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구미 채미정 ■, ■ 거창 수승대 ■

이산저산구름 2016. 4. 5. 12:35

 

■ 구미 채미정 ■

 

 

 

 

지정번호 명승 제52호
소 재 지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249 외
지정면적 56,603㎡
지 정 일 2008년 12월 26일

 

구미시 금오산의 북쪽 계곡을 따라 흐르는 수계에 금오산 저수지가 위치하고 있다. 이 저수지는 금오산 도립공원의 하단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저수지의 상류쪽의 하천 건너에 채미정이 위치하고 있다. 채미정은 1768년(영조 44)에 처음으로 건립된 정자인데, 1977년 구미시에서 건물을 보수하고 경역을 정화하였다. 앞쪽으로 흐르는 맑은 계류와 수목들이 어우러져 경관이 뛰어나며, 채미정에서 바라보는 자연의 모습도 매우 아름답다. 채미정은 벽체가 없고 16개의 기둥만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자 건물로 중앙에 방 1칸을 만들고 사방에 마루를 둘렀다. 경역에는 숙종의 어필 오언시五言詩가 보존되어 있는 경모각敬慕閣, 구인재求仁齋와 비각 등의 건물이 있다. 채미정으로 들어가는 콘크리트 교량은 채미정의 전통적인 한옥의 분위기를 무겁게 하고 있고, 채미정 아래의 계류의 모습도 원형이 훼손되어 장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채미정은 고려시대 학자인 야은冶隱길재吉再(1353~1419)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1768년(영조 44)에 건립한 정자이다. 길재는 고려시대인 1386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를 거쳐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올랐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하면서 절의를 지켰다. 길재는 이곳 구미 출신으로 포은 정몽주·목은 이색과 함께 충절을 지킨 삼은三隱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1419년(세종 1)에 별세하자 나라에서‘충절忠節’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채미采薇’란 길재가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것을 고대 중국의 충신 백이伯夷·숙제叔齊가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 비유하여 명명한 것이다. 채미정은 흥기문興起門을 지나 우측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집이다. 뒤편에는 길재의 충절을 기린 숙종肅宗의 「어필오언구御筆五言句」가 있는 경모각敬慕閣과 유허비각遺墟碑閣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채미정은 멀리 바라보이는 금오산과 채미정 전면의 맑은 계류와 수목들이 채미정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경관미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 거창 수승대 ■

 


지정번호 명승 제53호
소 재 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
지정면적 7,396㎡
지 정 일 2008년 12월 26일


거창 수승대는 영남 제일의 동천洞天(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으로 알려진‘안의삼동安義三洞’중의 하나이다. 원학동 계곡 한가운데 널따란 화강암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곡으로서, 암반 위를 흐르는 계류와 숲이 어우러져 탁월한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다. 수승대에는 거북바위를 비롯해 요수정樂水亭이 아름다운 계류와 함께 어우러져 있으며, 주변에는 구연서원과 원각사 등이 자리하고 있어 문화경관으로서의 가치도 크다.


- 거북바위 : 거북바위는 수승대의 중요 경관 요소이며, 바위가 계곡 중간에 떠있는 모습이 거북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세월의 풍상을 겪은 소나무들이 바위 곳곳에 자라고 있어, 마치 평지 같은 인상을 준다. 바위 둘레는 퇴계 이황이 수승대라 이름 지을 것을 권한 개명시와 갈천 임훈林薰의 화답시를 비롯해, 옛 풍류가들의 시들로 가득 차 있다. 가까이에 거창의 대표적인 정자 요수정과 구연서원의 문루격인 관수루觀水樓, 그리고 거북 형상의 돌출된 바위가 잘 남아 있어 경관이 수려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 요수정 : 댓바위 앞을 휘몰아 도는 아름다운 물굽이를 내려보고 서 있는 정자가 요수정이다. 이곳은 요수樂水신권愼權이 제자들에게 강학하던 곳으로서 댓바위와 그 앞으로 흐르는 물, 그리고 정자 뒷편의 울창한 소나무 숲과 조화되어 이곳의 경관을 절경으로 만들고 있다.
- 구연서원 : 동쪽에는 구연서원이 있는데, 이 서원은 요수선생이 1540년(중종 35)에 서당을 세워 제자들을 가르친 곳으로 1694년(숙종 20)에 구연서원으로 명명되었는데, 요수 신권·석곡石谷성팽년成彭年·황고 신수이 세 분을 배향하고 있다. 구연서원 남쪽으로는 문루인 관수루가 있는데, 이 문루는 1740년(영조 16)에 세워진 것으로, 당시의 안의 현감 조영우가 명명하여 글을 쓰고, 부사 김인순이 건 누액樓額이 있다.
- 원각사 : 원각사는 60년대 지해스님이 수승대 골짜기 토굴에서 부처님의 계시를 받고, 현재 위치에 창건하게 되었다. 수승대의 전설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토굴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수승대’라는 이름에 대하여는 퇴계 이황의 개명시와 갈천 임훈의 화답시가 전하고, 수승대 양쪽에 위치하는 요수정과 관수루 등이 잘 남아 있어 요산요수하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산수유람 문화가 결합된 장소적 상징성이 큰 명승지이다. 요수정과 관수루는 수승대 계류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바라본다는 의미로서, 정자와 문루의 이름으로 계곡의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으며, 수승대의 경관이 자연경관과 문화경관이 잘 융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였던 이곳은 신라로 가는 백제 사신들을 수심에 차서 송별하는 곳이라는 뜻으로‘수송대愁送臺’라 불렸다. 그러나 퇴계 이황이 이곳의 풍경을 예찬하는 시를 한 수 읊은 뒤부터‘수승대搜勝臺’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