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제천 옥순봉 ■, ■ 충주 계립령로 하늘재 ■

이산저산구름 2016. 3. 22. 08:36

 

■ 제천 옥순봉

 

 

 

지정번호 명승 제48호
소 재 지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산9 외
지정면적 178,232㎡
지 정 일 2008년 9월 9일


제천 옥순봉玉筍峯은 충북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위치하고 있는 봉우리로서 단양팔경 중에서 유일하게 행정구역상 단양군에 속해 있지 않은 경승지이다. 육로로는 접근이 어렵고, 단양팔경의 하나인 인근의 구담봉과 함께 충주호·신단양나루·장회·청풍·충주나루 등을 통해 호수의 수면 위로 배를 타고 접근해 조망할 수 있다.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옥순봉은 제천시에 위치하였지만 지리적인 이유로 구담봉과 함께 단양팔경에 속한다. 옥순봉은 해발 283m의 낮은 산으로 그 산세와 청풍호가 어우러져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강 위에서 바라보이는 식생은 대체로 소나무 군락이지만 곳곳에서 활엽수의 식생이 증가하고 있는 경향이 보인다. 옥순봉 지역 일대 경사면에 암석노출지가 많고 특히 병풍바위라고 불리는 수직절벽 부분처럼 거의 식생이 형성되지 않은 곳들도 있어 대체로 식물로 표면이 덮여 있는 비율(식피율)이 40~50%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중생대 백악기에 관입한 불국사 화강암에 속하는 조립질 내지 중립질 흑운모 화강암 내에 수평절리와 수직절리들이 발달하고 남한강의 침식작용으로 하식애가 발달함으로써 이들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또한 봉우리에는 토르(Tor)가 발달해 있으며, 옥순봉은 해발 283m로서 화강암지대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경관을 나타낸다. 충주호의 건설로 인해 옥순봉과 구담봉의 아랫부분이 물에 잠기게 되어 옛 모습은 다소 변한 상태이며, 강 위에서 바라보는 조망지점도 댐을 막기 전보다는 약간 높아진 상황이다. 그러나 호수의 수면이 넓어져 수직으로 선 봉우리와 조화를 잘 이루게 되었고, 또한 호수의 수운이 유리해 짐으로써 강 위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어 수상에서 조망하기에 매우 좋은 여건이 조성되었다.

 

 

제천 옥순봉은 비가 갠 후 희고 푸른 여러 개의 봉우리가 죽순이 돋아나듯 우뚝우뚝 솟아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전하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남한강 위로 솟아오른 봉우리가 매우 특이하고 아름답다. 옥순봉은 원래 청풍에 속해 있었는데 조선 명종 때에 관기 두향이가 단양 군수로 부임하는 퇴계 이황에게 옥순봉을 단양군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퇴계 이황이 청풍부사에게 청을 하였으나 청풍부사가 이를 허락하지 않자 이황이 석벽에‘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는 글을 암각하여 이곳을 단양의 관문이며 군경계로 정했다고 한다. 뒤에 청풍부사가 남의 땅에 군계郡界를 정한 자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옥순봉에 가보니 글씨가 힘차고 살아있어서 누구의 글씨냐고 묻자 이황의 글씨라고 하니 감탄하면서 옥순봉을 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연산군 때 탁영 김일손(1464~1498)도 이곳을 관람하면서 절경의 협곡을 극찬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단양 일대의 경승지를 소개하고 있는 자료에는‘기묘한 산봉우리들이 조화의 묘를 다하여 금강을 방불케 하고 산봉우리가 이어진 산형이 절묘하며 산세의 기복과 굴곡이 자유분방하여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충주 계립령로 하늘재

 

 

지정번호 명승 제49호
소 재 지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산8 외
지정면적 397,478㎡
지 정 일 2008년 12월 26일


하늘재는 북쪽으로 포암산(962m), 남쪽으로 부봉(925m)과 월항삼봉(847m) 등으로 이어지는 산맥 사이에 말안장처럼 움푹 들어간 곳에 위치하고 있는 고갯길로, 동달천 지류와 산북천 지류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동달천 지류는 하늘재에서 서류하여 수안보면 미륵리를 거쳐 제천시 한수면 송계계곡으로 이어지고, 산북천 지류는 동류하여 경상북도 문경군 문경읍 관음리를 지나 황정마을에서 남류한다. 또한 산북천은 경상북도 문경시 조령천의 지류이므로 하늘재는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 된다. 계립령 중 미륵리 절터에서 문경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지칭하는 하늘재 고갯길은 임진왜란 이후에 폐쇄된 길로서 이미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옛길이며, 지금도 충청북도 충주시 구간은 비포장 도로로 남아 있어 옛길의 정취를 잘 보존해 오고 있다.


하늘재 부근 포암산 방향에는 한훤령 산성이 있는데, 이 성은 길이 480m의 석성으로 언제 축조되었는지 알 수 없다. 성은 폭 1.8~2.4m, 높이 1.1~3.7m의 규모로 성벽 주위에서 신라계의 연질 토기와 경질 토기가 발견되었다. 또한 하늘재 옛길 주변으로 중원미륵리사지(사적 제317호), 중원미륵리오층석탑(보물 제95호), 중원미륵리석불입상(보물 제96호) 등 국가지정 문화재와 다수의 시도유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가 있어 매우 풍부한 문화경관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늘재 서쪽 수안보면 미륵리 56번지에 있는 사적 제317호 중원미륵리사지는 고려초기에 조성된 80,454㎡ 규모의 큰 사찰터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가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계립령은 이 옛길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작은 계곡과 주변에 펼쳐지는 월악산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옛길의 정취를 더해주는 역사적, 경관적 가치가 큰 명승이다.

 


충주 계립령로 하늘재는 충청도 충주와 경상도 문경 사이의 가장 낮은 고갯길로서 신라시대 초기인 156년(아달라왕 3)에 개척되었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영토 분쟁 역사가 전해오는 오랜 역사의 옛길로서,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통행로가 된 길이다. 하늘재에는 많은 전설과 유래가 깃들어 있고,『 삼국사기』·『삼국유사』·『문헌비고』·『증보문헌비고』·『만기유람』·『동국여지승람』등 다수의 고문헌 자료에 나타나고 있는 옛길이다. 하늘재는 고개가 하늘에 맞닿을 듯 높아 붙여진 명칭이라 한다. 한자로는‘천치天峙’라 표기하기도 하고, 우리말로는 하니재·하닛재 등으로 발음을 달리 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높은 고개라는 뜻에서‘한치’라고 했다고도 한다. 신라시대에는‘계립령’·‘마목현’이라 불리었으며, 고려시대에 계립령 북쪽에 대원사가 창건되면서 절의 이름에서 따와‘대원령’이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고개 부근에 한훤령 산성이 있으므로‘한훤령’이라고도 불렀으며, 시간이 지나면서‘한원령’으로 변화된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 말기 왜구가 창궐하면서 조운漕運이 육운陸運으로 바뀔 무렵부터 지금의 조령鳥嶺인 초점草岾이 크게 개척되면서 가치가 상실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본격적으로 조령이 중요한 구실을 하면서 새재에 관방시설을 설치하고 인근의 다른 통행로를 폐쇄할 때, 하늘재 옛길도 패쇄되어 이미 오랫동안 행인의 왕래가 없어진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