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베레스트 서남쪽 6천440미터 봉우리 ‘촐라체’

이산저산구름 2008. 10. 6. 11:53

 
 2005년 1월 산악인 박정헌, 최강식 두 사람은 히말라야 최고봉 남서쪽에 위치한 촐라체 북벽 알파인 등정에 성공한다. 촐라체 북벽은 수직으로 된 난벽이 2천 미터에 가까운, 히말라야에서도 가장 오르기 힘들다는 대표적인 난벽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역사적인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 중에 조난을 당하고 만다. 그 후 극적으로 생환하게 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박범신의 소설 ‘촐라체’(2008)의 모티브다.
 
작가의 서사적 상상력으로 완전히 새롭게 탄생했지만 소설에서나 현실에서나 ‘촐라체’는 인간의 실존적인 한계 상황에서 고통스러운 인간의 본성을 확인하게 해주는 대상이다.
 
베레스트 서남쪽의 난벽 ‘촐라체’
 
소설 속에서 에베레스트 서남쪽 6천440미터 봉우리 ‘촐라체’를 올라간 두 사내 박상민과 하영교는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다른 형제지간이다. 하영교는 스물한 살, 형 박상민은 서른셋이다. 동생 영교의 아버지는 상민의 아버지와 어린 그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아간 사람이다. 영교에게 상민은 기대고 싶은 형이었지만 정작 형은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야속한 존재일 뿐이다.
 
현실의 좌절 앞에서 형제는 서로 몸을 자일 하나로 묶고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면서 운명에 온몸으로 저항하고 화해의 과정을 모색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베이스캠프에서 기다리는 늙수그레한 ‘캠프지기’도 본원적인 존재의 번뇌가 깊이 드리워진 인물이다. 젊은 시절 한 여자가 나타나 자신의 아이라며 핏덩이를 안겨준 뒤 종적을 감춰버렸다.
 
홀로 살뜰하게 키웠던 그 핏덩이 아들 현우는 입산해버렸다. 촐라체에 올랐다가 조난당한 형제와 캠프지기 사내의 6박 7일과 생생한 등반 현장의 리얼리티가 소설 ‘촐라체’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이 소설에서 ‘촐라체’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박상민과 하영교가 아버지가 다른 형제간으로 설정돼 있다는 것은 그들이 겪었을 삶의 굴곡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그 둘이 ‘촐라체’에 오른다는 과정은 결국 삶의 응어리진 고난과 현실에서의 절망,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의 충돌이다.
 
결국 ‘촐라체 북벽’은 두 인물의 삶 자체이며 꼭 넘어야만 될, 끌어안아야 될 인생의 한 부분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경외로운 신의 경지인 히말라야
 
히말라야란 어떤 곳인가. 그 거대한 산은 인간이 결코 넘을 수 없을 것처럼 생각되는 신의 경지이며 인간 본성의 추악함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은 신성한 곳이다. 네팔은 그러므로 신성한 성지로 가는 문이며, 삶의 난벽을 통과하는 첫 번째 입구인 셈이다.
 
산 아래 가장 큰 두 도시, 카트만두와 포카라는 온화한 모습으로 산을 모시고 있는 풍경이다. 도시에서 바라본 히말라야의 파노라마가 아주 이채로웠던 기억이 난다. 히말라야의 고도가 너무 높아 산의 밑은 아예 사라져버린 것 같은 착시 현상이 그것이었다. 온전히 산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하얀 설산만이 공중에 파노라마로 펼쳐진 광경은 왜 산이 신의 경지인가 하는 것을 깨우쳐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 위엄은 인간을 두려움에 몰아넣기에 충분하며,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실존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어느 기자가 작가에게 진짜 촐라체에는 오를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에겐 소설이 촐라체야. 목숨 걸고 올라가는 거지. 설마 소설 쓰면서 목숨까지 걸까 싶겠지만 나는 걸어.” 결국 소설 ‘촐라체’는 일상과 삶에 있어 인간이 품어야 할 실존의 대리 경험인 셈이다.
 
<백가흠 / 소설가>
  
 
'히말라야는 초월적 세계, 영원성의 상징 , 신의 영역과 같은 것’
 
194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박범신 작가는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면서 작가로 데뷔, 1970~80년대 대표적 인기작가로 각광받았다.
 
사회적인 폭력의 구조적인 근원을 밝히는데 중점을 둔 작품이 대부분이며, 1993년 갑작스러운 절필 이후 3년 만에 ‘흰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하며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 뒤로는 인간의 내면과 실존, 자연과 생명에 대한 문제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산, 특히 히말라야에 관심을 갖고 탐구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그에게 히말라야는 ‘초월적인 세계, 영원성의 상징, 이룰 수 없는 꿈, 신의 영역과 같은 것’이다. 등반을 하는 과정은 자기 성찰의 시간이요, 초월, 불멸, 영원, 신의 ‘그림자’를 경험하는 시간이다.
 
박범신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히말라야 일대는 자본주의의 어지러운 세계 속에서 영혼의 숨구멍 같은 곳이다. 촐라체나 에베레스트보다 더 어려운 게 인간을 오르는 일이다. 그것보다 어려운 건 유한한 생을 사는 인간이 시간의 산을 아름답게 오르고 내려오는 거다. 내 연배에 들 법한 이런 질문들이 계속 나를 괴롭히는데 해답을 구하지 못하던 차에 히말라야에 갔고, 자연스럽게 글의 소재로 삼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박범신 작가는 히말라야를 여러 번 다녀왔고, 소설 ‘나마스테’(2005)와 히말라야 일대를 70여 일 동안 걸으면서 쓴 편지 형식의 산문집 ‘비우니 향기롭다’(2006) 등을 집필했다.
 
자연과 인간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매 순간이 눈물겨웠다고 밝히는 작가는 히말라야에서 새삼 ‘사랑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소설로 승화시키고자 했는데, 그 작품이 바로 ‘촐라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