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점자시집을 읽는 밤
정호승
늙은 어머니의 잠든 얼굴 곁에서
더듬더듬 점자시집을 읽는 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분노하기보다는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점자시집을 읽으며 잠 못 드는 밤
별들이 내려와 환하게 손가락으로 시집을 읽는다
시들이 손가락에 매달려 눈물을 흘린다
손가락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시집을 적신다
그래, 그래
나는 이제 희망을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잔인한 희망의 미소도 더 이상 증오하지 않기로 한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오직 고통의 방법일지라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은 허락하지 말라고
희망에게 쓰는 편지도 이제 그만 쓰기로 한다
사랑은 날마다 나무에 물을 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젊은 별빛들이 내 손가락 끝에서
환하게 점자시집을 읽는 밤
ㅡ출처 : 시집 『밥값』(창비, 2010)
ㅡ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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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운명이 바뀔 것이 아니면
그렇게 되기를 원했던 희망에 대해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 것도 사랑하는 방법이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사랑이다
젊은 별빛들이 손가락 끝에서
환하게 점자시집을 읽는 밤이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
내가 무엇을 하며 살든
그것은 나의 운명이다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건 우주를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사랑할 줄 안다는 뜻이다, 그래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선택한 분의 의지도 그러했으리라
詩하늘
<시하늘 시편지>☞ http://cafe.daum.net/sihanull/9bUn/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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