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열한 번째 이야기 길 - 강퍅한 삶을 달래준 노래 - 정선 아리랑

이산저산구름 2015. 5. 6. 13:33

 

 

2012년 아리랑이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정선아리랑은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아리랑으로 손꼽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시작되어 다른 아리랑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진다. 정선의 어떤 면이 우리 민족의 영혼이라 불리는 아리랑을 탄생시켰을까?
굽이굽이 고개를 돌아 정선여행을 시작한다.

 


- 첩첩산중 산골 마을에서 시작된 노래

 

 

정선은 강원도에서 제일가는 첩첩산중이다. 태백산맥의 산간마을로 화전민들이 근근히 생을 꾸려가던 이곳에서 어떻게 아리랑이 시작됐을까? 정선아리랑 속에도 등장하는 아우라지를 찾아 그 역사를 되짚어본다.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의 시작은 고려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왕조를 섬기던 선비들이 고려가 망하자 정선 지방에 숨어 살면서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충절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한시를 지었는데, 한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내용을 쉽게 노래로 풀어 알려주면서 퍼지게 된 것이 정선아리랑이다. 정선에는 없는 개성의 만수산이 정선아리랑에 등장하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리랑 가락에는 많은 이야기가 더해져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아우라지에 얽힌 이야기다. 아우라지 나루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있는 두 마을의 처녀와 총각이 서로 사랑을 했는데, 장마로 물이 불어 만날 수 없게 되자 처녀가 이를 원망하여 부른 노래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증명하듯 아우라지에는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처녀와 총각 동상이 각각 서 있다. 지금은 두 마을을 잇는 오작교가 들어서 장마로 아무리 물이 불어난다 해도 쉽게 건널 수 있도록 둘을 연결해주고 있다. 오작교 옆으로는 옛 모습 그대로인 돌 징검다리가 놓여 있어 옛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정자에 올라 처녀의 뒷모습 너머 아우라지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넉넉하지 않은 삶이지만 그 속에서 풍류를 즐기고 낭만을 꿈꾼 옛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 나만의 아리랑을 배우다

 

총각의 동상 너머에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아리랑을 배울 수 있는 정선아리랑 전수관이 들어서 있다.
일반인도 신청을 하면 전수자들에게 아리랑을 배울 수 있는곳으로, 주말이면 아리랑을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민요가 어느 한 사람이 지어 모두에게 가르친 것이 아니기에 가사를 지어 붙인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쌓이고 가락도 변형되어 지금 전해지는 아리랑의 가사만도 800여 수가 된다고한다. 그중 배우는 사람이 가장 깊이 이해하고 부를 수 있는 가락을 찾아서 가르쳐준다고 하니 한 번쯤 들러봄 직하다. 아리랑을 배우고 나서 자신의 심경을 한 구절 보태어 부른다면 또 하나의 아리랑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장터

 

 

아리랑을 흥얼거리며 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그 유명한 정선 5일장이 열리는 장터에 다다른다. 장이 서는 날이면 장터 주변은 몰려든 관광객들로 교통 정체를 빚을 정도인데, 이 산골 마을에 어떻게 이런 큰 장이 서게 되었을까?
이곳에 장이 처음 열린 것은 탄광 개발이 시작되면서부터다. 탄광의 일자리를 찾아 각지에서 몰려든 젊은이들로 정선의 인구는 급격히 늘어났고, 이들을 상대로 한 장이 서게 된 것이다. 이후 탄광이 문을 닫으며 장도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서울과 연결되는 철도 관광 상품이 생기고 입소문이 나면서 관광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기차를 타고 산속 시골 마을을 찾아 산나물과 약초가 가득한 전통장을 구경하는 일이 도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관광 코스가 된 것이다. 매스컴을 통해 장터의 먹을거리들이 알려지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크게 늘어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전통 5일장으로 자리 잡았다.

장터에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사람들 너머로 아리랑 곡조가 들려온다. 역시 아리랑의 고장답다. 소리를 따라가니 사람들로 둘러싸인 장터 한편 무대에서 아리랑 공연이 한창이다.
공연자가 선창을 하고 관람객이 후렴을 따라 하며 모두 함께 아리랑을 만들어가는 모습이다.
정선에서는 아리랑을 보다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이야기와 접목한 공연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 아리랑극은 장이 서는날 장터에서 멀지 않은 정선문화예술회관에 방문하면 볼 수있어 장날의 흥겨움을 더해준다. 아리랑의 가락과 노랫말을 바탕으로 그에 얽힌 설화를 극화하여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1999년 시작된 정선아리랑극은 해마다 정기적으로 프로그램 내용을 바꾸어 관객을 찾고 있으며, 전문성과 완성도 면에서도 손색없는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 양반증서를 받아들고 양반을 풍자하다

 

 

정선의 옛 모습을 재현해놓은 곳도 있는데, 바로 이 지역의 옛 주거 문화를 재현한 아라리촌이다. 아라리촌에 들어서면 눈길을 끄는 표지판이 하나 있는데, 바로‘양반증서’를 발급해 준다는 안내다. 호기심에 들여다보니, 공부만 하면 그 자리에서 양반증서를 발급해 준다고 한다. 공부라고 해봤자 안내문 몇 자 읽으면 그만이니 거저 얻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분 차이가 명확하던 과거에는 양반이라는 신분이 큰 권력이고, 양반이 아닌 이들은 제대로 된 대우조차 받지 못했는데, 그 큰 권한을 몇 분 만에 달랑 종이 한 장으로 얻을 수 있다니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에 등장하는 내용이 조각상으로 익살맞게 재현돼 있다. 양반증서를 받아들고 그 앞에 서서 조각들의 내용을 살펴보니, 또 한 번 웃음이 나온다.
마을 가운데 있는 놀이마당에서는 『양반전』을 극화한 공연도 볼 수 있으니 시간을 맞춰 들러봐도 좋다. 마을의 기와집에서는 정선아리랑의 고장답게 정선아리랑 교실이 열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당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마음속의 정을 노래했던 아리랑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풍성하게 발전해왔다. 그들의 노래가락이 끊이지 않도록 더 많이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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