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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의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들추며 김 종 두 | ||||
경상북도 최남단에 자리잡은 ‘청도(淸道)’는 이름처럼 맑고 아름다운 고장이다. 넓은 들 사이로 실개천이 휘감아 돌고 안온한 마을에서 훈훈한 인심이 피어나는 곳, 이곳은 바로 나의 고향이다. 어릴 때부터 여기서 흙과 부비고 냇가에서 물고기 잡으며 자라온 터라 이곳에는 내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특히 ‘운문사’는 고뇌와 방황으로 흔들리던 청년 시절에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곤 했다. 찾아갈 때마다 감동과 아름다움을 하나씩 꺼내 안겨주었던 운문사, 2008년 유월에 또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나러 이곳으로 길을 떠났다. 운문사로 들어가는 길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호수를 끼고 부드럽게 휘어진 길을 달리노라면 지친 심신이 새 날개처럼 가벼워진다. 지난봄에는 진달래와 벚꽃이 산기슭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는데, 초여름에 찾아오니 갈맷빛 녹음을 스쳐온 바람이 시원하게 맞아준다. 청도 사람들은 ‘도불습유(道不拾遺)’의 미풍양속에 자긍심을 갖고 있는데, 이 말은 ‘아무리 욕심나는 물건이 길에 떨어져 있어도 자기 것이 아니면 줍지 않는다.’는 뜻이다. 길가에 탐스런 복숭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도 왠지 손이 닿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절 들목에 시원하게 뻗어있는 솔숲을 지나면 곧게 뻗은 기와돌담이 앉은걸음으로 다가온다. 이 돌담은 속이 환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낮아 속마음까지 다 보여주는 친구 같으며, 초록 물결 일렁이는 채소밭과 어우러져 그 멋을 더해준다. 게다가 이 담은 안쪽의 벚나무 가지와 호응하면서 직선의 가지런함과 곡선의 자유분방함이 빚어낸 조화미를 은근하게 보여준다. 가람 안으로 들어앉은 돌담은 예배,신앙 공간과 생활,수행 공간을 분할해주며, 빗살무늬 기왓장으로 정제된 세련미를 선보인 후 이목소의 역동적인 곡선미와 만나면서 자신의 임무를 마감한다.
운문사는 대웅전과 비로전이 만세루를 사이에 두고 대각선으로 배치되어 있어 여기서 생성된 여백이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특히 절제되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대웅전 앞마당과 정겹고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비로전 앞마당이 사뭇 대조적이다. 대웅전 모퉁이를 감돌아 가면 보양스님과 이목의 전설이 서려있는 ‘이목소’가 반겨주고, 여기서 뒤로 돌아보면 돌아앉아 있던 ‘비로전(구대웅전, 보물 제835호)’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덤벙주초에 세운 민흘림기둥에서 질박한 멋이 피어나며, 장식을 과감히 털어낸 공포 구성에서 단아한 절제미가 묻어난다. 그리고 정면 복합문짝 한가운데를 수놓은 꽃무늬창살은 비로전의 보물로서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특히 천장에 나무 구슬을 정교하게 다듬어 붙인 후 금빛으로 단청을 함으로써 법당 안을 신비로운 분위기로 가득 채운 것이 이채롭다. 이 법당은 안에 주불로 비로자나불을 봉안해 놓았으니 ‘대적광전 또는 비로전’이라 불러야 옳지만 아직까지 ‘대웅보전’이란 편액이 붙어있다. 그래서 운문사는 두 개의 대웅보전을 거느리고 있는 특이한 가람이 되었는데, 이것은 아마 전해오는 과정에서 혼동이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안에는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보살이 있어 눈길을 끄는데 그 이름은 ‘악착보살’이다. 일반적으로 보살은 우아하고 품위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는데 비해 이 보살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해학적인 느낌마저 풍긴다. 이것은 기필코 성불하겠다는 서원을 굳게 세우고 악착같이 정진하는 모습을 뜻하는 것으로, 외줄에 매달린 것은 오로지 수행자로서의 일념으로 한길만을 걷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인간에게 위안을 주어야할 보살이 도리어 고뇌와 아픔을 짊어진 채 안간힘을 쓰고 있기에 차 한 잔 권하며 따뜻한 격려의 말이라도 건네주고 싶다. 비로전 앞마당에는 두개의 석등이 마주보고 있으며 잘 가꾸어진 꽃밭 속에 ‘삼층석탑(보물 678호)’ 두기가 대칭을 이루며 오롯이 솟아 있어 절집의 분위기를 포근하게 꾸며준다. 