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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주말매거진에 실린 우즈베키스탄 기사입니다. 신문에 지면사정 때문에 다 실리지 못한 기사와 사진을 함께 넣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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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살 좋게 생긴 뽕나무가 둘러싸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의 사각 연못 ‘랴빅 하우즈(중앙 연못)’. 그 주변엔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커다란 빵과 차를 앞에 둔 이들이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 연못은 1400여 년 전에 만들어졌지요. 부하라는 중국과 로마를 잇는 비단길의 중간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에요. 사막을 여행하던 대상(隊商)과 낙타의 쉼터였습니다.” 40년 동안 부하라에서 여행 가이드를 했다는 일홈(60)씨는 “부하라엔 이 같은 공동 연못 ‘하우즈’가 100여 개 있다”며 “연못과 우물이 많다는 건 도시가 그만큼 번성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오아시스 도시를 거쳐간 이들의 입을 통해 실크로드 위 가장 화려하게 빛났던 두 개의 도시, 사마르칸트와 부하라의 어제와 오늘을 그려봤다.
<칭기즈칸, “거대한 등대에 모자가 떨어져버렸소”>
내가 부하라에 도착한 건 1220년 어느 겨울 밤이었다오. 이 번성한 도시를 손에 넣으려는데 깜깜한 사막에 우뚝 선 등대를 보고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지. 사막에 웬 등대냐고. 도로와 기찻길이 들어서기 전 실크로드를 여행해보지 않았으니 모를 수도 있겠구려. 생각해 보시게, 날마다 땅 모양이 변하는 모래 사막에서 북극성 하나 의지해 이동하다 하늘 위에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를 본다면 얼마나 반갑겠는가. 사막 등대는 바다의 배들을 인도하듯, 사막의 대상들을 오아시스로 부르는 손짓이었다오.
부하라에 있는 사막 등대 ‘칼론 미나렛’은 ‘거대한 등대’라는 뜻이 말해주듯 그 높이가 우선 압도적이었소. 둥근 흙빛 등대를 아래서부터 위로 훑어보느라 고개를 서서히 들었는데 그 많은 나라를 정복하며 단 한 차례도 벗은 적 없는 모자가 등 뒤로 툭 떨어지고 말았다오. 높이가 무려 47, 흙 벽돌을 써서 아래서부터 위로 14개의 각각 다른 문양으로 쌓아 올린 등대를 보고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소. 같은 크기의 벽돌이 쌓는 기술에 따라 마름모가 됐다가 별 모양으로 꼬이고 작은 십자 형상을 만드는 모양이라니! 내 설명으론 실감이 나지 않을지 모르겠는데, 이 거대한 사막 등대의 모습은 지금 부하라에 고스란히 남아 있소. 내가 도시의 다른 지역을 모두 부수더라도 이 등대만큼은 그냥 두라고 명령한 덕분이지. 땅 아래 10까지 판 후 말린 갈대를 넣은 내진(耐震) 설계도 한 몫 했겠지만.
이슬람 왕조가 기도를 위한 모임 장소로 썼던 등대는 내가 점령하던 시절부터 죄수들을 위한 처형대로 쓰기 시작했지. 내가 죽은 다음 한참이 흐른, 20세기 초 냉전 시대까지도 죄수를 등대 꼭대기에서 밀어 떨어뜨렸다고 하더군. 지금도 등대 안쪽 나선형 계단을 따라 꼭대기로 올라갈 수는 있다네. 그러나 난간이 없는데다 어두우니 높은 걸 무서워한다면 올라가는 걸 말리고 싶네. 혹시 자네가 꼭대기에 닿는다면 16개 아치형 창 중 하나를 통해 등대 바로 옆 ‘미리 아랍 메드레사(신학교)’의 푸른 돔과 나지막하게 뻗어 있는 부하라의 카키색 전경을 볼 수 있을 걸세. 시속 800㎞로 나는 항공기가 실크로드를 대신한 지 오래인 요즘, 낡아가는 부하라의 모습이 조금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나 뿐인지 모르겠소만.





