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고운 말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
어른들을 위한 동시집을 출간한
풀꽃 시인 나태주
나태주 시인은 사는 일이 짜증스러울 때, 동시를 읽으라고 말한다. 그러면 부드러운 마음이 생기고, 다정한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거라면서 말이다. 시인은 동시가 결코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라고도 한다. 어른들도 모두 어린이였기 때문이란다.
시 쓰기 60년을 기념하며 세상에서 가장 고운 말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생각을 주고 싶었다며 어른들을 위한 동시집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를 내놓은 시인, 나태주를 만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뭘까?
더없이 화창한 어느 봄날, 시인 나태주를 종로에 있는 시인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올해 초 시인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나태주는 자택이 있는 공주와 서울을 오가며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48년 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한 지도 한참지났지만, 어찌된 게 지금이 더 바쁘단다. 더욱이 동시집 출간까지 했으니 왕성한 현역의 삶 그 자체다.
나태주는 이번 동시집에 그간 써 온 시들 중에 어른을 위한 시들을 직접 고르고, 정년퇴임을 한 후 교실 밖에서 써 내려간 신작 동시들도 더했다. 나태주는 책 서문에 사는 일이 늘 기쁘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면서 때로는 불안하고 불행할 때가 있기에 “그래서 동시를 드립니다.”라고 책을 편 이유를 밝혔다. ‘동시를 드린다’는 표현이 인상 깊다. 왜, 지금, 시인은 동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본래 서문을 잘 써야 책이 잘 나갑니다. (웃음) 서문에는 가장 핵심이 되는 얘길 쓰죠. 서문은 독자에게 내미는 저자의 손과 같아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곰곰이 생각하다 동시를 ‘드린다’고 썼어요. 어른인 제가 드린다고 높여 말하니 아이들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지지 않죠? 이 시집의 서문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건네는 말입니다. 동시하면 아이들의 시로만 알아요. 아이들의 시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반드시 어린이만 누려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제 생각은 그래요. 왜냐고요? 어른들도 모두 어린이였기 때문이에요.”
나태주는 어른의 삶이 퍽퍽하고 힘든 건 어린 시절의 꿈을 잃어버린 탓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의 천국을 떠나와서 그래요. 어린 시절은 다 천국이었고, 그때 만났던 사람은 다 천사였어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천국을 떠나 딴 데 와 있는 거예요. 어른 세상이요. 동시는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어린 시절의 천국과 천사를 소환해 줘요. 동시를 통해서 잠시나마 그 시절로 돌아가 좋았던 것을 떠올려 본다면 오늘이, 지금이 부드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동시가 절로 써지는 나이
이번 동시집에 실린 <교회식당>이란 시를 보면 앞니 빠진 일곱 살 남자아이가 시인에게 반말로 대거리를 하는데, 시인은 자신이 아이들한테까지 깔보이는 사람이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뭔지 모를 웃음이 새어 나오며 부쩍 시인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에요. 아이들은 보통 어른들을 근엄하게 봅니다. 그런데 이 빠진 한 아이가 다가와서 자기가 먹기에도 국수가 맛있었는지, 나를 보고 ‘할아버지 그 국수 맛있었어?’ 하고 반말지거리로 묻는 거예요. 처음 보는 아이인데 말이죠. (웃음) 그래서 ‘야, 인마!’ 안 하고, ‘응, 맛있었는데?’ 하니까 씩 웃고 가더라고요. 그걸 그 자리서 바로 썼죠.”
나태주는 나이가 드니 굳이 동시를 쓴다고 의식하거나 노력하지 않고 시를 써도 절로 동시가 되는 것 같아 참 좋다고 말한다.
“일흔이 넘으니까. 아이들이 읽어도 좋고, 어른이 읽어도 좋은 시가 쓰이더라고요. 억지로 동시를 쓰지 않아도 동시가 돼요. 그게 참 좋아요. 젊은 시절에는 동시를 써야겠다 마음을 먹고 썼는데 말이에요. 이번에 책을 낼 때도, 출판사에서 그러더군요. 나태주의 시 안에는 동심이 들어 있다고.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다 좋다고.”
풀꽃 시인의 60년 시 쓰기
시인 나태주를 일컬어 어른들은 풀꽃 시인이라 불렀고, 아이들은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열여섯 살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해 60년이 흘렀고,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50년, 또 교직 생활로 48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나태주는 더욱 깊이 어려졌으며, 더욱 투명하게 순수해졌다. 현대인의 마음속 한 줄이 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오는 동안 아이들로부터 선물받은 문장이었음을 시인은 60년을 회상하며 고백한다.
나태주의 시 <풀꽃>은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외벽을 장식해 온 많은 ‘광화문 글판’들 중에서 시민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 온 시구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의 시가 걸린 현판을 직접 본 적이 없다.
“주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서 많이 보내 줬어요. 그렇게는 봤죠. 얼떨떨했죠. (웃음) 제 시는 광화문 글판에 딱 한 번 올라가고,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 시가 그렇게 환영받을 줄 몰랐어요. 그 시를 쓰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독자들이 그 시를 알아봐 주고 칭찬해 주고, 활용하니까, 저절로 모두의 시구가 된 거예요. 여기에 답이 있어요. 시인의 대표작은 시인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결정한다는 걸요.”
오로지 시이다. 시란 내일 할 일이거나 이따가 할 일이 아닌 지금 바로 할 일이다. 숨 쉬는 일이고, 밥을 먹는 일이고, 사랑하는 일이다. 나태주에게는.
“괴테가 좋은 시란 ‘어린이에게는 노래가 되고, 청년에겐 철학이 되고, 노인에겐 인생이 되는 시’라고 했어요. 아주 좋은 말이에요. 나도 그런 시를 쓰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런 시를 하나 썼어요. 그게 내겐 <풀꽃>이에요. 독자들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나태주는 코로나19로 힘든 요즘에 대한 염려도 잊지 않았다. 조금 더 작은 생활, 조금 더 내면적인 일상, 조금 더 자기를 성찰하는 삶으로 돌아가라는 어쩔 수 없는 요구를 받는 것 같다면서 말이다. 거부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좋지 않으냐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이 동시집이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겠느냐고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조금이라도 회복시켜 준다면, 퍽퍽한 삶에 부드러운 삶을 선물해 준다면… 또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내일의 꿈을 꾸는 데 디딤돌이 되어 준다면 좋겠어요. 그래 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야 뭐, 책 많이 팔리면 좋지, 뭐. (웃음)”
시가 절실한 때이다. 시인의 바람대로 많은 이들이 그의 시를 읽고 위안과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글: 강은진
사진: 김영길, 출판사 톡 제공
'말과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말 - 우리말로 사람을 위로하는 인도주의자 백기완 작가 (0) | 2019.06.26 |
---|---|
우리말을 여행하다 - 문학과 우리말 사이를 따라 걷다(남원편) (0) | 2019.04.10 |
‘뼈째회’ 맛있게 먹고 ‘각자내기’ 하자 (0) | 2018.10.31 |
몰라봐서 미안해!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한글 (0) | 2018.10.11 |
‘쌤’과 ‘사라다’의 가르침 (0) | 2018.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