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외로운 섬, 보길도

이산저산구름 2014. 3. 27. 14:12

 

                        

                                   단시조, 이조태평기 (41) : 외로운 섬, 보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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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원 원주 되어 시비를 고쳐 닫고

 

유수청산을 벗삼아 던졌노라

 

아희야 벽제의 손이라커든 날 나가다 하고려

 

 

 

2014-03-08 13.35.20.jpg

 

 신원의 원주가 된 뒤로는

사립문을 챙겨 닫고서

 

흐르는 물과 푸른 산을 바라보면서

아무 잡념 없이 조용히 지내고 있노라

 

아이야, 만일 벽제에서 귀한 손님이

나를 찾거들랑 나갔다고 일러 다오

 

 

 

사진_1108[1].jpg

 



그래.. 보길도로 가야겠다

지도를 펴놓고 손끝을 따라 내려가다가 자주
멈추던 그 섬 보길도로..

 



완도에 도착했다

 

유달리 동백꽃이 많고 가로수마다가 동백꽃인 섬
그 섬에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만난 흑염소는 한가로이 창꽃나무 아래에서
매앰~매!~ 흙을 파먹고 있었다




[완도 카페리 5호] 선상

 

흰 포말에 부서지는 뱃전에 서서

바다를 빙 둘러 바라보니

 

크고 작은 섬들 사이로 외항선이 지나고

흰콩을 뿌려 놓은 듯한 김양식장의 하얀부표들

보석처럼 뚝뚝 떨어져 나앉은 무인도들이

 

점점이 나타났다가

뒤로 밀려 멀어져갔다.


섬. 섬. 섬. 섬. 섬. 섬. 섬. 섬. 섬. 섬.

 



소안도

 

빨간 우체국 미니봉고차에서 행랑들이 내려지고

조타실 처마끝에 매달린 학교종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배는 잠시 중리 해수욕장엔가 들렀다가

낮은 산들이 감싸고 있는 노화도에 한번
더 들렀다가 보길도에 닿았다

 


비릿한 선창가에 내리니

코란도 택시들이 줄서서 손님을 기다렸다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까지 걸어서 15분이면 족하다는 말에

천천히 걷기로 했다

 

동백꽃 붉은 보길우체국 앞마당 전화부스에서

발아래 찰랑이는 바닷물과 건너 섬 노화도를 한동안 바라보는데

어디선가 라디오에서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노래소리

 

'진달래 피고 새가 울며는 두고 두고 그리운 사람'

 

봄노래의 낮은 음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소리를 눈감고 듣다가

 

바람에 솔향기 가득 실려오는

솔밭 언덕길을 넘는 고산유적지로 터덕터덕 걸었다

 

야트막한 산위에선 초등학교 야외학습을 나왔는지

꼬맹이들의 합창소리가

길손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
   저 멀리 남쪽에 남풍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곳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고산(孤山)

     

    외로운 산이라는 윤선도의 호를 생각하며

    나 또한 외로운 길손으로 남도의 외로운 섬 보길도를 걸었다

     

    51세에

    이곳 보길도 산세의 수려함에 매혹되어

    은서지로 정하고 사셨다는

     
    마치 연꽃 봉오리가 피어나는 듯해서 붙인 마을

    부용동(浮容洞)

     

    여기에 조그마한 정자와 연못을 만들어

    세연정(洗然亭)이라 이름하여

    유유자적 하고자 했던 곳

     

    그 풍류를 생각하며 정자에 앉으니

    맑은 연못속에는 연잎과 줄기가 그대로 들여다 뵈고

    연못 수면위로 무심한 동백꽃잎만 봄바람에 떠다니고 있었다

     

     

    연못가에 매어둔 배를 띄워

    긴 대나무 장대를 저어 나갔다

     

    연못 가운데의 조그만 섬에는

    늙은 고사목 한 그루와

    그 옆으로 진달래가 한그루 피고 있었다

     

