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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1] - 추억과 향수를 위한 송가

이산저산구름 2012. 6. 18. 11:21

e북 읽어주는 남자 - mekia 북 칼럼니스트 김성희


원두막, 섶다리, 구멍가게, 서낭당, 죽방렴…. 우리 곁에서 점차 보기 힘들어지는 것들입니다. 뭐, 옛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고 효율이니 첨단이니 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어쩐지 아쉽다, 그립다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겝니다. 과거가 없이는 지금이 있을 수 없다고 여기는 그런 이들을 위한 책입니다.


언론인 출신이자 아마추어 사진가인 지은이가 발품을 팔아 사라져가는 것들을 뒤져내 사진으로 기록하고 이야기로 살을 붙였습니다. 원두막 편을 볼까요.


원두막은 참외나 수박 같은 과일을 훔쳐 가는 걸 감시하기 위해 밭 가장자리에 만들어 놓은 망루를 뜻하는 원두막은 예전 농촌에 가면 곳곳에서 볼 수 있었죠. 사방이 탁 트여 바람 솔솔 통하는 거기 누워 시냇물에 담갔던 수박이며 참외를 먹는 맛이라니! 땀 흘려 농사짓던 분들께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여름방학하면 원두막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원두막이란 말은 밭에 심어 기르는 오이, 참외, 수박, 호박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원두(園頭)’라는 말에서 온 것이라죠. 이 원두막이 사라진 것은 ‘원두’들이 이제는 주로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는 탓이기도 하지만 ‘서리’를 할 아이들이 농촌에서 보기 힘들어진 세태가 크게 작용했다고 지은이는 봅니다.


그러고 보니 ‘서리’란 말 자체도 만나기 힘들어졌죠. 아이들이 여름밤 낮은 포복으로 남의 밭에 들어가 수박 몇 개를 슬쩍 해다가 모여 먹던 그 장난은, 각박해진 요즘에야 좀도둑질로 치부되기 십상이죠. 그렇다고 그런 인심을 뭐라 하기도 힘듭니다. 아예 트럭을 대놓고 차떼기로 농작물을 훔쳐가는 이들이 등장했으니 말이죠.


원두막 대신 국도 변에 간이 가게를 차려놓고 현지 농산물을 파는 곳은 제법 늘었습니다. 원두막의 상업화라 할까요, 조금은 섭섭한 게 사실이지만 이를 섭섭해 할 이들도 점차 사라질 것이란 생각에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책에는 40가지 풍물이 실렸는데 농촌에만 한정한 것이 아니라 손재봉틀, 괘종시계, 풍금, 동네극장 등 60년대 도시 주변에서 만나던 것들에 관한 추억도 다뤘습니다. 심지어는 ‘똥개’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요즘엔 칙사 대접받는 애완견들이 넘쳐나니 ‘누렁이’를 만나기 힘든 게 사실이니까요.


풍물마다 각기 다른 주인공을 내세워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도 이 책의 미덕입니다. 그저 추억을 더듬는 것이 아니라 읽는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한 배려로 읽혔습니다. 여기에 '우마차의 낭만과 느림의 미학'을 공유할 수 있도록 각 글의 말미에 '기행수첩'을 실은 것도 눈에 띕니다.


KTX로 4시간이면 서울-부산을 오가는 시대지만 과거로의 여행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닙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웠던 시절의 추억을 돌아보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느낄 수도 있고, 자녀들과의 이야기거리도 생길 테니까요.


책 속 한 문장 도시에도 어느 동네나 구멍가게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달동네든 일반 주택가든 마을은 구멍가게로부터 시작되었다. 구멍가게의 규모가 그 동네 생활수준의 척도가 되기도 했다. 백화점이라고는 구경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 그곳에는 구멍가게가 바로 백화점이었다…뒤지고 뒤지면 구멍가게 안의 물건은 수백 가지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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