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안동 문화

풍자를 새기다 - 웃음으로 꼬집는 풍자,

이산저산구름 2016. 4. 7. 16:36

신이 내려 살아나는 탈

정초에 부산의 수영 사람들은 정갈한 곳에서 만든 10여 개의 탈을 나열하고 간단한 제물을 차린 뒤 ‘탈제’라는 고사를 올린다. 탈제를 지내고 나면 바가지로 만든 물건에 지나지 않던 탈이 놀이의 신이 내려 신성한 것이 된다. 고사를 지낸 탈을 쓴 사람이 놀이마당에 나서면 신명이 올라 절로 입이 터지고 춤이 나온다. 성스러운 탈은 함부로 다루었다가는 재앙을 당한다. 그래서 ‘탈 많은 탈’은 놀이를 마치면 곧 불에 태워버리는 ‘탈소각제’를 지내어, 내린 신을 고이 보내드린다.

엄숙한 탈제 마당에서 사람 같기도 하고 귀신 같기도 하고 비뚤어지기도 한 여러 가지 탈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말 없는 탈에도 해학성과 풍자성이 풍기기 때문이다. 흰색 바탕에 옅은 살색을 칠한 양반탈들은 얼굴을 가릴 만한 크기다. 사실적인 것 같지만 어벙하고 우습다. 양반은 나약한 백면서생(白面書生)이지만 수염을 길러 위엄을 과시한다. 형상 자체만으로도 풍자적인 모양반(毛兩班)탈, 짐승 같이 부도덕한 짓을 한다고 털을 많이 붙였다. 허약하고 뒤틀린 몰골이지만 하얀 수염이 많은 노인이라 서열이 둘째로 높다. 모양반은 지역에 따라서는 개 같은 짓을 하는 양반이라고 아예 개털로 탈을 만들고, ‘개잘량(개털방석)’ 또는 ‘두룽다리(개털모자)’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양반의 마부(馬夫)인 말뚝이탈은 양반탈보다 두 배나 커서 양반들을 압도한다. 여드름이 여기저기 돋은 검붉은 말뚝이탈은 젊고 힘이 세어 보인다. 양반의 비행을 잘 들으려는 큰 귀. 크게 호통을 치듯 귀밑까지 벌린 큰 입. 가히 양반을 타도할 수 있는 모습이다. 민중의 영웅이다. 말뚝이탈은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갖추고 있으나 따져보면 사람의 형상이 아니다. 귀신의 모습이다. 굿에서 악귀를 퇴치하던 귀신탈(鬼面)이 후대에 백성을 괴롭히는 악귀 같은 양반을 응징하는 인물탈로 변신한 것이다.

말뚝이탈처럼 생겼으나 조금 작은 영노탈이 보인다. 영노는 무엇이든지 잡아먹는 상상동물이다. 이것도 악귀를 쫓던 귀신탈이었던 것이 아직 사람으로 변신하지 못하고 양반을 잡아먹는 괴물로 등장한다.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수영야류탈은 현전하는, 가장 오래되고 잘 갖추어진 탈로 인정을 받아 2015년 말에 부산시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수영야류 장면 ※QR 코드를 읽어보세요. 수영야류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국립국악원

저항적 쾌감으로 억압을 날리는 풍자

밤중에 수많은 등불을 밝히고 모닥불이 일렁일 때 탈들은 살아난다. 양반들이 공부를 하지 않고 향락적으로 타락한 작태를 보이다가 과거 보러 가려고 말뚝이를 부른다. 좀체 나오지 않던 말뚝이가 덧배기춤을 추며 뛰어나와서 배김사위로 땅을 힘차게 딛고 채찍으로 땅을 치며 반항을 한다. 말뚝이는 “여기저기 찾아다녀도 양반은커녕 개아들놈(쇠아들놈, 내아들놈)도 없더라”고 말을 돌려 욕을 한다. 양반이 다그치면 능청스럽게 변명을 하고 양반들은 그것을 믿고 스스로 바보가 된다. 마지막에 말뚝이가 양반의 본댁으로 찾아가서 대부인과 통정했다고 폭로하자 양반들이 스스로 집안이 망했다고 한탄한다. 이것은 양반을 비판한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근원적인 치부를 폭로함으로써 양반을 능멸한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 홀로 남은 수양반이 상상 동물인 영노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비굴하게 굴다가 ‘내가 고관대작을 지낸 사대부 집안의 자손으로 참양반’이라고 하지만 결국 잡아먹히고 만다. 비정상적인 양반들은 엄숙한 체하지만 경박하고, 숭고한 체하지만 비속하고, 도덕적인 체하지만 향락적이다. 풍자가 극심하지만 대사가 심각하지 않고 비속어, 외설어, 속담 등을 섞어서 말장난으로 비꼬고 꼬집으면서 패러디의 수법을 써서 저항적 쾌감을 느끼게 하여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 가면극에서 양반 풍자가 심하다. 그중에서도 경상도의 오광대와 들놀음(野遊)이 극심한데, 수영야류가 가장 신랄한 양반 풍자의 양상을 보인다. 수영야류는 허위와 억압에 대한 민중의 저항의식을 풍자적으로 표현한다. 낡은 질서에 대한 새로운 각성의 도전이다. 이것은 자체적으로 부패한 양반의 허황된 당위론(當爲論)에 대한 생산적인 민중의 생활 철학인 존재론적(存在論的) 인식의 표현이다. 수영야류에는 양반들의 가식적 지식과 도덕보다, 민중의 건강하고 왕성한 생명이 우위인 세계가 펼쳐진다.

농경사회 축제의 웃음꽃으로 핀 풍자극

이런 질펀한 웃음의 풍자극은 일 년에 한 번 정월 보름날 농경축제에서 펼쳐진다. 들놀음 놀이꾼들은 먼저 마을 제당들과 공동우물에 가서 고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한다. 그리고 수영다리 근처 옛날 농사굿을 하던 곳에서 화려한 가장행렬인 길놀이를 출발한다. 놀이마당에 와서 남정네는 누구나 참여하여 허튼 덧배기춤을 추며 노는 한마당춤놀이를 실컷 하다가 자정을 넘기고 가면극을 시작한다. 심한 풍자는 축제의 제의적 광란에서 일어난다.

수영야류는 현실의 문제를 바로 해결하려고 논 것이 아니다. 그것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놀이를 세시적 행사로 반복하면서 문제인식을 새롭게 하여 민중의식을 성장시키고, 갈등과 불만을 웃음으로 발산하여 답답하고 단조로운 일상에 활력을 줘 새로운 기분으로 생활하려고 놀았다.

수영 사람들은 들놀음을 통하여 농경시대에는 고을의 태평과 풍요를 기원하다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억압하는 양반에 대하여 풍자적인 대응을 하고, 식민지 시대에는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연행하였다.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도 공연을 통하여 향토와 민족의 정체성을 다지고 있다. 수영야류는 시대에 따라 그 사회적 소임을 다 하는, 살아 있는 문화다. 그 풍자 정신은 우리 가슴에 각인되어 길이 전통으로 이어질 것이다.

 

글‧정상박(동아대학교 명예교수) 사진‧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