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제주 서귀포 정방폭포 ■, ■ 단양 도담삼봉 ■

이산저산구름 2016. 3. 8. 08:14

 

주 서귀포 정방폭포 ■

 

 

 

 

지정번호 명승 제43호
소 재 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 962 외
지정면적 10,529㎡
지 정 일 2008년 8월 8일

 

한라산 남측 사면으로부터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애이리 내의 남쪽 하단에 발달한 제주 서귀포 정방폭포는 거대한 돌기둥을 세워 놓은 듯한 수직절벽에서 폭포수가 바다로 직접 떨어져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희귀한 형태의 폭포이다. 신생대 제4기 화산분출로 형성되고, 주상절리가 잘 발달한 현무암이 수직의 해식절벽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해안 절벽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20여 m의 물줄기가 제주 남쪽 바다의 푸르른 해안절경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어 천지연폭포·천제연폭포 등과 함께 제주도를 대표하는 폭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천지연폭포·천제연폭포와 더불어 제주도 3대 폭포 중의 하나이며, 제주 영주십이경瀛州十二景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정방폭포는 높이 23m, 너비 10m로서, 폭포 양쪽에는 주상절리가 잘 발달한 수직 암벽이 형성되어 있으며, 폭포 주변에는 노송이 우거져 있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라도 폭포 옆에 앉아 있으면 곧 한기를 느낄 만큼 차갑다.


폭포에서 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바닷가에는 큰 동굴이 있는데, 동굴 안에는 규모가 큰 석불좌상이 있다. 또한 정방폭포에서 바라보이는 앞바다에는 울창한 난대림 숲이 자라고 있는 문섬·섶섬이 위치하고 있다.

 


정방폭포는 ‘정방관폭正房觀瀑’이라 하여 영주십경으로, ‘정방하폭正房夏瀑’이라 하여 영주십이경으로 알려져 있어 예로부터 수많은 탐방객이 이곳을 찾았고, 조선 숙종 때 제주목사였던 이형상 목사가 제주 관내를 순시하며 제주도에서 거행되는 행사장면을 남긴 화첩인『탐라순력도』에 폭포 주변에서 배를 띄워 풍류를 즐기는‘정방탐승正方探勝’이란 그림이 남아 있다. 또한 기원전 중국 진시황의 명으로 영주산(한라산)에 산다는 신선을 찾아왔던 서불(서복)이라는 사람이 폭포의 경치에 반하여 폭포 절벽에‘서불과차徐市過此(서불이 이곳을 지나가다)’라는 글자를 새기고 돌아갔고, 이 때문에 서귀포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진시황의 사자使者서불이 불로초를 구하러 제주에 왔다가 이곳을 지나면서‘서불과차’라는 글자를 암벽에 새겼다는 전설이 남아 있고 이로 인하여 서귀포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전해지고 있는 역사적·경관적 가치가 큰 명승이다.


『탐라록』에는‘이곳 정방연못에서 북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면 거북이들이 수면으로 떠올라 함께 춤을 추었다’는 설화가 전해오며, 이익태의『지영록』에는 정방폭포를‘경노연’이라 부른다고 하고 있다. 서귀포시에서는 서불 전설유적 재현을 위해 1999년부터 유적비와 전시관을 짓고 소공원을 조성하였다.

 

 

■ 단양 도담삼봉 ■

 

 

지정번호 명승 제44호
소 재 지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 195 외
지정면적 82,979㎡
지 정 일 2008년 9월 9일


단양 도담삼봉은 단양읍의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남한강의 경승지이다. 단양읍을 지나 충주호를 향해 흘러가는 남한강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도담삼봉은 단양팔경의 하나로, 남한강 상류 한가운데에 3개의 기암으로 이루어진 섬을 말한다. 푸른 강물 가운데 우뚝 선기암괴석이 모두 남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데, 가운데 봉우리가 가장 높고, 큰 봉우리 허리쯤에 수각水閣이 있어 절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망루 구실을 한다. 가운데 봉우리에 위치한 육각정자는 1766년(영조 42)단양군수 조정세가 창건하여‘준영정’으로 명명하였으나, 1972년 대홍수로 유실된 후 1976년 콘크리트 건물로 다시 지어‘삼도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도담삼봉은 전기 고생대에 퇴적된 석회암이 오랜 세월에 걸쳐 용식작용을 받아 형성된 카르스트 지형으로서 원추 모양의 봉우리를 남한강이 휘도는 높은 장군봉을 중심으로 세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그 형상이 기이하고 아름다우며 남한강과 어우러져 뛰어난 절경을 보여주고 있다. 도담삼봉 주차장에서 올려다 보이는 산 위에‘이향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 정자에 오르면 도담삼봉과 주변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충주댐의 완성으로 약 1/3이 물에 잠기게 되었지만, 월악산국립공원에 이웃하여, 수상과 육상교통이 개발됨에 따라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단양군 산천조」에 의하면‘도담은 군 북쪽 24리에 있다. 세 바위가 뾰죽하게 못 한가운데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택리지』의 「복거총론 산수편」에는 한강 상류 영춘 단양 청풍 제천의 이른바 4군의 산수를 논하면서, 훌륭한 산과 시내 바위와 골짜기 경치로 이담삼석二潭三石을 설명하고 있다. 이 담삼석이란 도담과 구담, 그리고 상선암·중선암·하선암을 의미한다.

 

 

단양 도담삼봉은 절경이 특이하고 아름다워 단양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며, 단양군수를 지낸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황준량·홍이상·김정희·김홍도·이방운 등이 많은 시와 그림을 남긴 곳이다.


조선왕조의 개국 공신인 정도전鄭道傳이 이곳 중앙봉에 정자를 짓고 이따금 찾아와서 경치를 구경하고 풍월을 읊었다고 하며, 자신의 호를‘삼봉三峰’이라고 한 것도 도담삼봉에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정도전은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젊은 시절 이곳을 유람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 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매년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어린 소년 정도전이‘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고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 도담삼봉은 가운데 큰 바위를 남편봉, 그리고 양쪽의 작은 바위를 각각 처봉과 첩봉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에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 한 사내가 본처와 후첩을 거느리고 살았는데, 여자들의 투기가 심했다고 한다. 마침 본처에서는 자식이 없었는데, 후처가 임신을 해 본처에게 대놓고 자랑을 하자 본처가 이를 투기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이 세 사람을 그대로 돌로 만들어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도담삼봉의 빼어난 절경은 퇴계 이황이 저녁노을 지는 도담삼봉을 바라보며 남긴 다음의 시 한 수에 잘 드러난다.


산명풍엽수명사(山明楓葉水明沙)
삼도사양대만하(三島斜陽帶晩霞)
위박선사횡취벽(爲泊仙橫翠壁)
대간성월용금파(待看星月湧金波)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별빛 달빛 아래 금빛 파도 너울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