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자, 아무것도 그에게 감추어져 있지 않다. 그는 드러나는 모든 것들 옆에 있지 않은 것이다. 기다림 속에서 모든 것들은 잠재적 상태로 되돌아간다.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기다림 망각》 중
인터뷰에서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영감이 언제 찾아오나요?" 나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영감은 찾아오지 않아요. 자리에 앉아서 어떻게든 첫 단어를, 첫 문장을 써야 합니다. 그건 무턱대고 기다린다고 해서 튀어나오는 게 아니지요." 글을 쓰려면 어찌됐든 '잠재적 상태'로 잠들어 있는 단어들을 적극적으로 깨워야 하는 것이다. 깨우기 전의 단어들은 백사장의 모래알들과 같다. 그것들은 아주 많고, 아주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하나하나 다 똑같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들은 눈앞에 드러나지만,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다가가서 그것들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하나하나 다 똑같이 보이던 것들에게 제 이름을, 제 색깔을, 제 모양을 찾아 주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번번이 그 모래알들과, 그 단어들과 사랑에 빠지고야 만다. 나야말로 사랑에 빠지기 직전의 '잠재적 상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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