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열네 번째 이야기 길 - 신석기인들이 남겨놓은 수수께끼 - 선사시대 유적

이산저산구름 2015. 5. 27. 09:58

 

 

건물을 짓거나, 길을 내는 공사를 하던 중 선사시대 유적을 발견했다는 뉴스를 종종 듣게 된다. 이런 유적은 한반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정착하고 생활했는지를 증명해주는 소중한 단서가 된다.
그러나 발굴된 유적들은 일반사람들에게 그저 너른 공간에 흩어져 있는 돌무지로 보이기 십상이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수고가 더해진다면 값진 선물을 얻어 오는 여행길이 된다.


 

- 역사책을 바꿀 놀라운 발견

 

2012년 고성에서는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다. 고성 문암리 유적에서 신석기시대의 밭이 발굴된 것이다. 지금까지 교과서를 통해 신석기시대까지는 주로 수렵 활동을 했고, 청동기시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배웠는데, 이 내용을 뒤바꿀 만큼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놀라운 발견의 현장은 고성의 한 바닷가 마을. 주소를 따라 찾아간 곳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한적한 어촌마을 한가운데, 산기슭 아래로 추정되는 너른 공터에 문화재 발굴과 보호를 위해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이 있을 뿐이다. 5,000년을 땅속에 묻혀 있던 유적들이 세상에 존재를 다시 드러낸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기 때문일 터였다. 유적지를 둘러보며, 주변의 마을과 건물들을 지우고 원시의 생활을 그 위에 그려본다.
앞으로 유적을 복원해 공원으로 조성하고 박물관도 세울 계획이라고 하니, 고고학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이곳에 와서 더많은 것을 보고, 인근 국가들보다 훨씬 앞섰던 우리 한반도의 농경 문화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토우니가 들려주는 5,000년 전의 이야기

 

 

선사시대 유적이 강원도에서 처음 발견된 것은 1977년이다. 동해안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쌍호라는 호수를 메우고 농경지를 만들기 위해 주변의 토사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신석기시대의 유적이 대량 발견된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된 선사시대 유적 발굴은 주변으로 확대돼, 인근의 양양 용호리, 가평리, 지경리, 강릉의 초당동, 안인리 등에서도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발굴 현장이나 유적지에서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상상해보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오산리 유적 인근에 들어선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에 들러보면 좋다. 신석기시대의 자연 환경과 당시의 생활 모습을 정교한 모형으로 재현해놓은 전시관은 5,000년의 시간을 홀쩍 뛰어넘게 해준다. 흙으로 그릇을 빚는 모습,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해서 고기를 얻는 모습, 열매를 따는 모습 등이 생생하게 재현돼 있다. 특히 인근 지형의 특징까지 살려, 물길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생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 박물관을 더욱 흥미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토우니라는 캐릭터다. 오산리 유적에서 발견된 흙으로 빚은 사람얼굴상을 본떠 만든 토우니는 애니메이션 등의 영상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신석기시대에 대해 설명해주어, 어린이들도 흥미롭게 볼 수 있다.
동해안의 다른 선사시대 유적에 대한 설명도 있어 일일이 가보지 않더라도 동해안 지역에 살았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흔적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 북한강을 따라 피어난 선사시대 문화

 

백두대간을 넘어 영서 지역의 선사시대 유적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양구 선사박물관을 찾으면 된다. 양구와 춘천, 홍천 등에는 북한강 줄기를 따라 선사시대 유적이 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지역 개발과 댐 건설 중에 발견된 유적들을 이곳에 한데 모아 전시하고 있다. 발굴된 지역별로 시대와 특징에 대한 설명과 함께 토기, 도끼, 화살촉 등의 유적을 분류해놓아 서로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이곳에서 작은 돌멩이, 토기 조각 등으로 수천 년 전 조상들의 삶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일부 유적들은 발굴 조사 후 댐 건설로 수몰되거나 개발에 밀려 현장에서는 더 이상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박물관에서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박물관을 나서면 주변 지역에서 발굴된 고인돌들을 옮겨 전시해놓은 공원을 둘러볼 수 있다. 제자리를 잃고 이곳으로 이사 온 수천 년 전 무덤의 주인들은 이처럼 새로운 곳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까마득하게 오랜 시간 지켜온 자리를 빼앗기고 낯선 곳으로 옮겨진 이들에게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 5,000년 동안 묵묵히 변화를 목격한 청동기 무덤

 

양구에서 소양강을 따라 춘천으로 들어서면 선사시대 유적을 더 많이 볼 수 있으며, 그 시대와 종류도 다양해진다. 그중 춘천 천전리 유적은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모두 보여준다. 가치 있는 다량의 유물이 발견되면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연결 고리를 찾는 데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되는 곳이다.
길가의 표지판이 이곳이 문화 유적임을 알려주고 있으나 기대했던 것만큼 거창하게 유적 현장이 보존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빼곡한 비닐하우스 사이로 인근에서 발견된 고인돌 중 5기를 모아놓은 작은 공간과 안내 표지판만이 이곳이 선사시대 유적임을 말해준다. 수천 년 전 신석기인들이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왔듯, 지금 역시 상당 부분 농경지가 되어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고인돌의 주인들은 수천 년 동안 이곳에서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변하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을까. 시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삶이 이어지고 그 흔적이 켜켜이 쌓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철기시대의 유적 3~4미터 아래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그 위에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흔적도 다시 쌓이게 되리라. 그러나 자연스럽게 삶의 터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발굴과 조사 없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의 흔적을 무너뜨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시간을 거슬러 들려주는 과거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춘천 천전리 지석묘군과 멀지 않은 춘천 소양강의 작은 섬 중도에서는 최근 개발과 보전의 목소리가 거세게 부딪치고 있다. 세계적인 테마파크 건설을 앞두고 진행된 발굴 작업에서 청동기시대의 집단 주거지 유적이 대규모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면적이나 발굴 유물의 가치 면에서 한반도 최대의 마을유적이라는 평가에 현장 보존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어떤 것이 더욱 가치 있고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뒤로하고 국립춘천박물관으로 향한다.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 그리고 현대까지 강원도 땅이 어떤 변화를 겪어왔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를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인류 최초의 도구라 할 수 있는 구석기시대의 뗀석기부터 시작해,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 토기, 이음낚시, 그리고 청동기시대의 청동검과 청동거울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들이 옛날 사람들의 생활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어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한 삼국시대의 출현과 본격적인 역사시대로 접어드는 과정을 흥미롭게 구성해놓고 있다.
여행에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선사시대 유적을 찾아가는 여행은 특히나 더 그렇다. 수천 년 전의 선사시대 유적도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돌덩이나 흙무더기로 보일 뿐이다. 수천 년 전의 조상들이 남긴 값진 선물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다르게 매겨질 수 있을 것이다.

 

 

- 함께 가보면 좋을 곳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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