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열 다섯번째 이야기 길 - 이 땅의 모든 신과 인간을 위한 이야기 - 동해안 별신굿

이산저산구름 2015. 6. 2. 09:44

 

 

신이나 죽은 이들을 위해 올리는 제(祭)는 그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안식을 비는 일로 시작되지만 이 모든 것은 산 사람들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이런 제의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축제로 자리하고 문화 예술로 발전해왔다. 강릉의 단오제는 이런 전통 축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과 인간이 함께하는 그 길을 따라가보자.

 


- 대관령, 그곳엔 신들이 산다

 

 

  

‘신들이 사는 곳’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고속도로가 아닌 대관령 옛길을 선택해야 한다. 대관령 중턱에서 선자령으로 넘어가는 길을 한참 오르다 보면 조용한 산을 울리는 악기 소리와 그 안에 섞인 사람들의 읊조림이 들려온다.
성황사와 산신각 앞에는 갖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그 앞에서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화려한 색의 옷을 입고 징을 치고 구슬을 흔들며 신을 맞이하는 무속인들도 상당수다. 과연 이곳에 어떤 신들이 있기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그리도 간절한 눈빛으로 기도를 올릴까?
성황사와 산신각이 있는 이곳 대관령은 예부터 신들이 머무는 신계(神界)라고 여겨왔고, 강릉 사람들은 이 신들이 주변 지역을 보살펴준다고 믿었다. 특히 이곳은 실존 인물이었던 세명의 신을 모시고 있는데, 대관령국사성황신은 범일국사, 대관령국사여성황신은 정씨 여인, 대관령산신은 김유신 장군을 신격화한 표현이다. 단오제는 이들 신을 인간들의 세상으로 모시고 내려와 성대하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다.
성황사와 산신각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양옆으로 우거진 단풍나무 숲이 눈길을 끈다. 이 나무들 중 하나는 베어져 다음에 있을 단오제에 신목(神木)으로 쓰이게 될 터, 어떤 나무가 선택을 받아 단오제의 주인공이 될지 눈여겨보며 강릉으로 향한다.

 


-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구분 짓다

 

 

대관령 옛길을 다 내려오면 꼬불꼬불했던 길이 허리를 펴고 경사도 비교적 완만해지는 곳에 도달하는데, 이곳에 바로 구산 서낭당이 있다. 여기서부터는 신의 세계가 끝나고 인간의 세계로 접어드는 곳이라 여겨진다. 지금은 그냥 길가에 서 있는 낡은 집에 지나지 않지만 옛날에 단오제가 열리는 날이면 모두 이곳에 나와 대관령에서 내려오는 성황신을 성대하게 맞이했다고 한다. 지금도 단오제 행사 기간이면 화려하게 치장을 하는 중요한 곳이다.
인간들의 신 맞이는 강릉 시내에 있는 칠사당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단오제가 시작되기 한 달 전, 사람들은 쌀과 갖은 곡식을 모아 단오제에 쓰일 술과 떡을 정성껏 빚고 신이 내려올날을 기다린다.
음력 3월 20일부터 단오 다음날인 5월 6일까지 한 달 넘게 지속되는 강릉단오제는 신에게 제를 올리고 풍작과 풍어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있다. 단오제 기간 동안에는 신분을 뛰어넘어 모두가 참여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풍악과 유희를 즐기며 축제를 만끽했다. 그렇기에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이제의식이 가치를 지니고 전해지는 것이리라.

 

 

- 바다를 잠재우는 비문

 

삼척에는 바다의 거친 풍랑을 잠재우는 신비한 비문이 있다. 삼척 시내에서 바닷가로 가는 길 야트막한 육향산 정상에 있는 두 개의 비석, 척주동해비와 평수토찬비가 바로 그것이다.
산을 따라 계단을 오르다 보면 비각 안에 자리한 이 두 비석이 대체 무엇이기에 거친 바다의 풍랑도 막아준다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두 개의 비석은 모두 삼척부사 허목이 직접 비문을 짓고 건립한 것이라 전해진다. 당시 풍랑이 심해 삼척 시내까지 홍수피해가 잦아 이를 안타깝게 여겨 신비로운 내용으로 비문을 작성하고 웅장하고 막힘 없는 필치로 전각하여 비석을 세운것이다.
자연도 이에 감탄한 것인지 이후에는 큰 피해 없이 풍랑이 잦아들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뱃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글씨체의 수려함에 놀라게 되는데, 동방의 1인자로 불리는 허목의 전서체는 기묘한 모양과 조형미로 유명하다.

 

 

 

 


- 애달픈 처녀의 마음을 달래다

 

 

바다를 주 생활 공간으로 삼았던 삼척 지역에는 바다와 관련된 전설과 설화가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해신당 설화다. 이를 테마로 조성된 해신당공원에는 독특한 볼거리들이 많다. 공원으로 들어서면 먼저 남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 조각공원을 지나게 된다. 하나의 소재를 예술가들의 시선으로 익살스럽게, 혹은 아름답게 표현한 제각각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민망하기보다는 웃음이 먼저 나온다.
조각공원을 지나 처녀의 집에 이르면 이 공원의 배경이 된 해신당 설화의 내용이 소개돼 있다. 이곳 신남마을에는 결혼을 약속한 처녀와 총각이 살았는데, 어느 날 홀로 해초를 뜯던 처녀가 풍랑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그 뒤로 바다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아 마을이 피폐해져가고 있었는데, 한 어부가 바다를 향해 오줌을 누자 그 다음날부터 고기가 잘 잡혔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정월대보름이 되면 나무로 남근 모양을 깎아 바다에 던지고 처녀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과 음력 10월 첫 오일(午日)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남아 있다. 오일은 12간지 중에서 성기가 가장 큰 말[午]의 날이기 때문이다.
공원은 바다와 맞닿아 있는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바다쪽으로 난 산책로를 걸으며 동해를 조망할 수 있다.
그 옛날 망망대해 푸른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어민들에게 거센 풍랑과 조류는 신의 영역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 바다를 향해 정성을 다해 제를 올렸던 조상들의 노력을 오늘날 과학의 잣대로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삶의 터전을 닦고 문화를 만들고 이어온 것은 거친 자연 속에서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 함께 가보면 좋을 곳들

 

 


● 길에서 만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