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여행길 15 - 석양빛에 물든 자연유산을 따라

이산저산구름 2015. 2. 17. 15:10

 

 

-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모래언덕

 

 

햇볕이 강렬한 어느 여름날. 바다를 타고 온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바람이 손짓하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신두리 해안이다. 바닷물이 멀찍이 빠져 있다. 바닷물이 빠진 자리엔 갯벌과 모래가 뽀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갯벌 따라 곳곳에 조개 캐는 사람이 보인다. 발치에 모아둔 조개 알이 굵다.
또 한 번 바람이 세차게 몰아친다. 바람을 타고 모래가 흩날린다. 순식간에 사방이 해무로 뒤덮인다. 시야가 흐려진다.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렵다. 어렴풋이 저 멀리 바다가 보일 뿐이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이 잦아든다. 모래가 이동한 곳으로 다시 걸음을 옮겨본다.
바람 타고 이동한 모래들이 수평선 따라 낮은 언덕을 형성하고 있다. 이곳이 바로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천연기념물 제431호)다. 먼저 쌓인 모래 위에 새로운 모래가 쌓인다. 또 바람이 분다. 또 쌓인다. 반복된 퇴적 작용. 감히 가늠할 수도 없는 시간을 거쳐 모래는 조금씩 조금씩 쌓였다. 그렇게 형성한 사구의 길이만 무려 3.44㎞, 너비 500m∼1.3㎞다.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규모만큼이나 생태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육지와 바다 사이 퇴적물 양을 조절해 해안을 보호하고, 내륙과 해안의 생태계를 이어주는 완충 역할도 해낸다. 뿐만 아니라 폭풍, 해일로부터 해안선과 농경지를 보호하고 지하수도 공급한다.
움푹움푹 빠지는 발을 디뎌 모래언덕에 오른다. 마치 사막길을 걷는 것 같다. 언덕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햇볕에 반사된 모래가 반짝인다.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신두리 해안사구,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 태안, 그곳에서 만난 시간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 영원한 아름다움
하얀 꽃처럼 순백하게 빛나는 백화산.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산길을 따라 한참 오르다보면 산 중턱에 사찰이 나온다. 태을암이다. 이곳에서 대웅전 뒤편으로 30m가량만 더 가면 조그만 보호각이 하나 보인다.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 제307호)은 이 보호각 안에 있다.
마애삼존불입상은 백제 대표 불상으로 좌우에 여래입상과 중앙에 보살입상을 배치해 조각했다. 보통 중앙에 본존불,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는 여느 삼존불과 다른 마애삼존불입상의 독특함이다. 불상 높이는 왼쪽이 2.96m, 오른쪽이 3.06m, 중앙보살이 2.23m이다.
마애삼존불입상은 6세기 후반 조각했다. 무려 천년이 넘는 세월이다. 그 긴 시간을 건너왔음에도 모습이 제법 뚜렷하다. 가운데 보살상은 양손으로 보주(寶珠)를 받들고 삼산보관(三山寶冠)을 쓰고있는 게 특징이다. 보살 양쪽에 있는 불상은 직사각형 얼굴에 귀가 굉장히 길어 넓은 어깨에 닿는다. 강건해 보이는 얼굴과 당당한 신체, 묵중한 법의가 특징이다.
나무에 새긴 조각은 언젠간 썩는다. 바위에 새긴 조각은 다르다. 이 또한 언젠간 무뎌지겠지만, 나무에 비할 바는 아니다.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마애삼존불입상. 그 앞에 시간의 흐름은 무의미해 보였다.

 

흥주사 - 차곡차곡 쌓아올린 시간의 흔적
한가로운 시골길을 지난다. 흐드러지게 펼쳐진 형형색색 구절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려 말엽에 창건했다고 전하는 대한불교조계종 흥주사 풍경이다.
왼쪽을 바라보면 높이 22m, 둘레 8.5m에 달하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다. 태안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수령(樹齡)이 무려 900년에 이르는 흥주사 은행나무(충청남도 기념물 제156호)다. 나무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오른편으로 바로 누각(樓閣)이 보인다. 중종 22년(1527) 12월 개건한 흥주사 만세루(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3호)다.
만세루는 흥주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이 무기저장고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뭇결 사이사이에 숙연하고도 깊은 숨결이 풍긴다.
만세루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대웅전이다. 입구에서 보았던 은행나무의 웅장함과는 달리, 흥주사는 아담하고 조용하다.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8호)도 마찬가지다. 여느 절에서 보았던 석탑과 비교하자면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석탑이 내뿜는 에너지는 축적한 시간을 더해 묵직하게 다가온다.
고요하면서 깊이가 느껴지는 흥주사. 구절초가 만발하는 초가을이나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든 늦가을에 찾으면 좋을 듯하다.

