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국수
이재무
늦은 점심으로 밀국수를 삶는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
소면은 일직선의 각진 표정을 풀고
척척 늘어져 낭창낭창 살가운 것이
신혼적 아내의 살결 같구나
한결 부드럽고 연해진 몸에
동그랗게 몸 포개고 있는
결연의 저, 하얀 숨결들!
엉키지 않도록 휘휘 젓는다
면발 담긴 멸치국물에 갖은 양념을 넣고
코 밑 거무해진 아들과 겸상을 한다
친정 간 아내 지금쯤 화가 어지간히는 풀렸으리라
ㅡ출처 : 시집 『저녁 6시』(창비, 2007)
ㅡ사진 : 다음 이미지
---------------------------------------------
어려서 배고플 때 이거 한 그릇이면
얼굴에 웃음 한 가득이었다
허기를 채우는 것이라기보다
생명을 이어가는 소중한 먹거리라는 것
맛있는 국수가 되기까지는
국수를 삶는 방법, 뜨거운 물의 온도
면 식히기, 물 빼기, 양념장 맛있게 만들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정성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질 때
한 그릇의 명약을 먹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한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먹는 약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배려 없이
어떻게 맛있는 국수를 먹을 수 있나
시적 화자인 이 남자
국수 제대로 삶았을라나
지금까지 아내에게 얻어먹기만 했을 텐데
뭐든 자신이 해봐야 소중함을 알지
아내의 존재가 국수의 생명력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을라나
詩하늘
<시하늘 시편지>☞ http://cafe.daum.net/sihanull/9bUn/339
'마음을 움직이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Rainbow - William Wordsworth (0) | 2014.05.13 |
---|---|
점자시집을 읽는 밤 (0) | 2014.04.04 |
아네스의 노래 / 박기영 (0) | 2014.03.21 |
그림자가 닿을 수 있는 거리 (0) | 2012.11.20 |
살쾡이 한 마리 - 이은봉 (0) | 2012.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