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은 구태여 밖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스스로 한 세계를 품고 있다. 석회동굴은 석회암 지대 땅 표면에 스며든 물이 흘러가며 만든 지하수 통로가 넓어지며 생긴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동굴에 종유석, 석순, 석주 같은 동굴 퇴적물이 생겨나고 지하수의 용식 작용으로 계속 그 형태가 변한다.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바깥세상과 달리,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깊은 동굴은 바깥과는 다른 시공에 존재하는 듯하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동굴에는 사계절이 따로 없다. 바깥세상의 상황에 따라, 도피처나 안식처 구실을 했던 동굴. 색다른 경관으로, 속세의 일쯤은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는 곳, 동굴을 찾아 단양으로 떠난다.
- 단양 고수동굴
시간이 만든 이야기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고수리. 단양 고수동굴(천연기념물 제256호)로 향하는 길엔 주차장에서부터 여러 상점이 즐비하다. 1976년 개발 이후, 고수동굴이 예부터 간직하고 있던 모습은 흔한 관광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고수동굴 입구 바로 밑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변상순 할아버지는 동네 토박이로 옛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주차장 앞은 강변이었고, 돌퉁박이(자갈이 깔린)라 경관이 좋았다고 옛 시절을 회상한다. 할아버지에게 고수동굴은 누군가를 품어주는 존재였다.
“6·25 때 피난도 고수동굴로 갔지. 인민군이 내려와서는 고수동굴로 피난 갔던 사람들은 다 빠져나가고, 인민군이 거기에 병원을 차렸어. 고수동굴에서는 사람이 한 명도 죽은 일이 없어. 굴 앞에서 인민군이 미군 비행기 공습에 죽은 일은 있었지만….”
197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수동굴은 5억4000만 년 전에 생성된 석회동굴이다. 길이는 1700m, 면적은 1만8210평이다. 아직 개발하지 않은 구역이 있으며, 개발한 곳을 천천히 둘러보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5억4000만 년이란 세월 앞에, 고수동굴을 둘러보는 한 시간은 마치 먼지처럼 없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한 시간 동안 5억4000만 년이라는 긴 시간을 그저 짐작해 볼 뿐이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건 긴 어둠 그리고 천장에서부터 떨어지는 물방울, 바닥에 흐르는 지하수다. 어둠에 익숙해지고 처음 보이는 것은 곰바위다. 어미 곰이 새끼 곰을 안고 있는 형상이다. 신비한 자연에 인간이 직관적으로 붙인 이름이 정겹다. 동굴은 제 모습을 아무런 의도 없이 만들지만, 사람들은 그 모습에서 독수리를 읽어내고, 마리아상을 읽어낸다.
천장에서부터 자라나 고드름 같은 형태인 종유석은 1㎤ 만들어지는 데 5~10년 정도가 걸린다. 종유석의 길이를 가늠해 보면 고수동굴이 지나온 시간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다. 바닥에서 위로 자라는 석순, 석순과 종유석이 연결된 석주, 동굴속 여러 지형을 누군가 명명한 이름을 따라 감상하다 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A코스가 B코스보다 난이도가 높다. 그렇지만 B코스도 그 전에 거쳐 온 코스보다는 지나기 어렵다.
고수동굴의 상징이기도 한 사자바위는 B코스에서 볼 수 있다. 사자가 입을 벌린 형상의 사자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옛사람들에게 동굴이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자바위는 산삼 모양을 한 ‘동굴 산삼’을 훔치려고 동굴에 숨어든 사람을 응징하기 위해 동굴을 지키고 있다고 전한다.
A코스, B코스가 다시 만나는 곳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는 사랑 바위는 종유석과 석순이 서로를 향해 발돋움하고 있다. 종유석과 석순은 금방이라도 맞닿을 것처럼 보이지만, 평균적으로 100년에 1cm가 자라므로, 둘이 만나려면 10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그 긴 시간. 고수동굴에는 세월이 쌓여 있었다.
- 단양 천동동굴
박쥐 잡으려다 발견한 금빛은빛 세상
“할아버지들이 박쥐 잡아 구워먹는다고 저 반대편 산에 작은 굴을 누워서 망치로 깨 가며 들어갔지. 껌껌한 데 돌을 던져보니까 돌이 깊숙하게 들어가는 거야. 라이터 불을 켜 보니 보석이 막 그냥 다이아몬드, 금빛, 은빛….”
