시작되는 석화 작업. 마을에서 만난 할머니는 “추워지문 석화 깔 일만 남았제”라고 말한다. “여그 석화는 보문 알어. 딴 디(데)보다 훨썩(훨씬) 맛나.”
갯벌생태체험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나무데크길을 조성해 갯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1km 길이의 백사장을 두른 해변은 뒤편으로 곰솔숲이 우거져 여름이면 찾는 이들이 많다. 아름다운 해넘이로도 유명하며 인근의 게르마늄 해수약찜도 인기다.

 

 


 

- 무안 월두마을
일몰 뿐 아니라 일출의 장관까지 펼쳐지는 곳

 

  

함평에서 무안에 이르는 길은 황토밭 너머 바다와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다. 푸른 바다가 붉은황토밭을 깊숙하게 파고 들어와 있곤 하는 길이다.
무안 월두마을(현경면 용정리)은 해제반도 들머리인 현경면에서 용정리 마을로 꺾이는 길목에있다. 삥삥 둘러서 바다를 두른 마을. 서해안이지만 일몰 뿐 아니라 일출의 장관까지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마을길 지나면 물결 출렁이는 바다가 열린다. 초승달처럼 생긴 해안 때문에 ‘달머리(월두, 月頭)’라는 마을이름을 얻었다. 길다란 모래밭 끝에 이어진 섬은 도당섬으로, 푸른 소나무가 울울하게 자라고 있다. 해는 도당섬 너머로 떠오른다. 도당섬 옆에 있는 섬은 대섬이다. 대섬은 물이 빠지면 걸어서 갈 수 있지만 물이 들면 섬이다. 지도에서 해제반도를 가늘고 긴 사슴뿔 모양으로 보이게 하는 지점이 이곳이다.
도당섬을 기준으로 왼쪽이 홀통해수욕장이고 오른쪽은 널따란 갯벌이다.
“여가(여기가) 석화도 좋고 낙자(낙지)도 좋고 숭어도 좋고….” 월두마을에 사는 할머니 말씀. 많은 것들을 품고 기르는 갯벌이다. 월두마을 갯벌은 겨울에 푸르다. 갯골을 따라 초록빛 출렁인다. 서남해안 갯벌이 내어주는 또 하나의 별미인 감태가 지천이다. 무안 갯벌에서 나는 감태는 맛이 깔끔하고 향긋한 갯내음을 풍긴다.

 


- 무안 용산마을
마을 주민들이 애써 지켜낸 갯벌

 

  

해제반도 들머리 유월리와 도리포를 잇는 해안도로는 무안의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 리아스식 해안을 휘돌아 굽이칠 때마다 예기치 않은 아름다운 풍광들을 맞닥뜨린다. 그 풍광의 중심에 갯벌이 있다.
“바다는 핸금(현금)이여. 농사는 지면 밑까(밑져). 갯바닥은 잡은께 재밌제. 숭애 잡고 새비 잡고 농기(농게) 잡고 서렁기(칠게) 잡고 뻘떡기(민꽃게) 살키(꽃게) 잡고.”
해제면 유월리 용산마을 갯바닥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갯벌 자랑이다. 영산강간척 4단계사업으로 지도에서 사라질 뻔했던 용산마을 갯벌. 마을 주민들의 반대로 지켜진 갯벌에는 갯벌 생명들도 사람들도 사이좋게 기대어 산다.
용산마을은 황토 구릉을 등지고 너른 함해만을 보듬고 있다. 물이 쓰면 드러나는 십리 갯벌에는 태고의 원시성이 살아 있으며 생물종이 다양하다. 뻘이 좋은 이곳에선 숭어, 낙지, 새우, 굴 등이 많이 잡힌다.
“뽀글뽀글 물방울 올라오는 것이 보이요. 낙지 숨구멍이어라.”

낙지잡이는 구멍 찾기에 달렸다. 그 이름도 유명한 ‘무안 뻘낙지’. 그처럼 많은 낙지집 간판 속에 등장하는 무안 낙지는 뻘색을 띠고 있다. 게르마늄이 풍부한 갯벌에서 자라 맛이 좋다. 해안선을 중심으로 전체 면적의 70% 정도가 황토로 덮여 있어 ‘황토골’이라는 별칭이 붙은 무안.
이곳 황토는 특히 게르마늄 성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무안 갯벌은 썰물 때 드러나는 면적도 넓지만 게르마늄 함량이 높기로 유명하다.
무안 현경·해제면 일원(함평만)은 2008년 5월 무안갯벌도립공원 1호로 지정됐다. 습지보호지역 제1호이자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갯벌이기도 하다. 지난 2011년 용산마을 앞 해안가에 세워진 ‘무안생태갯벌센터’는 다목적 영상관을 비롯 3D입체 갯벌탐사관, 갯벌탐방로 등을 갖추고 갯벌의 소중함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