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말이 맞았다. 그는 싸구려였다. 그는 항상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싶었다. 잘못을 인정하면 더 이상 잘못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트루먼 카포티Truman Capote, <마지막 문을 닫아라> 중에서
잘못을 고백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건 때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고 격려를 받아 마땅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잘못을 고백'하는 걸 오히려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좋아한다는 표현이 너무 과한가? 나는 가끔 내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마음을 가까운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안달이 날 때가 있다.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어쩐지 내가 품은 어두운 마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나쁜 마음을 품었던 내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치 <마지막 문을 닫아라>의 월터처럼 잘못을 이야기함으로써 잘못이 사라진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용기가 필요한 일은 오히려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 게 아닐까? 내 스스로 어두운 마음을 품은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내 잘못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나를 내 안에 간직하는 것. 그게 훨씬 더 힘들고 숭고한 일이 아닐까?
우리는 용기를 내어 잘못을 고백하지만, 그것을 고백하지 않기 위해서, 때로 더 큰 용기를 내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쩌면 고백하지 않는 것이, 진짜 고백이 된다. 그것을 자기 안에 품고 견뎌 내는 것, 자기 자신에게만 고백하는 것이 진짜 벌이 되고, 그때에만 진짜 용서를 구할 아주 조그마한 자격을 얻게 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누가 기꺼이 그러려고 할까? 그때에는 신 외에는, 아니 신조차도 그를 용서하지 못할 텐데. 누가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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