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청송 주왕산 주왕계곡 일원, 진안 마이산

이산저산구름 2015. 11. 17. 10:59

 

 

 

 

■ 청송 주왕산 주왕계곡 일원

 

 

지정번호 명승 제11호
소 재 지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산24 외
지정면적 8,368,056㎡
지 정 일 2003년 10월 31일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에 위치하고 있는 주왕산周王山은 한반도 지형의 뼈대를 이루는 백두대간에서 동남부로 뻗어 나온 지맥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721m의 주왕산 주위에는 600m가 넘는 산봉우리가 12개나 솟아 있으며, 수많은 암봉과 깊고 수려한 계곡이 서로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다.‘청송 주왕산 주왕계곡 일원’은 주왕산 권역중에서 청송군 지역에 해당하는 구역을 대상으로 지정하였으며, 대전사 쪽의 진입부에서 주왕계곡을 중심으로 양측의 산 능선부위까지 지정구역으로 정하고 있다. 주왕산은 암벽으로 둘러싸인 산들이 마치 병풍과 같다고하여‘석병산石屛山’이라고도 하며, 표고가 아주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세가 대단히 웅장하고 사계절의 경관이 매우 수려한 산이다.

 

주왕산 일원의 지질은 풍화와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중생대 백악기 유천층군의 중성 내지 산성 화산암류로 되어 있다. 연꽃 모양을 한 연화봉과 만화봉, 주왕이 무기를 감추었다고 하는 무장굴(하식동), 신선이 놀았다고 하는 신선대와 선녀탕, 그리고 제1·제2·제3 폭포 등은 경승지로서의 가치가 뛰어나다. 주왕산은 심산구곡을 이루고 있어 동·식물도 매우 다양하게 분포한다. 포유동물 46종·조류 27종·곤충 603종이고 식물이 491종류이다. 특히 수달래(수단화水丹化)·망개나무·송이버섯·천연이끼 등은 주왕산의 특산물로 유명하다.

 

 

주왕산이란 이름은 신라시대에 주원왕이 임금의 자리를 버리고 수도하였다는 전설에서 호칭되었다고도 하고, 중국의 진나라에서 피신하여 온 주왕이 이곳에 웅거하였다고 해서 불러졌다고 한다. 산봉우리·암굴마다 주왕의 전설이 얽혀 있다. 신라시대 초기에는‘석병산’이라 하였으나 이와 같은 전설에 따라 신라 말기 이후에 주왕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청송지방에는 여러 산지에 산철쭉이 분포하고 있으나 주왕산의 것을 특별히 수달래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옛날 주왕이 이곳에서 신라 군사와 싸우다 힘이 다해 마장군 형제의 화살에 맞아 잡히자 그의 피가 주왕굴에서 냇물에 섞여 계곡을 따라 붉게 흘러 내렸는데, 그 이듬해부터 이 주왕산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꽃이 계곡과 내를 따라 피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꽃을 주왕의 피가 꽃이 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는 전설에 기인한다. 주왕산 기암절벽 가운데는 바위가 일부 떨어져 나간 곳이 있는데 여기에 얽힌 전설이 있다. 주왕이 신라의 마장군 형제와 일전을 벌일 때, 바위에 이엉을 둘러 쌀뜨물을 계곡에 흘려 보냄으로써 많은 곡식과 많은 군사가 있는것처럼 마장군을 속였고 그 때 마장군이 쏜 화살이 바위에 맞아 일부가 떨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 진안 마이산

 

 

지정번호 명승 제12호
소 재 지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단양리 산127-1 외
지정면적 206,423㎡
지 정 일 2003년 10월 31일

 

마이산은 전북 진안군 진안읍 남쪽 약 3㎞ 지점에있는 두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산으로서, 동쪽 봉우리가 숫마이봉, 서쪽 봉우리가 암마이봉이다. 마이산馬耳山은 말의 귀를 닮은 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진안읍 방향에서 남쪽 방향으로 서 있는 마이산을 바라보면 정말 말의 귀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마이산은 강이 발원하는 지점으로 유명한데, 남쪽 사면에서는 섬진강 수계가, 북쪽 사면으로는 금강 수계가 각각 발원한다.

 

 

마이산은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역암이 주 구성암석이며, 역(자갈)을 구성하고 있는 암석은 화강암이 가장 많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역암층은 주변의 다른 암석에 비해 풍화에 강하고, 융기작용·지질구조·차별침식 등으로 인하여 높은 지형을 이루고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에 발달한 단층대를 따라 활발한 침식작용이 일어난 결과로 판단된다. 산의 풍화 표면에는 수많은 풍화혈(Tafoni)이 다양한 크기로 발달되어 있어 학술적인 가치도 매우 크며, 이것은 빙정의 쐐기작용에 의하여 생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마이산 부근에는 진안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386호)와 진안 마이산 줄사철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제380호)과 같은 귀중한 식물자원이 인접하여 있다. 마이산에는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로 고갯길이 계단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남측 입구부분에는 80여 기의 돌탑이 세워져 있고, 이 탑과 함께 탑사가 건립되어있다. 이와 함께 은수사·금당사·북수사·이산묘 등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마이산 산봉과 유사한 역암으로 된 탑 모양, 또는 돔상의 지형은 마이산 동남쪽 약 2㎞ 지점까지 10여 개소가 분포하는데 광대봉·마두봉·관암봉·비룡대·나옹암 등이 줄지어 있다.

 


암마이봉(686.0m)과 숫마이봉(679.9m)으로 구성되어 있는 마이산은 말의 귀 모양을 하고 서 있어 명명된 것으로 알려진 산으로서, 신라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에는 용출산聳出山, 조선시대부터는 마이산이라고 불렸다. 계절별로 마이산을 부르는 이름이 다른데, 봄에는 바다 위에 떠있는 돛대와 같다고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하늘 우뚝 솟은 것이 용의 뿔과 같다고 하여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말의 귀와 같다고 하여 ‘마이봉馬耳峰’, 겨울에는 먹물을 찍은 붓끝과 같다고 하여 ‘문필봉文筆峰’이라 불리기도 한다. 또한 오행五行의 금행金行을 묶은 듯 생겼다고 하여 ‘속금산束金山’이라고도 부른다. 동봉과 서봉사이의 협곡 같은 고개를 지나면 은수사銀水祠가 있다. 속금산이라는 명칭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무장으로 운봉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개선하는 길에 마이산을 보고 그 모습이 꿈 속에서 받은 금척을 묶어 놓은 듯 하다고 해서 속금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탑사 부근에는 백여 년 전에 이갑용이 신의 계시를 받고 쌓아올렸다는 80여 기의 돌탑이 남아 있으며, 이산묘에는 단군 선조와 조선 태조·세종·고종의 위패를 모신 회덕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