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아름다움, 선
지금 우리가 살고 있고, 앞으로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 한옥에 담긴 정신이 바로 한국인의 정서로 한국인만의‘결’을 담고 있다. 바람결, 물결 하는 그 ‘결’이다. 한옥에서 아름다움을 마무리해주는 곳이 지붕이다. 지붕은 한국인의 마음의 모양을 닮고 있다. 마음의 모양은 물론 한국인이 살고 있는 상황적인 요소와 적응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한국인의 마음을 닮은 미학을 수용하고 있다.
한옥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지붕의 재료에 따라 나누면 기와집, 초가집, 너와집, 청석집, 굴피집 등이 있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한옥의 전형적인 집이다. 지역에 따라 나는 것이 달라 상황에 맞게 지붕을 만들었다. 초가집과 너와집, 굴피집 같은 경우에는 식물성 재료로 되어 있어 지붕에 풀이 자라고, 꽃이 피기도 한다. 이러한 자연성이 오히려 멋진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 정서에 호박을 얹고 박을 얹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나는 풀이 자라면 여름에는 멋진 모습을 연출한다. 특히 초가지붕은 둥그스름해서 우리의 산의 모양과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닮았다. 우리의 산이 모가 나지 않고 둥근데 산자락에 줄지어선 초가집과 하나의 풍경이 된다. 산능선과 지붕능선이 만나서 아주 자연스러운 궁합을 이룬다.
한옥의 품격, 기와집
하지만 한옥의 전형적인 품격은 기와집에 있다. 한옥을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는 조선시대 양반사대부 집을 기준으로 한다. 격식을 갖춘 집이기 때문이다.
한옥의 기와집 지붕에는 직선이 없다. 초가집과 마찬가지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곡선이 숨어 있어서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지붕은 모양에 따라 우진각 지붕, 팔작지붕 등으로 나눈다. 고려말에서부터 조선 초에 생기기 시작하는 맞배지붕을 기준으로 하면 지붕을 구성하는 마루 선이 크게 세 곳에 있다. 하늘과 닿은 선을 마루라고 한다. 마루는 원래‘높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마루는 지붕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이들 마루가 모두 직선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곡선이다. 일반적으로 추녀마루의 곡선이 버선코의 모양을 닮았다는 것은 알려져 있지만 용마루와 내림마루가 곡선인 것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추녀마루의 추녀를 살짝 들어 올린 것은 한국건축의 멋스러움이다. 이를 앙곡昻曲이라고 한다. 살짝 들어 올린 각도가 바로 한국인의 심성으로 만들어낸 각도만큼의 들어올림이다. 앙곡의 시작점인 변곡의 위치를 잘 잡아야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적정의 곡선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붕이 처져 보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만들기도 하고, 지붕의 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하여 만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일직선으로 보이는 처마선도 곡선이다. 추녀와 추녀사이에 있는 긴 처마선의 안쪽이 들어가고 추녀가 조금 튀어 나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긴 타원형의 곡선이다. 이름도 아름다운 안허리곡이라고 한다.
한옥은 지상의 양대 문화인 남방문화와 북방문화를 하나의 공간에 들여놓은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집이다. 남방문화인 마루와 북방문화인 온돌이 하나의 공간에서 만나는 집이다. 서로 다른 극단極端을 밀어내지 않고, 서로 품어 안은 화합과 조화의 집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꾀하면서도 인본을 중시한 한옥
다른 나라의 건축물은 하나의 공간을 나누어서 용도에 따라 공간배치를 한다. 하지만 한옥은 독립된 건축물을 여러 채 지어 어우러지게 하는 특성이 있다. 독립된 건축물을 짓는 대지와 산과 물과 들과 조화롭게 어울리게 짓는다. 독립적인 집 한 채가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어울리도록 하는 것에 유독 신경을 많이 쓴다.
한옥은 멀리서 보면 평면 배치를 했기 때문에 한가로워 보이고, 들어가서 보면 마당이라는 공간성을 최대한 확대해 배치했다. 실내공간과 실외공간을 절묘하게 배치한 것을 깨닫게 된다. 한옥은 여유공간을 몸소 끌어안은 건축물이다. 대문 앞에는 바깥공간의 마당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사랑마당,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로 들어가면 안마당이 따로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한옥은 한유閒遊(한가롭고 여유있음)와 비움의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건축이라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알 수 있다. 과학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설계도보다 인간을 중심에 놓는 인본人本을 우위에 두었음을 알게 된다. 세계어느 건축사에서도 없는 방법이다. 과학이라는 잣대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건축술은 서양에서 더욱 발달했다. 모든 것을 숫자와 물리적인 원리에 의하여 이해하려 하고 또한 실행한다. 도면을 그리고 도면대로 실행하는 것이 건축술이다. 하지만 한옥은 다르다. 도면에 있는 대로 실행한 것이 눈의 착시현상에 의해 기울어져 보이면 그것을 보정한다.
도면에서 명시된 숫자에 의해 시공했을 경우, 건축물의 뒤에 다른 큰건축물이 있거나 산이나 언덕이 비대칭으로 있을 경우 건축물이 기울어 보인다. 눈의 착시현상에 의해서다. 과학의 토대 위에 있는 서양건축술과 일반적인 다른 나라의 경우는 도면과 숫자에 의한 것을 우선해서 그대로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한옥은 다르다. 눈의 착시현상에 의해서 기울어져 보이는 것을 보정해서 바르게 보이도록 한다. 이 역할은 한옥을 짓는 책임자인 대목수가 담당한다. 대목수가 마당에 서서 건축물을 바라보고는 기울어져 보이는 건축물을 눈으로 보정한다. 용마루가 기울어져 보이는가를 판단하고 이것을 눈에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고치는 것이다. 과학 위에 인본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세상을 더욱 크게 보는 큰마음이 아니면 실행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한국의 건축술의 독특함과 특별함은 바로 인간을 우위에 놓는 것에 있다. 과학 위에 인간을 중심에 놓는 인본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집을 짓는 터를 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집을 짓는 터 자체만을 계산하지 않고 주위에 있는 자연물, 즉 산과 들과 물이 흐르는 것을 집과 조화롭게 지으려 노력한다. 이것이 바로 풍수지리학이다. 사람을 독립적인 것으로 파악하기보다, 자연의 일부로 파악하고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것이 한국 건축의 자연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품새다.
한국 건축은 한옥으로 실현되지만 그 깊이는 한국인의 가진 마음의 특성과 기질이 그대로 들어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단층으로 짓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데는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극대화하는 방법론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를 꾀하면서도 인간의 자존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배려하는 인본의 건축이 한국건축이고, 한옥이다.
글. 신광철 (한국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 사진. 문화재청, 아이클릭아트,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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