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여행길 12 - 느림과 곡선의 아름다움, 남도의 간이역들

이산저산구름 2014. 7. 8. 11:57

 

 

 

<간이역은 오랫동안 이 땅의 이름없는 장삼이사들을 실어 나르던 달구지 같은 완행열차 정류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빨리 달려야 한다는 속도중독증의 미친 세월을 만나, 이 땅의 아름답고 한가로운 간이역은 다 떨어진 고무신짝처럼 버려지고 허물어지고 잊혀져 내동댕이 쳐지고 있습니다.>
2004년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이 ‘간이역’에게 준 ‘풀꽃상’ 상장을 새겨 읽는다.
직선과 속도로는 도달할 수 없는 그곳. 무수히 많은 기억들을 켜켜이 안고 있는 곳. 배웅과 마중, 이별과 재회, 수많은 추억의 순간들이 머물러 있는 그리움의 공간 간이역을 향해 떠난다.

 

 

- 군산 임피역
일제 강점기 쌀 수탈의 아픈 역사

 

 

뾰족한 세모 지붕과 굴뚝이 있는 역사(驛舍). 그 옆으로 낡을 대로 낡은 소방지소와 녹슨 망루. 시대극이라도 찍을 양으로 부러 만들어 둔 것 같은 임피(臨陂)역(등록문화재 제208호).
1912년 12월1일 세워진 임피역사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다. 곡창지대를 달리는 군산선의 다른 역사들처럼 일제강점기 전라남북도의 농산물을 군산항을 통하여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요교통로의 역할을 해야 했던 곳. 쌀 수탈의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현장이다.

 

 

본래 임피면 읍내리에 만들어져야 했으나, 읍내리 유림들이 풍수지리적 이유로 반대하여 술산리를 경유하게 되었다.
“기차가 처음 댕길 때는 저렇게 빠른 걸 타면 사람이 제 정신을 잃어버리겄다고 노인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디야.”
“해방 후에는 임피서 익산으로 해서 서울까지 쌀을 팔러 다닌 사람들도 있어. 서울이 쌀이 귀허다고 쌀금이 좋다고 허니까 90킬로짜리 쌀을, 그 무거운 걸 지고 가. 그때 사람들은 식구들 입에 거미줄 칠까봐 내 몸뚱아리는 없어!”
임피역 역전상회 앞 평상에 마실 나온 동네 어르신들은 “전에는 이 근동에서 임피역으로 넘어오는 산길들이 다 반들반들했다”고, 번성했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땐 버스가 없었잖여. 저어기 10리 밖에서 이리 군산으로 다니는 통학생이 빡빡허니 찼어.”

“설이다 추석이다 허문 역 앞이 자식기다리는 노인네들 판이었어. 10년 전만 해도 그랬어.”
1912년 영업개시, 1912년 현재의 역사 준공, 1995년 배치간이역으로 격하, 2008년 5월1일 여객취급 중지. 그리하여, 오랜 세월 ‘동네 대문간’이었던 이곳은 이제 동네사람들의 ‘추억의 곳간’이됐다.

 


- 익산 춘포역
통학생들, 장꾼들 북적이던 대합실

 

 

100년 전 일이다. 이리∼전주간 전라선이 개통된 때인 1914년 지어진 춘포역사(등록문화재 제210호). 슬레이트를 얹은 박공지붕의 목조 구조가 농촌지역 간이역사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있어 건축사적·철도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대장(大場)역’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해‘춘포역’으로 바뀐 것은 1996년.
‘대장’이라는 땅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생겨난말이다. “일본 사람들이 들이 넓다고 큰 대(大), 마당 장(場) 자를 써 갖고 ‘대장촌’이라고혔어.”
너른 들을 보듬은 춘포역 또한 일제강점기의 수탈의 아픈 역사에서 비껴갈 수 없었다. “일본놈들이 완주부터 김제 진봉까지 만경강 제방공사를 혔잖애. 농경지 만들어서 쌀을 다뺏어 갔어. 쌀이 농장에 모태지문 구루마로 역전으로 실어가. 7명이나 10명이 나른디 하루 품삯이 50전이었어. 서울 가는 차비가 500원이었는게 품삯이라고 헐 것도 없제. 한국사람은 권한이 없는게 시키는 대로 혔제.”
‘춘포역’이 된 건 마을 이름이 ‘춘포’로 바뀌면서부터다.‘춘포(春捕)’는 ‘봄나루’이니‘봄개’라는 옛이름과 닿아 있다.
“옛날에는 군산 앞바다에서 만경강 타고 배가 여기까정 왔제. 나루가 있는게 시장도 서고, 새비(새우)젓 시장이 좋았어.”
“강 건너 백구 사람들도 춘포 와서 기차 타고 댕겼제. 중학교 고등학교를 이리(익산)로 댕긴게 아침에는 학생들 땜시 기차를 타들 못혀. 삼례장 이리장 설 때는 말도 못허고. 서울이고 전주고 군산이고 기차로 짐 다 부치고. 기차 없으문 생활을 못하는 데였어.”
1993년 비둘기호 승차권 발매중지, 2005년 역원 무배치 간이역 격하, 2011년 5월13일 전라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폐역, 그리고 춘포역엔 100년간 울리던 기적소리가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