단양 천동동굴(충청북도 기념물 제19호) 입구 근처에서 옥수수를 파는 이필자 할머니는 1976년, 박쥐를 잡으려다 동굴을 발견한 남편이 전해준 이야기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필자 할머니의 남편을 포함한 동네 사람 여럿이 박쥐를 잡으러 갔다 발견한 천동동굴. 문화재로 지정·보호받고 있지만, 이곳 주민에게 천동동굴은 그저 삶의 터전이었다.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천동리 산17-1. 천동동굴이 있는 이 일대 마을은 천동, 샘골이라고 불렸다. 샘골이란 이름은 샘이 있다는 뜻에서 지어졌다. 천동동굴에서 흘러나온 물은 이 마을 생활수로 중요한 구실을 했다. 마을 사람들 이야기에 따르면 여름이면 차가워서 목욕을 못할 정도였고 겨울에는 언 걸레를 녹였을 정도로, 동굴에서 나오는 물은 바깥 날씨와 상관없이 비슷한 온도를 유지했다.
천동동굴 입구의 반대편으로 뚫린 동굴은 막았다. 천동동굴을 개발할 때, 지금 입구 쪽에 마을이 있고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천동동굴 주변에서 장사하며 생계를 이었다. 처음 개발이 되고는 동네 사람들도 천동동굴에 다른 지역 친척을 이끌고 구경을 갔다.
그때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이곳 사람들에게 지금의 천동동굴은 경이로움을 잃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천동동굴은 여전히 신비로운 세계다.
- 단양 온달동굴
온달장군이 수련한 곳일까
단양 온달동굴(천연기념물 제261호)은 길이 총 800m 정도, 4억 년 전쯤 생긴 동굴로 충북 단양군 영춘면 하리 147번지, 온달관광지 안에 있다. 온달동굴에 들어갈 때는 안전모를 꼭 써야 한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때문이기도 하고, 통로 천장이 낮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입구로 들어가 어느 지점까지는 줄곧 평평한 지형이 이어지는데, 난간 아래쪽에 설치한 조명이 예쁘게 비춘다. 흐르는 지하수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걷다 보면, 금세 난코스가 나온다. 천장에 머리를 찧어가며, 비좁은 통로를 오리걸음으로 걷다보면 바닥의 물기에 엉덩이가 축축해진다. 난코스의 정점은 ‘해탈문’이라 부르는 통로다. 이곳을 통과하면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일까. ‘해탈문’을 통하지 않더라도 출구로 갈 수 있어, 해탈의 경지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이들도 많다. 온달동굴에는 온달장군이 수양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우습게 생긴 얼굴로 ‘바보온달’이라 불린 온달장군. 온달장군도 온달동굴 이곳저곳을 허리를 굽히며 다녔을까? 후대 사람들이 ‘해탈문’이라 부르는 곳도 한 번쯤 지났을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온달 장군은, 장군이 되기 전에, 자신을 바보라고 부르는 세상에 해탈해 있었을지 모른다.
- 동굴 세상 밖, 온달을 만나다
단양 온달산성(사적 제264호)은 남한강변 성산에 축성된 반월형 석성이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성산고성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것이 지금의 온달동굴이다. 《여지도서》에서는 이 산성을 온달이 쌓았다고 기록해, 이로부터 온달산성이라는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단양 온달산성은 벽의 안팎을 모두 비슷한 크기 돌로 쌓은, 둘레 683m의 소규모 산성이다. 산길을 따라 한시간 정도 오르면 단양 온달산성이 보인다.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 풍경과 함께 하나의 그림을 만든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사지원리 산14번지에 있는 단양 사지원리 방단 적석유구(충청북도 기념물 제135호)는 태장이묘라고 불리며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지만, 온달장군 묘라고도 전해진다. 돌을 쌓은 기술이 신라의 산성 축성법과 같아 대략 7세기경에 쌓은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의 정확한 성격은 파악하기 어렵지만 예로부터 신성시되었던 곳이었다는 것을 주민 이야기로 알 수 있다.
“어렸을 때 이 돌담 위에 올라가서 놀면 어른들한테 혼났어요. 날이 가물면 큰 돌담에 기우제를 지냈어요. 개를 잡아서 피를 묻혔어요. 그러면 피를 씻으려고 하늘이 비를 내린다고….”
사지원2리 이장인 최종대 씨 말에 따르면, 17년 전 도로를 닦으며 포크레인 기사가 태장이묘를 없애려고 하던 것을 자신이 막았으나 당시 태장이묘 일부가 손실되었다고 한다. 그때도 계단 형태이기는 했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고, 돌담 형태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태장이묘의 처음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 한 이곳에 지금도 1년에 한 번 혼령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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