 

 

 

 

 

태안 향교 - 유교문화를 잇다

 

 

태안 향교(충청남도 기념물 제139호)는 태종 7년(1407) 사양동(현재의 샘골지역)에 창건했다. 이후 숙종 46년(1720) 현 자리로 옮긴이래 300년 역사를 자랑한다.
외삼문으로 들어서기 전, 먼저 보이는 것은 담장 너머로 고개 내미는 은행나무다. 향교를 이곳으로 이전한 후 심었다고 한다. 현재는 보호수로 지정한 상태며 수령은 약 240년이다.
외삼문을 통과해 향교 안으로 들어서면 명륜당과 그 안쪽에 동재(東齋)가 보인다. 서예교실을 비롯해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사서를 가르치고, 방학 중에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충효교실을 운영한다고 한다.

 

 

동재를 지나 내삼문을 통과하면 바로 대성전이 보인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형태로, 내부는 기후를 고려해 우물마루를 깔았다. 대성전에서는 현재 39위 선성현 위패를 모신다.
다시 향교 밖으로 나오면 서편에 예절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전통혼례를 주관하고 있으며, 매년 결혼 60주년을 맞는 노부부를 초대해 회혼례(回婚禮)를 열어준다고 한다. 700년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태안 향교. 긴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 태안 향교는 여전히 같은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유교문화를 잇고 있었다.

 

태안 성당 -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건축양식

 


태안 성당은 1964년 본당으로 승격하며 신설했다. 이후 자리를 지키던 태안 성당은 본당 설립 40주년을 맞아 지난 2004년, 성당 건물을 신축했다. 신축 당시, 태안 성당은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절충한 건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전주 전동성당(사적 제288호)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정문을 지나 성당에 들어서면 먼저 예수상이 눈에 들어온다. 비교적 높은 곳에 자리한 예수상은 신비함을 자아낸다. 예수상을 지나면 비로소 태안 성당 본당이 보인다.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건축양식에서 절제된 기품이 느껴진다.
성당 문을 밀고 들어선다. 양 벽을 따라 일렬로 새긴 조각과 창문에 수놓은 스테인드글라스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기둥과 그 사이사이에 가지런히 놓인 의자도 인상적이다. 각지고 정돈된 질서는 화려한 색채를 지그시 누른다. 그래서 그런지 태안 성당은 전체적으로 화려하지만 결코 과해보이지 않는다. 깊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건축양식이다. 꼭 천주교인이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들러볼만 하다.

 


- 자연과 문화, 그리고 인간이 살아 숨쉬는 ‘태안해변길’

 

태안해안국립공원의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이국적인 풍경과 울창한 소나무 숲, 해변을 즐길 수 있는 태안해변길. 총 7개 구간 97km에 달하는 태안해변길은 바라길-소원길-파도길-솔모랫길-노을길-샛별길-바람길 순으로 이어진다.

 

 

‘바라길’은 학암포에서 시작해 신두리에서 끝난다. 바라길은 싱그러운 바다 냄새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코스다. 특히 탁 트인 학암포해변 경관을 보면 가슴이 뻥 뚫린다. 바라길은 총 거리 12km로 걸어서 약 4시간 걸린다. 주요지점으로 구례포해변, 신두리해안사구, 두웅습지 등이 있다.
‘소원길’은 신두리에서 만리포로 이어진다. 원유 유출 사고로 아픔을 겪은 소원길 구간은 전국 130만 자원봉사자와 지역주민이 힘을 모아 본모습을 찾은 곳이다. 총 거리 22km, 걸어서 약 8시간 걸리는 소원길에서는 소근진성, 방근제 황톳길, 만리포해변 등을 만날 수 있다.
‘파도길’은 만리포에서 파도리까지다. 태안해변길 구간 중 가장 짧지만 길 따라 시원한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파도길 매력이다. 총 9km, 걸어서 약 4시간 걸리는 파도길에서는 모항항, 어은돌 해변, 피도리 해변 등을 만난다.
‘솔모랫길’은 몽산포에서 출발해 드르니항에서 마무리한다. 솔모랫길은 해안생태계 구조를 잘 살펴볼 수 있도록 조성했다. 솔모랫길은 총 13km 구간으로 약 3시간 30분 걸린다. 주요지점은 메밀밭, 별주부마을 자라바위, 염전 등이다.
‘노을길’은 백사장항에서 꽃지로 이어진다. 노을길은 싱싱한 각종 수산물을 맛볼 수 있는 백사장항에서 시작한다. 노을길은 총 12km 거리로 약 3시간 40분 걸린다. 이 구간에서는 모감주나무군락지,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 등을 만날 수 있다.
‘샛별길’은 꽃지에서 출발해 황포항에서 끝난다. 샛별길은 몽돌로 이루어진 샛별해변이 매력이다. 총 13km 걸어서 약 4시간 걸리는 샛별길에서는 국사봉, 샛별해변, 황포항 등을 볼 수 있다.
‘바람길’은 황포항에서 영목항으로 이어진다. 바람길에서 만나는 바람아래 해변은 바다, 해안사구, 곰솔림으로 이루어진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총 구간 16km로 약 5시간 걸리는 바람길에서는 운여해변, 바람아래해변 등을 만난다.
태안해변길 중간에 만나는 ‘천사길’은 장애인 탐방구간이다.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임산부 등이 편하고 즐겁게 이용할 수 있도록 1004m 거리를 목재데크, 콘크리트포장으로 조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