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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도(양장본)

이산저산구름 2016. 1. 9. 07:20

배움의 도(양장본)
파멜라 메츠 지음 / 이현주 옮김 / 8,000원 /

 

 

 

이 책을 펴내며 ㅣ

현병호(민들레출판사 대표) ㅣ

'도'에 관심 있습니까?
한 동안 대도시 길거리에서는 느닷없이 옆으로 다가와서는 다짜고짜 "도에 관심 있습니까?"라고 묻는 젊은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길에서 '길(道)'에 관심이 있느냐고 묻는 그 젊은이들은 어찌 보면 길을 잃은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우리 교육이 '길 찾기'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싶어 마음이 아련해지곤 했다.
참된 교육이란 결국 자기를 찾고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의 현실은 잘해야 밥벌이 수단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데 그친다. 그나마 요즘은 그것도 갈수록 어려운 일이 되어 가는 현실을 감안하면 참교육의 길은 참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자신과 세상을 읽을 줄 아는 눈을 갖추고 또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표현 능력을 갖추면 사람답게 사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목이란 것들을 살펴보면 세상을 아주 파편적으로 읽게 만드는 데 그친다. 표현하기는 그저 시늉만 낼뿐이고 자기 읽기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그러니 이십대가 되어서 방향 감각조차 갖지 못한 채 길을 헤매게 된다. 때문에 사이비 목자들이 제 잇속 따라 길 잃은 양떼들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내가 곧 길'이라고 말한 이도 있고 그이를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이들도 많지만, 사실 누구나 스스로 길이 되어야 비로소 자신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삶의 길이란 누군가가 인도하는 대로 눈 감고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뻥 뚫린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그 발걸음이 곧 길이 되는 것이 아닐까? 도(道)를 닦는다, 길을 찾는다, 진리를 찾는다, 자기를 찾는다, 모두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하는 말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길 없는 길을 가리키는 손가락 하나
교육의 길, 가르침과 배움의 길이라는 것도 '도 닦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가르침을 업으로 삼고 있는 교사는 자칫 배움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놓치기 쉽다. 교육(敎育), 가르치고 기른다는 그 말 속에는 교사의 일방통행이 느껴진다. 교육자와 피교육자를 나누는 것이나, 가르쳐야 배운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낡은 패러다임이다.
가르침에서 배움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이 시대에 참된 가르침의 길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은 책이 있다. 길을 가리키는 오래된 손가락 가운데 하나인 노자의 도덕경을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풀어쓴 『배움의 도』라는 책이다. 학생을 위한 책이라기보다 교사를 위한 이 책이 '배움의 도'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것은 여러 모로 생각하게 하는 바가 있다.
배움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깨우친다면 가르침의 도는 저절로 터득될 것이다. 사랑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듯이 사실 배움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도 알 수 없다. 사랑을 말로써 정의할 수 없듯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배움의 길은 참된 배움의 길이 아니다. 사랑처럼 배움 또한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이다. 배움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그것을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대로 살 수는 있다. 진리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새로운 교육의 길을 찾는 이들 사이에서는 비전처럼 전해 오던 작은 책자가 있었는데, 복사집에서 제본한 허름한 그 책자에는 옮긴이 이름도 정가도 쓰여 있지 않았다. 활자로 인쇄된 책자도 아니었다. 옮긴이가 펜으로 쓴 꾸불꾸불한 필체 그대로여서 마치 필사본을 돌려보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배움의 도』는 그렇게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책자를 우리 말로 옮긴 이현주(이아무개) 목사님과 절친한 목사님이 계신 민들레교회에서 복사해서 아는 이들에게 돌리기 시작한 것을 새로운 교육을 꿈꾸는 이들이 저마다 제 호주머니를 털어서는 다시 복사해서 팸플릿처럼 돌렸다. 저작권(copyright)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이 움트던 시기이기도 해서 저작권을 문제삼지 않는다는 꼬리말을 달고 비매품으로 세상에 나온 그 책자는 불온 유인물처럼 손에 손을 거쳐 빠르게 퍼져갔다.
복사본으로 아는 이들 사이에서만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것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 저작권 계약을 맺고 정식 출판을 추진하게 되었다. 비매품 복사본으로 돌다보니 인연이 닿는 이들만 알게 되고 그 모양새 때문에 자칫 가볍게 취급되는 것이 아쉬웠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 책을 복사본으로 세상에 처음 소개한 곳이 민들레교회였는데 정식 출판을 한 곳은 민들레출판사이다. 하나의 우주적 농담으로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싶다.
필사본이 읽는 이들에게 주는 인간적인 매력을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활자본이 주는 또 다른 장점들도 있고, 표현을 많이 가다듬어서 좀더 이해하기 쉽게 고친 것도 책이 갖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도덕경 한문 원문도 넣을지를 두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영어 원문만 넣는 것으로 편집 방향을 잡았다. 『도덕경』 원문과 『배움의 도』 영어 원문을 대조하면서 읽는 것도 또 다른 맛을 줄 수 있을 텐데, 디자인 관점에서 포기하게 된 것이 아쉽다.
원래 원서에는 중국의 수묵화에서 따온 작은 소품 그림들이 매 장마다 들어 있었는데, 내용과 별 상관 없이 그저 동양적인 느낌을 주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글에 어울리는 그림을 넣으면 좋겠다 싶어 많은 고심을 하다가 결국 고암 정병례 선생의 전각 그림을 쓰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철수 선생의 판화를 넣으면 딱 어울리겠다 싶어 부탁을 드리고서는 몇 달을 기다렸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힘들게 되어 그림이 달라졌지만 어떤 분은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 든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이아무개 목사의 로마서 읽기』『이아무개 목사의 금강경 읽기』 같은 책을 펴내기도 한 이현주 목사는 목사보다 '도사'로 소문이 나 있는 분이다. 예배당 안의 목사 노릇을 그만둔 지는 꽤 여러 해 되는데 그래도 여전히 목사님으로 세상에서 통하는 것은 아마도 그분이 예배당 바깥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목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뿐만 아니라 금강경이나 도덕경도 성경 못지 않게 깊이 이해하고 일맥상통하는 뭔가를 쉽게 풀어서 들려주고 있다.
난세에는 '비서(秘書)'가 유행한다지만, 비서처럼 세상에 퍼지기 시작한 배움의 도는 곪을 대로 곪은 교육난국에서 새로운 교육질서를 꿈꾸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용기를 북돋우는 역할을 해온 셈이다. 양산박처럼 곳곳에서 둥지(또는 소굴)를 틀고서 새로운 교육을 꿈꾸는 이들이 생겨나더니 어느듯 우후죽순처럼 대안학교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난국을 극복하려는 민초들의 몸부림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우리 사회에서 대안교육의 물꼬가 터지기 시작한 시점과 '배움의 도'가 세상에 퍼져간 시점이 거의 일치하는 것도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교육,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추구하는 대안교육의 정신은 결국 참된 배움의 길을 가려는 것이다. 그러나 배움의 길이 학교 안에만 있지 않듯이 학교 바깥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참교육의 길을 찾는 이라면 그가 서 있는 바로 그 곳이 배움의 도가 숨어 있는 곳이다. 매 순간 순간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듯이 살림의 교육과 죽임의 교육으로 나뉘는 갈림길은 매 순간 순간 우리 앞에 나타나 우리에게 어느 길을 택할지를 묻는다. 이 어려운 시험에 맞닥뜨리는 이들에게 『배움의 도』가 아무쪼록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길 없는 길을 가리키는 손가락 하나, 수많은 손가락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어지러운 교육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는 작은 이정표 노릇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르침과 배움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짧은 몇 마디로 농축된 이 책은 노자의 도덕경 81장을 '배움과 가르침'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풀어 쓴 것입니다. 목사이자 아동문학가로 널리 알려진 이현주 님의 번역으로 그 동안 관심 있는 이들 사이에서 복사물로 돌고 돌던 책자가 정식 저작권 계약을 거쳐 출판되었습니다. 본문에 곁들여진 그림은 전각연구가로 잘 알려진 고암 정병례 님의 작품들입니다.

