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천 선암사 대각암승탑
묵묵한 수행자의 모습을 닮은 듯
조계산 선암사(仙巖寺). 절 입구에 선 부도밭의 돌이끼 내려앉은 수많은 승탑과 석비들이 선암사의 연원을 말없이 보여준다. 부도밭을 지나면 아름다운 무지개다리 승선교(昇仙橋, 보물 제400호)를 만난다. 이 다리를 건너며 세속의 묵은 때를 씻어보내고 저 둥근 원융(圓融)의 세계로 조심스레 발을 들여본다. 선암사 후원 뒤 호젓한 산길을 따라 커다란 눈망울로 굽어보는 마애불을 지나면 일순 확 트인 너른 공간에 멀찍이 물러나 자리한 누각과 암자를 만나게 된다. 선암사 대각암(大覺庵)이다.
이곳에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의 승탑으로 전하는 선암사 대각암승탑(보물 제1117호)이 있다. 지붕의 높다란 귀꽃이 스님의 공덕을 올리려는 표징인 양 높이 솟아 강조된 모습과 비교적 낮은 탑신, 하대석에 강조된 구름의 문양이 눈길을 끈다.
산속 깊은 곳에서 '대각'을 향해 용맹정진한 묵묵한 수행자의 모습을 닮은 듯 승탑이 품어안은 묵묵한 납(衲)빛의 색이 더욱 깊다.
선암사에는 대각암승탑 이외에도 동승탑(보물 제1185호)과 북승탑(보물 제1184호)을 비롯해 대숲에 감싸인 서부도전에도 아름다운 조선시대 승탑들이 남아 있다.
특히 자연의 바위를 그대로 승탑으로 쓴 '성윤수좌'의 승탑은 선암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파격의 절창이다.
-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
중대석을 높게 한 새로운 조형감각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 804~880)의 부도를 찾아 장흥 유치의 보림사(寶林寺)로 가는길. 보림사는 탐진댐이 들어서고 인적마저 줄어 더욱 고즈넉한 절이 되어 있다. 조선시대 학승(學僧)으로 이름높은 영해당(影海堂) 약탄(若坦 , 1668~1754)은 “뱃속 가득 헛된 놀이 욕심만 담은 세상의 길손들이야 어찌 이 숲속의 즐거움을 알랴”라고 보림사의 정취를 노래했다.
보림사 대웅보전 옆 낮은 비탈에 탑비와 함께 선 승탑이 바로 보조선사 체징의 승탑(보물 제157호)이다. 884년에 세워진 보조선사창성탑비(보물 제158호)에 의하면 '체징'은 신라에 선법(禪法)을 최초로 전한 도의(道義)선사로부터 법을 받은 염거화상(廉居和尙)의 제자로 신라 헌안왕 3년(859년)에 왕의 초빙을 받고 이곳 무주장사 김언경 등 지방세력의 후원으로 보림사에서 가지산문(迦智山門)을 개창하였다. 이로써 보림사는 우리나라 선종의 종찰(宗刹)이 된다. 일주문 안에 걸린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이라 쓴 편액에서도 절의 사격을 확인할 수 있다. 보조선사는 헌강왕 6년(880년) 봄날 입적하니, 헌강왕이 시호를 내려 ‘보조’라 하고 탑의 이름을 '창성(彰聖)', 절 이름을 '보림(寶林)'이라 하였다.
보조선사의 승탑은 앞서 만들어진 다른 선사들의 승탑과 달리 특히 중대석을 높게 한 새로운 조형감각을 선보였다. 중대석의 모양도 배가 부르게 표현하고 안상을 새겼으며 상대석과 지붕의 폭을 줄여 탑 전체가 날씬해 보인다.
승탑의 탑신에는 사천왕상을 유연하게 돋을 새김했는데 옷자락의 세심한 표현이 뛰어나다. 탑 문비의 자물쇠장식과 그 위의 도깨비 얼굴(鬼面), 꽃문양 등에서는 세련된 미감을 보여준다. 또한 중대석 받침에 구름문양을 돋을새김한 모습은 이후 고려시대 장식적인 승탑에서 계속 이어져 시원을 이룬다.
이외에도 보림사에는 일주문으로 들어오기 전 오른쪽 산자락에 마련된 동부도밭에도 보림사 동승탑(보물 제55호)을 비롯해 승탑들이 모셔져 있다.
또 보림사 뒤쪽 마을에는 보림사 서승탑(보물 제156호)으로 지정된 2기의 승탑이 있다. 네모꼴의 지대석 위에 마치 가구의 다리 모양의 이색적인 연꽃이 덮인 모양이 독특하다. 또 다른 승탑은 탑신에 마치 옛 집의 문짝 열쇠 같은 모양이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지붕돌의 물매가 급하며 2기의 승탑 모두 고려시대 중기에 조성된것으로 보인다. 스님들의 승탑을 대면하면서 문득 떠오른 그림은 김홍도의 '염불서승도'. 상서로운 구름과 연꽃 위에 앉은 스님의 뒷모습을 그린 걸작이다. 조선시대 그림 중 뒷모습을 그린 몇 안되는 작품으로, 그림 속 스님의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청정하고 서늘한 기운이 바로 이 승탑들의 모습을 닮았다. 꾸미지 않은 가장 정직한 모습은 앞도 아닌 바로 뒷모습이다. 뒷모 습에서 느껴지는 범접할 수 없는 선승의 기운을 오늘 다시 승탑에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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