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안 송계마을과 도리포
고려청자 인양지로도 유명
용산마을에서 가까운 송석리 송계마을도 어촌체험마을이다. 송계마을의 낙지잡이 고수 홍쌍수씨는 “무조건 파는 것이 아녀”라며 “낙지 잡는 것도 예술”이라 말한다.
“낙자가 서렁기를 젤 좋아해. 근께 서렁기 있는 디를 잘 봐야제. 기 구멍이 안 보이는 자리도 잘봐야혀. 뻘을 발로 가만히 볼바(밟아)봐. 낙자가 있는 자리문 물이 쑥 올라와. 삽으로 두어가리(뻘을) 뜨문 나와.”
송계마을과 도리포 사이의 바닷가 송림에 관광안내소와 갯벌체험장 등이 조성돼 있다.
도리포는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서해안의 명소로, 매년 1월1일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겨울철에는 함평의 바다 쪽에서 해가 뜨고, 여름철에는 영광의 산 쪽에서 해가 뜬다.
“바다가 쪼깨만 더 파고들어왔으믄 섬이 돼부렀을 것이여.”
이곳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곳이 해제반도. 현경면 송정리의 400여m에 불과한 가는 목으로인해 육지와 연결된 반도이다. 그 반도의 한귀퉁이가 북쪽으로 뻗어나간 곳들에서는 서해로 뜨는 해와 지는 해를 동시에 볼 수 있다.
동쪽으로 함평만의 길목이며 북서쪽으로 칠산바다를 두르고 있는 도리포는 전에는 칠산바다에서 잡힌 조기가 부려지기도 했던 포구다. 칠산바다 쪽의 일몰 또한 장관을 이룬다. 도리포는 1995년 이곳 앞바다에서 민간 잠수부들에 의해 고려청자가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고려청자 인양지로 이름을 얻었다.
도리포 해저유물 매장해역(사적 제395호)은 도리포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약 3km 떨어진 곳으로 함평만에 속한다. 이 함평만은 무안군·영광군·함평군의 경계해역으로 과거 경인 지역과 서남해안을 연결하는 중요해로였던 칠산바다가 앞에 놓여 있으며, 사적 제274호인 ‘신안 송·원대 유물매장해역’과는 15km정도 떨어져 있다. 도리포 앞바다의 깊이는 평균 8∼10m이고 바다 밑은 개흙과 모래가 섞인 지형. 세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고려청자 639점을 건졌다. 뭍으로 올라온 14세기의 이 청자들은 당시 도리포가 중국과 활발한 교역의 통로였다는 증거일것이다.
- 신안 증도
소금과 짱뚱어로 이름난 슬로시티
예전에 사옥도의 지신개 선착장에서 증도 버지 선착장까지는 배로 15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짧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 만큼의 바닷길이 오래도록 증도를 온전히 ‘섬’이게 했다. 지난 2010년 3월 지신개에서 증도 광암으로 이어지는 증도대교가 완성되면서 이제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본섬인 증도를 비롯해 화도, 병풍도 등 7개의 유인도와 92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증도의 첫인상은 소금에서 시작된다. 증도가 지난 2007년 슬로시티로 지정된 것 역시 이 천일염의 힘이다. 천일염 자체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마음으로 거둬내는 슬로푸드이지 않는가.
소금밭 낙조전망대에 오르면 가슴이 탁 트인다. 광활하게 펼쳐진 염전. 바로 ‘태평염전’(등록문화재 제360호)이다. ‘태평(太平)’이란 이름답게 거침없이 크다. 서남해안 청정갯벌이 낳은 이 너른 염전은 무려 140만평으로, 단일염전으로는 국내 최대규모다.
태평염전이 증도에 만들어진 때는 1953년. 전쟁 피난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물이 빠지면 징검다리로 건너다니던 전증도와 후증도 사이의 갯벌에 둑을 쌓아 염전을 만든 것이 시초다.
소금은 열다섯 바닥을 거쳐 꽃을 피운다. 소금이 시작되는 바닥인 1증발지 ‘난치’에서 2증발지인‘느티’를 지나 결정지까지 15단계다. 긴 기다림 끝에 소금은 온다! 만드는 것도, 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온다’. 소금 뒤에 붙는 ‘온다’는 말은 겸손하고 동적이고 아름답고 극적이다. 긴 ‘기다림’이 없었다면 감탄사 같은 ‘온다’란 말 역시 소금 앞에 따라붙을 수 없었을 것. 사람의 정성을 다한 자리에 하늘과 바람과 햇볕이 거들어 소금이 온다. 반가운 손님처럼 온다.
패스트푸드적인 기계염(정제염)이 염화나트륨 덩어리라면 갯벌 천일염은 다양한 미네랄의 결합체. 이 미네랄의 함량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난다. 미네랄이 풍부한 갯벌 천일염은 소금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0.2%에 불과한 희귀자원이기도 하다.