     
    연못 한가운데에 머물러

    반쯤 남은 캔맥주를 띄워 놓고

    남도의 풍류와 은둔자의 고독을 생각하며

    윤선도의 <오우가>를 읊어 봤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야 무엇하리



    조각배에서 물에 띄워

    연꽃향기 담아 마신 술에

    그 옛날 선현들의 풍류를 생각했다

     

     

    연못가 세연정 옆에는

    수령 몇백년은 족히 넘었을 노송에서

    이름 모를 새소리 청아하게 울려 퍼지고

     

    그 흔한 화려한 빛깔의 단청도 없이

    은근히 세월을 견뎌온 세연정의 고고한 품격의 멋스러움

     

    옷깃을 여미며 세연정자에 올라서 보니

    연못가 석축으로 세월의 이끼가 푸르른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호랑나비 한마리

    소매끝에 앉았다 날아간다


    황원포 속에 자리한 부용동

    좁다란 초가삼간 내 머리를 덮어
    비올적엔 보리밥에 경옥주 한잔
    종신토록 이외엔 바라지 않아.

    - 고산유고 권1 시 記實 76장 -

    호숫가 잔디밭에 앉아

    봄볕을 쬐면서

     

    가랑이 사이의 노란 민들레와 제비꽃

    동전꽃이라 불리는 봄맞이꽃이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양을 지켜보면서 앉아있었다

     

     

    낙서재로 올라가는 길

    뉘라서 이 돌자길을 찾아서 왔을꼬?

    바다 건너 산을 넘은 부드러운 바람이

    긴 보리밭이랑을 지나서 은근한 꽃내음 풀내음을 남겨놓고

     

    게으른 낮닭우는 소리만

    조용한 마을을 가르고


    쓸쓸한 한낮의 적요

     

    사진_1138.jpg


    시냇물에는 풀이 떠서 흐르고

    맑은 물속에도 봄풀들이 무성하여 물결을 따라 길게 누워있다

     

    황톳길을 걸어가다 만난

    양지쪽 산비탈의 꽃무더기

    꽃무더기

     

    그 산아래에 낙서재가 있었다

     

    좌청룡 우백호가 호위를 하는 듯한

    산들로 둘러친 연꽃 모양의 부용동엔

    연꽃의 화판에 속한다는 곳에 지었다는
    33년을 사시면서 학문이나 글을 하는 것이

    가장 즐거움이란 뜻을 지닌

    낙서재(樂書齋)

     

    조상의 위폐를 모시며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번민 없는 집인

    무민당(無憫堂)

     

    동서쪽에 있는
    잠깐의 휴식을 할수있는 조그마한 움집인

    동와,서와(東窩,西窩)


    병풍처럼 생긴

    아름다운 바위 소운병

     

    흐르는 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깊은 사념에 잠겼다는

    곡수대(曲水臺)

     

    봄볕 아래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

     

     

    낙서재에는

    고산의 절개만큼이나 곧은 전나무가 빼곡하고

    숲에는 꾀꼬리만 울려 퍼지고

    전나무 높이로 웃자란 동백나무가

    그 키를 재려하고 있었다


    건너산 동천석실(洞天石室)을 향해

    내려오는 마을길

     

    담장너머로 동백꽃이 붉고

    냇물이 마당을 지나는 돌담밑에는

    솥단지 두개와 요강단지가 놓였고

    돌절구와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분무기

     

    초가지붕으로 만든 헛간에는

    나무지게와 쟁기 멍석들

     

    샘가에는 봄볕을 쬐는

    메주 두덩이가 샘돌위에 나란히 얹혀있고

     

    화단으로는

    이름모를 들꽃만이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낮닭우는 소리만 연신 들려오는

    조용한 마을

     

    한무리의 꼬맹이들이 "선생님 안녕하세요"
    외치며 꾸벅하며 지나간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으렸다? 

    허어 참!~ 고넘들..

     


    맑은 시냇물에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드니

    가벼운 현기증

     

    봄산이 빙~빙~ 돌고 있었다

     

      

    산위를 지나는 흰구름을 보고

    하릴없이 짖어대던 흰둥이는

    정작 객이 지나니 멀뚱멀뚱 바라만 볼 뿐

    마을은 그렇게

    봄날의 오수에 잠.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