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보이는 평상
생활 풍속이 그려진 고구려 고분 벽화를 살펴보면, 고구려 왕족이나 귀족들은 입식立式생활을 했음을알수있다. 4세기 중엽에 축조된 안악3호분의 주인공은 중국의 망명자였던 동수冬壽라는 설과 미천왕이나 고국원왕 같은 고구려 왕이라는 설로 나뉘어져 있는데, 무덤의 주인공이 장막을 두른 평상 위에 앉아 있는 그림이 있다. 408년 경에 만들어진 덕흥리 고분에도 무덤의 주인공인 진鎭이 평상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약수리 무덤(5세기 전반)과 쌍영총(5세기 후반)에는 무덤의 주인공 부부가 평상에 나란히 앉아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보이는 낮은 평상은 탑榻인데,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것은 독탑獨榻, 두 사람이 같이 앉을 수 있는 것은 합탑合榻이라 한다. 탑은 중국 한대漢代의 좌식坐式가구가 생활방식이 다른 고구려에 전래된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덕흥리 무덤과 쌍영총 벽화의 탑은 사각형으로 4개의 다리가 있으며, 앉은 면 아래에는 화염문火焰文또는 톱니 모양의 돌기를 내어 장식하였다. 약수리 무덤의 탑과 함께 모두 검게 표현된 것으로 보아 나무로 만들고 칠을 입힌 가구임이 분명하다.
고려의 평상
중국 송宋나라 관리로 고려 인종仁宗원년(1123)에 사신으로 온 서긍徐兢이 지은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는 좌탑坐榻과 와탑臥榻이소개되어 있다. 좌탑은네모서리에 장식이 없고, 큰 자리를 얹어놓는다. 관사 안에 지나다니는 길 사이에 두고, 관리들이 쉴 때 사용하였다. 와탑은 3면으로 난간이 세워져 있으며, 비단 보료가 깔리고 큰 자리가 놓여 있다고 하였다. 단지 국왕과 귀한 신하에 대한 예식이 있거나, 중국 사진을 접대할 때만 사용한다고 서긍은 전했다. 이렇듯 고려에서도 밖에 두고 쉴 때 사용하는 좌탑과 실내용 가구로서의 와탑 등의 평상이 있었다.
조선 사대부들이 사용한 평상
퇴계退溪이황(李滉, 1501~1570)의 제자 이덕홍(李德弘, 1541~1596)은 ‘선생은 한가히 있을 때에도 온종일 단정히 앉았고, 혹 기운이 피로하고 몸이 곤하더라도 어디에 기대거나 자세가 풀어지는 기색이 없었다.’고 퇴계의 몸가짐을 전했다. 퇴계와 같은 선비는 평상에서 낮잠을 자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산중에 열 가지 경취景趣를 말했는데, 이중 아홉째가 평상 위에서 글 읽는 것을 꼽았다.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오리梧里이원익(李元翼, 1547~1634) 종택宗宅의 사랑채에는 평상이 있었다고 전한다. 류중림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1766)에는 서재와 사랑방 가구가 소개되어 있는데, 여기에도 평상이 있다. 조선 후기 선비 화가 윤두서(尹斗緖, 1688~1715)가 그린〈수하오수도樹下午睡圖〉에는 여름철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평상을 놓고 낮잠을 즐기고 있는 인물이 표현되었다. 단원檀園김홍도(金弘道, 1745~1806?)가 1801년에 그린〈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에도 사랑채 대청마루에 평상을 놓고, 그 위에 사람이 누워있는 장면이 있다. ‘전원의 즐거움을 삼공의 높은 벼슬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 제목의 뜻이다. 선비가 나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크게 부끄러워하지만, 평상의 즐거움도 은근히 누렸던 것이다.
조선시대 평상은 바닥을 띠살로 하고, 난간이 있으며, 2~3개 정도를 붙여서 사용한 형태가 많다. 그림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대청마루나 누樓마루 등에 놓고 앉거나 눕거나 하는 침상이다. 평상 위에서 글을 읽거나휴식을취하거나, 손님과 더불어 차를 마시거나 수담手談을 나누었다. 여름에는 나무 그늘에 평상을 놓고 자리를 깔고 사용하기도 하였고, 사랑채 온돌방에 두고 사용하였다. 바닥이 띠살로 되어 있는 평상은 온돌의 온기나 마루의 찬기운이 스며들어 계절에 따라 사용자를 따뜻하게 혹은 시원하게해준다. 3면을 살창같이 얕은 난간을 두고 금속으로 장식한 것을 살평상이라 하고, 평판을 댄 것을 널평상이라 한다.
사각형이 어울린 실용성과 안정감
대개 두 개가 한 쌍을 이루어 기능을 발휘하는 평상의 기본형은 사각형이다. 평상의 길이와 너비는 대개 2:1의 비율로 되어 있다. 두개이상의 사각형이 모여 전체적으로 쾌적한 비례미를 가지는 우리 가구는 많다. 농은 기본적으로 2~3개의 상자를 쌓아서 2층농, 3층농의 형태를 갖는다. 평상은 농에 비교한다면 사각형을 수평으로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형원리를 통해 여러 변형을 가능케 하고, 공간 활용의 융통성을 가지게 하는 것이 조선시대 가구의 특징이다. 평상에서도 조화로움을 추구한 사용자나, 이를 만든 소목장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또한 2~4쪽으로 분할되는, 심지어는 난간도 분리 결합이 가능한 평상은 옮겨 사용하는데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중국에서는 평상과 비슷한 탑이라는 기물이 유행하였다. 평상은 탑에 비해 비교적 낮다. 이는 기본적으로 좌식생활의 편의를 고려한 것이지만, 평상은 낮아짐으로 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배가 시킨다. 기능적으로 평상 위로 오르내릴 때의 수고로움도덜수있으며, 덜컥 앉아서 쉬기도 수월하다.
난간이 있는 살평상은 평상 밑으로 사람이나 기물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을 할 뿐 아니라 단조로운 사각형 위에 장식 변주를 가미한 것이다. 그리고 난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대칭의 안정감을 뚜렷이 부각시킨다. 호암미술관 소장 평상(그림 01)의 난간은 연당초문을 투각하여 평상을 사용하는 이의 격을 높이고 있다.
고구려 시기부터 사용된 평상은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에 이르러는 좌식 생활 방식에 알맞은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실용성과 사각형의 조형미를 모두 갖춘 평상에서 조선 사대부들의 조화와 여유, 풍류를 엿보는 즐거움을 누려볼 수 있다.
글. 김동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호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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