태평염전 옆에 소금박물관(등록문화재 제361호)이 있다. 이 소금박물관의 원래 출신성분은 소금창고다. 소금창고가 위치한 곳은 버지선창가. 옛날에 소금을 많이 구웠던 곳이다. 소금 굽는곳을 이르는 말이 ‘벗터’ 혹은 ‘벗등’이다. ‘버지’라는 이름도 소금을 굽던 곳이라는 뜻이다.
염전에서 흔히 보는 나무로 지어진 소금창고들과 달리, 1953년 태평염전을 조성할 때 만든 이 창고는 돌로 지어져 야무지고 견고한 모양새다. 남한 유일의 석조 소금창고라 우리 염전 역사에서 귀한 유적이기도 하다. 지난 2007년 태평염전과 더불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다.
천장에는 소금창고의 본색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공간 구석구석을 알뜰히 살려 소금에 얽힌 역사와 문화, 증도 태평염전에서 거둬내는 천일염 이야기를 촘촘히 엮어 놓았다.
박물관 뒤로 펼쳐진 갯벌은 염생식물원으로 조성돼 있다. 바닷물에 녹아있는 미네랄을 먹고 자라는 미네랄의 보고인 함초(퉁퉁마디)를 비롯, 칠면초, 나문재, 해홍나물 등 수많은 염생식물들을 볼 수 있다. 증도의 명물인 짱뚱어와 농게를 만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쉴 새 없는 꼼지락거림. 갯벌의 살아있음을 실증하는 몸짓들이다.
뻘 위를 걷고 뛰고 나는 짱뚱어. 짱뚱어다리 옆으로 펼쳐진 갯벌이나 화도로 건너가는 노두길 양편으로 펼쳐진 갯벌에서도 짱뚱어를 흔히 만날 수 있다. 오염된 갯벌에선 살지 못한다는 짱뚱어는 정약전의 <자산어보>엔 눈이 불룩 튀어나온 모양 따라 철목어(凸目魚), <전어지>엔 탄도어(彈塗魚)라고 나온다. 갯벌에서 짱뚱어가 뛰고 나는 양을 볼작시면 그 이름이 딱 맞다. 저렇게 부잡한 놈이 어찌 참고 겨울잠을 잘꼬 싶다. 짱뚱어는 첫서리 내릴 때부터 봄꽃 필 때까지 대문(구멍) 걸어 잠그고 잠을 잔다. 그래서 ‘잠둥어’라고도 한다. 짱뚱어는 오염에 민감해 환경지표종이기도 하다. 짱뚱어가 뛰고 있다는 것은 바로 생명의 갯벌이라는 증표다.
아무 수식어 없이도 꽃같이 아름답고 명징한 이름을 지닌 ‘화도’는 증도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섬. 예전엔 노두가 이편과 저편을 이어 주었다. 썰물 때 드러나는 갯벌 위에 돌을 놓아 건넜다. 물 들면 사라지는 길이었다. 자연의 시간인 ‘물때’가 그 길을 끊기도 하고 잇기도 했다. 지금은 원래 노두가 있던 자리에 다리 같은 길(1.2km)이 놓여졌다.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촬영지로 이름을 날리면서 화도를 찾는 발길도 많이 늘었다.
해넘이를 보는 장소로는 신안해저유물 발굴기념비가 선 언덕이 제격이다. 언덕 못 미처 아래쪽에 ‘만들’(방축리 검산마을)이란 곳이 있다. 무슨 생선이든 많이 잡힌다는 말이다. 찰 만(滿)자를 쓴다.
만들은 ‘독살’의 원형이 남겨져 있는 곳으로 이름난 곳이기도 하다. 독살은 원시 고기잡이 형태. 밀물 때 물의 흐름을 따라 들어온 물고기가 물이 빠지는 썰물 때 안에 갇혀 나가지 못하게 되는 원리를 이용한 일종의 돌 그물이다. 석방렴이라고도 부른다. 서해안은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큰 데다 물고기의 산란장 역할을 하는 갯벌층이 있어 예로부터 독살의 사용이 많았다.
‘신안해저유물 발굴기념비’가 선 언덕에 오른다. 지난 1975년 한 어부의 우연한 발견으로 거대한 배와 수만 점 유물이 발굴된 도덕도 앞바다를 바라보는 지점. 중국 무역항 경원에서 도자기 등을 가득 싣고 일본으로 가던 무역선이 이 곳에서 침몰된 지 652년 만이었다. 증도에 ‘보물섬’이란 이름을 안겨준 그 배와 유물들은 어떻게 그 긴 시간을 버티며 보존되어 남았을까. 그 역시 갯벌 덕분이었다. 침몰된 배에 갯벌이 쌓이면서 보호막 구실을 했기 때문.
갯벌은 힘이 세다! 함평 돌머리에서 무안 해제반도를 거쳐 증도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맞닥뜨리는 갯벌의 힘과 생명력. 개발의 욕망 앞에 끝내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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