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연못 위의 정저, 하엽정(荷葉亭)

이산저산구름 2013. 8. 19. 15:26

 



조선시대 사대부 주택의 전형인 달성 삼가헌의 별당마당에는 네모난 연못과 그 속에 둥근 섬이 있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하늘과 땅, 음과 양의 철학적 의미로 해석되는 조선시대 고유의 정원지당 양식이다. 그리고 그 위에‘연꽃잎 정자’가 떠 있다.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골마을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충정공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삼가헌은 묘골마을과 낮은 산 하나를 경계로 하고 있는 파회 마을에 자리 잡은 조선시대 사대부의 주택이다.

‘삼가헌三可軒’이라는 이름은 박팽년의 11대손인 박성수가 1769년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삼가헌이라 한 것에서 유래한다. 그 뒤 그의 아들 박광석이 1783년에 이웃 묘골 마을에서 이곳으로 분가하였고, 1826년에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이집이 삼가헌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사랑채에 걸려 있는 기문記文에 적혀 있다. 세 가지 가능한 일, 즉‘삼가三可’란 중용中庸에 나오는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을 말하는데“천하와 국가를 다스 릴 수 있고, 벼슬과 녹봉을 사양할 수 있고, 날카로운 칼날을 밟을 수 있다”가 바로 그것이다. 삼가헌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 영남 내륙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주택이다. 넓은 대지에 안채와 사랑채(삼가헌),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별당채(하엽정), 그 외 여러 부속채로 구성된 배치 형식은 사대부 가옥의 공간 구성과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사랑채인 삼가헌에서 일각문을 통해 별당채로 들어가면 마당은 보이지 않고 연꽃이 가득 핀 네모난 연못과 못 가운데 둥근 섬이 먼저 보인다. 이 연못은 안채와 사랑채를 지을 때 흙을 파낸 자리에 연을 심어 연당蓮塘으로 가꾼 것이다. 그리고 오른쪽 연못가에 별당채인 하엽정荷葉亭이 있다. 이 별당은 원래 서당으로 쓰던 곳으로 파산서당巴山書堂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뱀의 꼬리를 닮은 파산巴山은 묘골마을 뒤쪽에 있는 마을의 주산으로 서당의 이름을 여기에서 딴 것으로 여겨진다. 서당으로 사용된 하엽정은 원래 4칸 규모의 일자형 건물이었는데, 그 후 앞에 누마루 한 칸을 늘려 붙여서 현재의 ‘ㄱ’자형의 정자를 이루고 있다. 필시 연못을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방보다 1자는 더 높은 누마루에 올라앉으면 연꽃이 가득한 연못을 대각선으로 볼 수 있는데, 정면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다이나믹하게 볼 수 있다. 누마루 정면에 ‘연꽃잎 정자’라는 뜻의 하엽정이란 현판이 붙어 있다. 송나라의 주돈이는‘연꽃향기는 멀리 퍼져 나갈수록 맑음을 더한다(香遠益淸)’고 해서 군자의 꽃이라 했다. 박팽년 선생의 후손의 집에서 보는 연꽃은 그 의미를 더하는 듯하다. 그리고 하엽정이란 이름에 걸맞게 방마다 ‘연꽃향기를 맞이한다’는 뜻의 ‘영향迎香’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7~8월이면 연못 가득 소담스러운 연꽃이 피어 하엽정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정자 앞의 연못은 길이가 21m, 너비가 15m의 장방형인데 가운데 작은 원형 섬이 있다. 이른바 조선의 전통정원에서만 볼 수 있는 방지원도方池圓島이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방지원도는 음양오행설이 담겨 있으며 당시의 사상이었던 성리학의 철학을 보여주는 조선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정원문화이다. 천원지방을 직역하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뜻이며, 이는 또‘양은 둥글고 음은 네모나다(陽圓陰方)’, ‘하늘은 움직이고 땅은 가만히 있다(天動地靜)’는 것과도 같은 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천원지방은 우주 만물의 존재와 운행의 원리를 음과 양으로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연못을 조성함에 있어서도 이런 우주의 철학을 그 속에 담은 것이다. 하늘에 해당하는 섬 가운데에는 시각적 초점을 이루는 배롱나무가 한 그루 심겨져있다.

연못 주변에는 배롱나무, 자귀나무, 자두나무, 산수유, 복숭아나무, 감나무, 모란 등의 낙엽활엽수를 식재하여 실용적이면서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정원으로 꾸몄다. 수목 아래, 연못가에는 돌확, 괴석 등의 점경물이 배치되어 있어 단아한 조선의 정원을 보여주고 있다. 남쪽 담장 너머에는 현주인인 박도덕씨의 고조부가 심었다는 높이 20m 정도의 거대한 상수리나무와 이 집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는 탱자나무가 우뚝 서 있다. 또 집 주위 산언덕에는 소나무, 참나무 등이 배경숲을 이루고 있어 정자의 품격을 한층 더 높여주고 있다.



글·사진. 이광만 (문화재수리기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