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슬픈 마지막을 함께하는 길
단종(1441~1457)은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슬픈 사연을 가진 왕으로 기억된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으며,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마저 잃고 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숙부에게 쫓겨나 결국은 먼 영월땅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짧은 삶을 안타까워해서인지 영월에는 단종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 단종의 슬픈 길을 되짚다
1457년 음력 6월 삼복더위가 한창인 여름의 어느 날, 열일곱살의 어린 단종은 솔치재를 넘어 영월 땅에 들어섰다. 양력으로는 7월 말, 쏟아지는 뙤약볕 아래 그 길을 따라 걷노라니 힘든 발걸음에 울컥 슬픔이 치밀어 오른다. 창덕궁을 나서 7일 만에 이곳 영월까지 오는 동안 몸의 고단함은 물론이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이라는 절망이 무겁게 짓눌렀을 터다.
태어나자마자 이틀 만에 어머니를 잃고 열두 살 나이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것에 이어, 그를 보필하던 충신들마저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의지하던 정순왕후와도 생이별을 하고 홀로 떠나온 단종의 유배길은 말 그대로 통곡의 길이다.
길은 원주와 영월의 경계인 솔치재에서 시작된다. 길 곳곳에는 단종과 관련한 지명이 남아 있고, 그와 함께 슬픈 이야기도 전해진다. 고갯길은 계속 이어져 임금이 힘겹게 넘은 고개라는 뜻의 ‘군등치’와 험준한 고갯길에 말들도 숨을 몰아쉬어 목에 달려 있던 방울이 떨어졌다는 ‘방울재’로 연결된다. 이어 배일치마을에 닿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엎드려 절하는 단종의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 해가 기울 무렵 이곳을 지나던 단종은 문득 한양이있는 서쪽을 바라보다 절을 올렸다고 한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들을 향해 고마운 마음과 미안함을 담아 절을 올리며 곧이어 다가올 마지막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것일까. 그렇게 고갯길을 넘고 넘어 길은 유배지인 청령포에 다다른다.
- 세상과 단절된 외로운 유배 생활
청령포를 마주하자 그 슬픔은 절정에 달한다. 서쪽은 깎아지른 절벽이 막아서고 삼면은 서강이 휘돌아 감고 있어 배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섬과 같은 모양이다. 게다가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밖에서는 안이 들여다보이지도 않아 세상과 단절돼 있다.
청령포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지이기는 하나 여느 곳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서글펐던 단종의 마지막을 추모하는 듯 관광객들도 목소리를 낮춰 그저 천천히 걸음을 옮길 뿐,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볼 수 없다. 단종이 머물렀던 작은 집을 둘러보거나 그가 한양이 있는 서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는 언덕에 올라 그저 한숨 지을 뿐이다.
단종의 서글픈 삶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홍수로 청령포가 물에 잠기자 거처를 다시 관풍헌으로 옮긴 것이다. 지금 영월의 중심가에 위치한 관풍헌은 영월 객사의 동헌 건물로, 단종은 그해 10월 24일 이곳에서 세조의 명으로 사약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단종의 서글픈 마음은 관풍헌 한편 ‘자규루’에 남아 있는 ‘자규시’에서 엿볼 수 있는데, 이별한 가족들과 자신 때문에 죽어간 충신들을 향한 그리움과 슬픔, 자책과 원망 등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一自寃禽出帝宮(일자원금출제궁)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에서 나온 뒤로
孤身隻影碧山中(고신척영벽산중)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속을 헤맨다
暇眠夜夜眠無暇(가면야야면무가)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 이루고
窮恨年年恨不窮(궁한년년한불궁)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聲斷曉岺殘月白(성단효령잔월백)
두견새 소리 끊어진 새벽 멧 부리엔 달빛만 희고
血流春谷落花紅(혈류춘곡낙화홍)
피를 뿌린 듯한 봄 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
天聾尙未聞哀訴(천롱상미문애소)
하늘은 귀머거린가 애달픈 이 하소연 어이 듣지 못하는지
何乃愁人耳獨廳(하내수인이독청)
어찌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밝은가
- 자규시(子規詩)
시에 남겨진 단종의 애통한 마음을 안고 낙화암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곳은 단종이 승하하자 시녀와 하인들이 차가운 동강으로 몸을 던져 절개를 지킨 곳으로 전해진다. 그들이 있어 단종의 마지막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을까.
- 이제, 편히 잠들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단종은 죽음 이후에도 온전히 쉬지 못하였다. 단종의 시체에 손이라도 대는 자는 3족을 멸하겠다는 세조의 서슬 퍼런 경고에 감히 누구도 시신을 거둘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영월 호장 엄흥도가 몰래 시신을 수습하여 선산에 암장하고 본인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가 없었다면 단종은 시신조차 찾을 수 없이 떠도는 신세로 남을 뻔한 사연이다. 남몰래 암장했던 묘는 20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장릉이라는 이름으로 예를 갖추어 추봉하였다.
장릉은 처음부터 임금의 능으로 지정되어 조성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여느 조선의 왕릉과는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일반적으로 제를 올리는 정자각은 홍살문을 지나 직선으로 이어지는데, 장릉의 정자각은 ‘ㄱ’자로 꺾여 있다. 선산의 언덕 능선을 따라 배치한 탓에 조금은 다른 구조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단종의 능은 재실과 정자각 위의 높은 언덕에 있어 계단을 따라 한참을 올라야 한다.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비통한 삶의 무게가 다시금 느껴져 더욱 엄숙한 마음으로 단종을 맞이하게 된다.
능을 참배하고 내려온 후에는 입구에 있는 단종역사관으로 걸음을 향한다. 단종의 세자 즉위부터 왕위에 올라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후 단종으로 복권되기까지의 일대기가 잘 정리되어 있어 단종의 숨결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 영원히 단종과 함께하는 문화제
단종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마음으로 품어준 영월은 1967년부터 매년 4월 마지막 주 단종제향일에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장릉과 관풍헌, 동강 둔치에서 3일간 개최되는 단종문화제는 단종의 고혼과 충신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를 넘어 전통 역사 축제로 자리하고 있다. 짧은 5개월 남짓이었지만 고된 삶의 마지막을 보내고 편히 누운 땅 영월은 여전히 단종과 함께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 깊이 바라는 만큼 소년왕 단종은 살아 있는 동안 겪었던 고초를 잊고 편히 쉬고 있을는지…….
- 함께 가보면 좋을 곳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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