"그대가 누구를 가르칠 때
그 일을 왜 시작했는지 기억할 수 있는가?
장애물들 앞에서 부드러울 수 있는가?
영문 모를 어둠 속에서 마음의 눈으로 밝게 볼 수 있는가?
남을 잡아끌지 않으면서 친절하게 이끌어줄 수 있는가?
길을 뻔히 보면서도 남이 스스로 찾도록 기다려 줄 수 있는가?
낳아서 기르는 방식으로 가르치기를 배워라.
손에 넣어 잡지 않고 가르치기를 배워라.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도와주기를 배워라.
다스리려 하지 않고서 가르치기, 한번 해볼 만한 일이다."
-10장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

"슬기로운 교사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가 하지 않는 일이 없다.
보통교사는 언제나 바쁘다.
그런데 아직 못한 일이 많다.
인자한 교사는 무엇인가를 한다.
그런데 아직 못한 일이 좀 있다.
고지식한 교사는 무엇인가를 한다.
그런데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엄격한 교사는 무엇인가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폭력을 쓴다."
-38장 슬기로운 교사 가운데

"인류에게 진정한 행복과 진보를 가져다 준 혁명들은 모두가 저 변두리에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도 않게, 예수의 겨자씨 한 알처럼,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관점만 달리하면 이 나라 구석구석에 보석처럼 빛나는 교육혁명의 겨자씨가 뿌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은 책이 옮긴이의 이름도 없이 매긴 값도 없이 세상에 나온 지 몇 년 세월이 흘렀는데, 그 사이에 죽어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이런 모양으로 다시 출판되어 기다리던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나라에 진정한 교육혁명이 벌써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옮긴이의 말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