<비단 길의 대상, “흥정의 달인들과 겨뤄보실래요”>
캄캄한 밤, 낙타 등에 비단과 차(茶)를 싣고 지중해로 향하는 나를 사람들은 ‘카라반’이라 부릅지요. 낙타와 나귀 한 마리씩을 데리고 네 명이 한 팀을 이뤄 사막을 걷다가 사마르칸트나 부하라 같은 오아시스 도시를 만나면 어찌나 반가운지 상상도 못할 거에요.
우리들은 신을 벗고 식당으로 뛰어 들어가 허기진 배와 비어 있는 물병을 채워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는 ‘샤슬릭’이에요. 내 고향 터키에선 케밥이라고 부르는, 양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을 구어 꼬치에 꽂아 먹는 요리죠. 곡식이 없으면 속이 헛헛하다는 중국인들은 양고기 기름에 볶은 밥 ‘쁠롭’을 즐겨 먹더군요. 이 음식들은 지금도 부하라에 있는 식당이라면 대부분 팔아요. 전망 좋은 곳을 찾는다면 칼릴 미나렛 바로 앞,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식당 ‘카시마이 미롭(Cashmai Mirob•998-65-224-6368)’을 추천하고 싶네요. 샤슬릭 한 접시가 5000숨 정도 한답디다.
식사와 함께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선보이는 우즈벡 전통 의상 패션 쇼를 즐기려면 시장 겸 식당 ‘캐라반 세라이(Caravan Serai)’로 가보세요. 20달러 내면 1시간30분 정도의 공연과 쁠롭을 중심으로 한 맛난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습지요. ‘우즈벡에 미녀가 많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아실텐데요 러시아 중국 중동 인도에 이르기까지, 실크로드를 통해 많은 인종이 유입돼 ‘피’가 섞인 결과라는 설이 유력하다 하더라고요. 물론 ‘예쁘다’는 건 주관적인 기준이니까 미녀만을 기대하고 우즈베키스탄에 오셨다 실망하시더라도 책임질 순 없어요.
전 부하라에 들르면 고향의 가족을 위한 선물을 몇 개씩 꼭 산답니다. 시내가 작아서 걸어서 돌아보기 충분한데다, 세계 각지에서 상인들이 모여들다 보니 진귀한 물건들이 많아서 구경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요. 제가 활동하던 16세기엔 ‘랴빅 하우즈’ 주변에 분야별로 12개의 시장이 섰어요. 이젠 세 개 밖에 남아있지 않는데다 ‘주력 상품’ 없이 비슷한 물건들을 팔지요. 대신 신학교로 쓰였던 10여 개의 ‘메드레사’가 대부분 시장으로 변했어요. 학생 한 명이 책상을 놓고 공부하던 작은 방들에선 이제 비단 목도리, 수자니(중앙아시아식 수예품) 가방, 실크로드를 그린 그림, 은 접시 등을 팔아요.
예전에도 웬만한 화폐가 모두 쓰였는데 요즘에도 우즈벡 돈 숨과 달러, 유로를 모두 받는답니다. 부르는 대로 덥석 돈을 내라는 건 아니지만, 부하라 상인들은 흥정의 ‘달인’들이라 많이 깎을 순 없으니 큰 기대는 마세요. 제 경우는 20달러 부르는 캐시미어 목도리를 17달러에, 65달러 부르는 예쁜 체스 세트를 50달러에 샀어요. 3분의 1 정도 깎으면 성공했다 보시면 된답니다.



<티무르 왕 “내 무덤이 눈부시지 않은가”>
사마르칸트에 온 사람들은 나, 티무르 왕이 묻혀 있는 ‘구리 아미르 영묘(靈廟)’를 먼저 찾는다오. 부하라가 황토색의 도시라면 사마르칸트는 파랑의 도시요. 지진 때문에 여러 차례 무너진 다음 다시 지어져서 새 기술을 적용한, 화려하고 복잡한 건물 문양을 자랑하는 것이지. 그 결정체가 바로 내 무덤이라오. 금박으로 섬세하게 써넣은 코란의 구절과 푸른 색과 어우러지게 만든 별 문양은 빈틈 없이 건물 안팎을 메우고 있소. 1904년 나보다 먼저 세상을 뜬 손자와 아들을 위해 지은 영묘이지만 내가 폐렴으로 갑자기 죽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나도 여기 묻히게 됐다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왕비를 위해 지은 비비 하눔 모스크도 가까우니(걸어서 약 10분) 들렀다 가시오. 1897년 지진에 한 차례 무너지긴 했지만 후손들이 꽤 그럴 듯하게 복원해 놓았다오. 그런데 이 모스크를 지은 건축가가 중국에서 온 내 사랑하는 왕비 비비 하눔을 열렬히 사랑했다는 얘기 들으셨소? 그 녀석 옷깃에 왕비의 립스틱이 묻어 있어 내가 알아챘다는, 소설 같은 얘기 말이오. 그 후 내가 그 둘을 손봐준 과정은 상상에 맡기겠소.
이 도시를 떠나기 전, 중앙 광장 격인 ‘레기스탄’에서 사마르칸트 구경을 마무리하면 제격일 듯싶소. 내 손자이자 위대한 수학자•천문학자인 울륵벡이 1420년 세운 신학교 ‘울륵벡 메드레사’와 이를 본떠 1636년 만들어진 ‘세르 도르(사자) 메드레사’가 아주 웅장하다오. 두 건물 옆 각각 두 개씩 서 있는 푸른 빛 사막 등대를 보면서, 600년 전 이 도시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을 인내심 많은 상인들을 상상해보는 건 어떻겠소. ‘알아선 안될 것을 알고픈 욕망 때문에, 사마르칸트로 가는 금빛 길에 오른다네’라고 노래한 영국 시인 제임스 엘로이 플레커(Flecker)처럼 말이오.


<여행 정보>
대한항공은 9월 4일부터 매주 화•금•토요일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직항을 운항한다. 인천 출발은 오후 4시45분(오후 8시15분 도착), 타슈켄트 출발은 오후 9시50분(다음날 오전 8시10분 도착)이다. 매주 화•수요일 오전 8시15분, 타슈켄트 중앙역에서 사마르칸트(약 4시간)를 거쳐 부하라(약 7시간30분)까지 가는 열차가 출발한다. 월•목•금•토•일요일 오전 7시에 출발하는 열차는 사마르칸트까지만 간다. 사마르칸트•부하라 행 모두 약 20달러. 1숨=약 1원. 큰 시장에선 달러와 유로도 통용된다. 달러가 유로보다 비싸므로 달러로 환전해가는 것이 유리하다. 우즈베키스탄에 가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2주 정도 걸리며 7일 머물 수 있는 비자가 약 10만원. 태림투어에서 비자 발급을 대행한다.
(02)771-3332
*아래는 사마르칸트에서 부하라 가는 길, 목화밭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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