더구나 이 마당은 오백전을 이웃 삼아 수행 공간과 마주보고 있으며 갖가지 꽃과 나무로 잘 다듬어져 있어 이곳에 들어오면 누구나 안온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 석탑은 9세기에 동서 쌍탑으로 건립된 것으로 하대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주위 산들이 병풍처럼 감싸주고 있어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뿜어낸다. 탑의 상층기단부에는 각 면을 탱주로 양분한 다음 앉은 모습의 팔부중상을 하나씩 새겨놓아 우아한 멋을 한껏 살려내었다. 그러나 상층기단의 폭이 좁고 높이가 낮으며 갑석도 얇아 균형미를 약화시키고 상승감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석탑 앞에서 돌담을 따라 가면 ‘작압전’과 만나게 되는데, 이 아담한 전각은 이절의 창건 역사를 증언해주고 있어 각별하게 다가온다. 현재의 운문사인 ‘잡각사(鵲岬寺)’는 보양스님이 까치가 땅을 쪼는 것을 보고 거기서 나온 전돌로 탑을 쌓은 후 지었다고 전해온다. 이 탑이 바로 보양스님이 산 위에서 본 5층황탑인 것 같은데, <삼국유사>와 여타 기록을 근거로 볼 때 당시에는 전탑이나 모전석탑 형태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원형은 남아있지 않지만 이 황탑 흔적은 운문사와 우리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하기에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작압전의 진정한 가치는, 형상화된 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년을 넘나들며 우리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에 있다. 까치와 용이 인간과 만나 빚어낸 연기설화는 만생명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상생과 조화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성찰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작압전은 ‘사천왕석주(보물 318호)’와 ‘석조여래좌상(보물 378호)’이라는 두 개의 보물을 품고 있다. 이 중 네 개의 사천왕상은 1층 탑신부에 설치되었고 석조여래좌상은 탑 안에 봉안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벽에 기대어 서있는 사천왕상은 양감을 두드러지게 만들고 선을 세련되게 표현해 사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막 튀어나올 것만 같다. 이에 비해 가운데 앉아있는 석조여래좌상은 대좌와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분을 두껍게 칠하는 바람에 불상 특유의 은은한 미소가 살아나지 않아 아쉽다. 잠시 눈을 감고 7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타오르던 저녁놀이 서서히 옅어지고 어둠이 조용히 내려앉을 즈음 장엄한 예불 소리가 깊은 산속을 가득 채운다. 예불이 끝나자 금당 앞 석등(보물 193호)이 마당 가운데 서있는 늠름한 5층황탑을 향해 불을 밝힌다. 그 때 황탑은 황홀한 빛을 발하며 절집을 곱게 물들이고, 사방에서 모여든 선남선녀들은 진지한 걸음으로 탑을 돌면서 저마다 소중한 서원을 하나씩 세운다. 이 넉넉하고 평온한 밤에 일연스님은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환한 달빛을 끌어들여 간절한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써내려간다. 바야흐로 우리 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삼국유사’가 잉태해가는 순간이다. 동일한 대상이라도 바라보는 관점과 마음, 그것에 대한 배경지식의 차이에 따라 그 아름다움은 각기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미학자들은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내적 능력이 대상에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하는가 보다.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구체적인 형상으로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단련된 안목과 감각을 통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 문화유산에 관련된 서적을 읽고 1문화재 1지킴이 운동에도 참여하다 보니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이 깨어나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나의 여정은 이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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