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만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뻐하기 위해 태어났다
사람은 만족하기 위해서, 충분히 소유하기 위해서, 해소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사람은 기뻐하기 위해 태어났다. 기쁨은 ‘활발한’, ‘흥분한’, ‘감동한’이라는 단어들과 관련이 있으며 모두 ‘껑충껑충 뛰다’에서 파생되었다. 루카 복음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을 서술하는 장면에서 엘리사벳의 뱃속에 든 아이가 기쁨으로 뛰었다고 기록했다. 고대 표준 독일어에서 기쁨에 해당하는 단어는 스웨덴어 가운데 생명의 충만함, 삶의 즐거움을 의미하는 단어와 닮았다. 기쁨은 만족보다 즐거움에 더 가깝다. 만족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기쁨은 나를 즐거움으로 가득 차게 한다. -<사는 것이 즐겁다>에서
♣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나서 ‘보시니 좋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기에 좋은 것은 아름답고 선하며 진실함을 뜻합니다. ‘하느님이 보시니 좋았다’는 뜻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셨음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께 기쁨을 주기 위해 존재합니다. 하느님을 기뻐함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기뻐하시게 하려면 우리의 생명이 충만한 가운데 우리의 행복함이 하느님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서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고 하셨습니다. ‘풍성한 생명’은 행복한 삶이며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기쁨은 만족보다 즐거움에 더 가깝다. 만족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기쁨은 나를 즐거움으로 가득 차게 한다”.(안셀름 그륀) ------------------------------- 오늘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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