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도의 바닷길 ■
지정번호 명승 제9호
소 재 지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의신면 일원 해역
지정면적 3.826,374㎡
지 정 일 2000년 3월 14일
전남 진도의 동남쪽에는 간조 시에 육계도가 형성되는 ‘진도의 바닷길’이 있다. 진도의 바다 갈림 현상은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의 바다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이한 자연현상이다. 일명‘신비의 바닷길’로도 불리는데 진도와 모도 사이의 바다가 달과 태양의 인력引力·해안지형·해류의 흐름 등에 의해 길이 2.8㎞, 폭 10~40m로 갈라진다. 이는 유동하는 해류의 영향으로 바다 밑에 육계사주陸繫砂州(모래언덕)가 발달하고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바닷물이 낮아질 때 모래언덕이 수면 위로 드러나 마치 바다가 갈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이 진도의 바닷길은 해수면이 현재에 도달한 약3,000~4,000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진도의 바닷길의 퇴적물은 암석쇄설물과 패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퇴적물은 모도와 회동리의 연안 암석이 강한 파도에 의해 부서지고, 이 부서진 암석은 조류의 흐름에 의해 회동리쪽과 모도 쪽에서 진도의 바닷길에 부가되어 형성되었다. 또한 진도의 바닷길은 주변보다 높아 북동 지역에 와류를 발생시켜, 바지락이 대량 서식하게 하는 역할도 하였으며, 이 바지락은 죽은 뒤에 패각을 바닷길에 공급하였다. 1990년대 초와 2003년의 지형을 비교하면, 회동리 연안에서 모도 방향으로 약 800m 구간의 높이가 약 40㎝ 정도 낮아졌다고 한다. 지형이 낮아진 것은 진도 영등제 때 관광객이 지나치게 몰려 과도한 답압에 의해 훼손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육계사주는 주변 지역에 해안도로나 옹벽 등이 건설되어 답압에 의해 낮아진 육계사주가 자연적으로 제 모습을 복원하고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으로서,현재는 육계사주의 보존을 위한 유지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육계사주 주변의 해역에서는 바지락·새조개·진주담치·꼬막·굴·흰삿갓조개·큰구슬우렁이·긴고둥·피뿔고둥·고막류·가리비류 등 다수의 유용 저서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2003년). 이러한 사주 지역 주변의 저서생물을 보호하는 것은 육계사주의 보존에 직접적인 관련을 지니고 있는 사항으로서, 저서생물의 생태적 지속성 유지라고 하는 차원에서 육계사주의 활용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진도 주민들은 예로부터 바닷길이 가장 크게 열리는 봄(2~4월)과 가을(9~10월)의 그믐과 보름사리 때 마을의 수호신인 뽕할머니와 용왕에게 어업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영등제靈登祭를 지내왔다. 진도지방의 전통축제인 영등제는 진도의 모든 전통예술을 보여주는 종합축제로 발전되어 개최되고 있으며, 매년 3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영등제와 진도의 바닷길을 보러 찾아오고 있다.
진도의 바닷길은 1975년 프랑스 대사를 지낸 ‘피에르 랑디’가 이를 보고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프랑스 신문에 소개한 뒤 세계적인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이곳 외에도 충남 보령의 무창포를 비롯하여 전국에 약 20여 곳에서 바다 갈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진도의 바다 갈림 현상이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삼각산 ■
지정번호 명승 제10호
소 재 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1,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
지정면적 274,143㎡
지 정 일 2003년 10월 31일
삼각산은 서울시 강북구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북한산 산군에 속하는 산봉우리의 일부로서, 백운대白雲臺(836.5m)·인수봉人壽峰(810.5m)·만경대萬鏡臺(787.0m) 등 북한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산봉이다. 삼각산은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북쪽에 인수봉, 남쪽에 만경대의 3봉이 삼각형의 형태로 위치하고 있어 삼각산이라 불러졌다고 한다. 삼각산은 강원도의 백두대간으로부터 갈라져서남 방향으로 굽이쳐 흐르는 한북정맥이 경기도 양주군 남쪽에 도봉산으로 일어선 후 다시 우이령에서 등을 낮추었다가 서울 북방에 이르러 높게 솟구쳐 오른 산이다.
삼각산은 중생대 쥐라기에 관입한 대보화강암류(흑운모 화강암 또는 화강섬록암)로 구성되어 있으며, 형상을 달리한 화강암 돔(Granite dome)을 이루고 있다. 이 산은 화강암의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산봉의 모습이 서로 어우러져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돔을 형성하는산 사면의 경사는 대체로 70°이상에 달하고 있다. 삼각산은 다양한 등반코스가 있어, 암벽등반을 비롯하여 많은 등산객들이 등반하고 있으며, 백운대의 정상에는 약500㎡의 평탄한 곳이 있어 많은 등산객들이 쉬어 가기도한다. 만경대는 옛 이름이 국망봉이라 불리어졌으며 정상부의 산세는 불규칙하다.
삼각산은 풍수지리로 보아 수도 서울의 조산祖山이며 종산宗山으로 알려져 있다. 삼각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한북정맥의 끝 부분에 형성된 산으로서, 조선의 수도로 한양(서울)이 정해질 때, 북악을 주산主山으로하고 그 뒤로 연결된 삼각산을 조종祖宗으로 하여 도읍을 정한 것이다. 삼각산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성종 이후부터 1900년대까지 불려 졌으며, 삼국시대에는 부아악負兒岳으로, 조선시대 중기에는 화산華山, 화악華岳으로 불리기도했다. 오늘날 많이 부르고 있는 북한산이라는 명칭은 1711년(숙종 37)에 축성된 북한산성을 근거로 남한산성과 대비하여 서울 북쪽에 위치한 산이라는 의미로 1900년대 초부터 사용된 명칭이다. 삼각산은 백제의 건국과 함께 부아악이란 이름으로 기록에 나타난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고 하며, 부아악은 이 삼각산을 의미한다.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아 국토를 순례할 때, 백운대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 가 비봉에 이르니 한 석비가 있었는데 거기에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는 비석이 있어서 길을 다시 바꾸어 내려가 궁성터(오늘의 경복궁)를 정하였던 곳이 바로 이 삼각산이다.
삼각산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쓴 시“우뚝 솟은 뫼는 하늘까지 솟았네. 한양의 지세는 하늘을 열어 이룩한 땅. 굳건한 큰 대륙은 삼각산을 떠 받쳤고”에 나타나고,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끌려가면서 남긴 김상헌의 시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에 등장하기도 하며, 많은 시인 묵객들의 시화에 등장하기도 하는 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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