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열두 번째 이야기 길 - 그곳에는 신선과 선녀가 산다 - 설악산의 전설과 설화

이산저산구름 2015. 5. 12. 10:11

 

 

설악산은 한반도에서 금강산 다음가는 명산으로 손꼽힌다. 우뚝 솟은 봉우리와 그 사이를 잇는 능선, 여러 형태의 기암괴석, 굽이쳐 흐르는 맑은 계곡과 폭포들은 탄성을 자아낸다. 우리 조상들은 그 감탄을 전설과 설화로 만들어냈고, 폭포와 바위 하나하나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게 됐다. 그냥 듣자면‘에이~’라고 웃어넘기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비경을 접하게 되면‘그럴법도 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이야기를 따라 설악산을 올라본다.


 

- 금강산이 되고 싶었던 울산바위

 

 

울산바위는 남한에서 가장 멋진 암괴로 손꼽히는데, 둘레가 4킬로미터에 달하고 여섯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울산바위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바위가 울타리처럼 둘러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경상도 울산의 지명과 관련된 설이다. 산신령이 1만2,000봉에 달하는 명산을 만들기 위해 세상의 멋진 봉우리들에게 금강산 자리로 모일 것을 명했는데, 울산바위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설악산에 머물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가려고 하던 차에 이미 금강산의 1만 2,000봉이 다 찼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울산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설악산은 이토록 아름다운 봉우리를 얻었으니 울산바위의 무거운 행차가 우리에게는 되레 고마운 일이 된 셈이다.

 


울산바위로 오르는 길, 작은 암자 옆에 있는 흔들바위는 그 크기로는 울산바위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작지만 유명세는 못지않다. 평평한 암반 위에 세워져 있는데 일정한 방향, 간격으로만 흔들릴 뿐 아무리 강한 힘을 가해도, 폭풍우가 몰아쳐도 떨어져 내리지 않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여기에는 사이 좋은 오누이의 사연이 전하는데, 오빠가 전쟁터에 나간 사이 여동생이 오빠를 기다리다 이 자리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고 나중에 돌아온 오빠가 통곡을 하며 돌을 내리쳐 바위가 갈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힘껏 바위를 밀어보지만 바위는 딱 그만큼만 흔들릴 뿐이다. 몇 해 전 만우절, ‘설악산 흔들바위 추락’이라는 거짓말이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한 것을 보면 지금까지도 이 흔들바위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인가 보다.

 


- 불길로부터 지켜주는 100개의 웅덩이

 

 

백담사는 독특한 사연으로 유명해졌는데, 바로 전직 대통령이 현대판 귀양살이를 했던 곳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신흥사에 딸린 말사로 찾는 이가 많지 않던 이곳이 세상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것이다. 이후 귀양살이는 끝나고 화엄실에 머물던 이는 떠나갔지만 백담사는 발전을 거듭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곳 백담사에는 이름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 처음 절이 지어진 곳은 여기에서 조금 떨어진 한계사 터였지만 계속되는 화재로 소실되고 재건하기를 반복하다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다시 불이 나 재건을 앞두고 있던때에, 주지스님의 꿈에 신선이 나타나‘대청봉에서 절까지 물웅덩이를 살펴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산에 올라 세어보니 물웅덩이의 개수가 100개에 달했고 ‘이 물을 다 모으면 화마로부터 안전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절의 이름을 백담사라 했다고 한다. 덕분인지 그 다음부터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니 효험이 있는 처방이었던가 보다.

 

 

- 선녀들이 빚은 신비한 계곡

 

 

설악산에는 선녀가 만들었다는 십이선녀탕이 있다. 이름만 들어서는 열두 개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여덟 개만 존재해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그 해답 또한 전설 속에 있다.
옛날에 옥황상제가 지상에 깨끗한 물을 담을 탕을 만들기 위해 열두 명의 선녀를 내려보냈는데, 설악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곳에 탕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네 명의 선녀가 고된 작업 끝에 숨을 거두자 나머지 여덟 선녀가 이들을 그탕에 묻어주고 하늘로 올라갔고, 옥황상제가 하늘에서 물을뿌리니 그 물이 여덟 개의 탕을 만들고 굽이굽이 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길은 대승령을 지나 대승폭포로 이어진다. 대승폭포는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로 손꼽힌다. 나머지 두 폭포는 북에 있으니 대승폭포가 우리가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이곳에 대승이라는 이름의 청년이 있었는데 절벽에서 밧줄에 매달려 버섯을 따던 중, 줄 위에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대승아~’ 하며 자꾸 부르는 소리가 들려 올라가 보니 지네가 밧줄을 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아들을 생각한 어머니의 외침이 울리는 듯하다 하여 대승폭포라 이름했다고 한다.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죽어서도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놓지 못한 어머니의 사랑을 느껴본다.

 


- 신비한 이야기를 담은 두 갈래의 약수

 

설악산을 오르내리느라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오색약수터로 향한다. 그 이름에는 주변에 다섯 가지 색의 꽃이 피는 신기한 나무가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약수에서 다섯 가지 맛이 나서 오색약수라 한다는 설이 있다. 오색약수터에 이르는 물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데, 사람들은 한쪽을 음수, 다른 쪽을 양수라 부르고 있다.
일곱 선녀가 이곳에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몰래 따라온 선관이 두 선녀의 날개옷을 감춰버렸고 둘은 승천하지 못하고 옷을 찾다가 끝내 이곳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다. 뒤늦게 선녀들을 찾으러 온 선관은 선녀와 다른 방향으로 오르다 역시 찾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렇게 두 선녀가 숨진 곳에 옥녀폭포와 여신폭포가 생겼고, 선관이 숨진 곳에는 독주폭포가 생겼다. 숨겼던 선녀들의 날개옷은 물을 따라 흘러 오색약수 앞에서 치마폭포와 속치마폭포가 되었고, 선녀를 찾으러 뛰어가던 선관이 벗어던진 탕건과 감투도 바위가 되어 아래쪽에 남아 있다. 이후 두 물길이 합쳐지는데, 오색약수는 이렇게 음양의 조화를 이룬 물이기 때문에 그 효험이 더 좋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어쩜 이리도 쏙 들어맞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구르는 바위 하나, 흐르는 물방울 하나에도 숨결을 불어넣고 생생한 감동을 부여하는 옛사람들의 탁월한 이야기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 함께 가보면 좋을 곳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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