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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나라는 절경이라 할 만한 데는 모두 절이 들어앉았다”는 농을 하지요. 물론 요즘에야 경치 좋은 곳에는 대체로 펜션이란 것이 자리잡은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어지간한 절집은 들어서기만 해도 절로 마음이 숙연해질 정도로 사찰은 물론 주변 분위기도 범상치 않습니다. 그런데 명찰이란 데를 이곳저곳 기웃대다 보면 대웅전이며 조사전 등 건물 기둥에 용사비등한 붓글씨로 알아보기 힘들게 써놓은 글귀를 만나게 됩니다. 늘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왜 써 놓은 것일까 하고요.
그게 주련이랍니다. 사전에 기둥이나 벽 따위에 장식으로 써 붙이는 글귀라고 풀어 놓았더라고요. 이 책은 그 사찰들의 주련을 모아 풀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행기로 분류되었느냐 하면 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각 사의 주련들을 단순히 모아 풀이해 놓은 것이 아니라 절집을 찾아 두루 살피며 감상을 적고, 풍경을 묘사한 했기에 단순한 주련 해설집이 아니라 여행에세이라 할 수 있거든요. 여기에 공들인 사진들이 더해져 명상집 같기도 합니다.
“이 몸을 받기 전에 무엇이 내 몸이며/세상에 태어난 뒤 내가 과연 누구이던가/자라서 사람 노릇 잠깐 동안 나라고 하더니/눈 한 번 감은 뒤에 내가 또한 누구이런가”
이건 천등산 봉정사의 고금당 기둥에 적힌 글귀입니다. 원문이야 한자로 적혔으니 굳이 옮기진 않지만 청나라 3대 황제인 순치제가 출가하면서 쓴 시의 일부랍니다. 유아독존의 부귀영화를 누린 이가 다다른 사유의 끝이니 보통사람이 뭐라 토를 달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짧지도 길지도 않으시며/본래 희거나 검지도 않으며/모든 곳에 인연 따라 나타나시네” 이건 강화도 마니산의 정수사 법당 주련입니다. 지은이는 ‘작지만 아름다운 절“이라 표현했는데 정작 주련은 깊고 그윽한 뜻을 담았습니다. 반드시 불교를 믿지 않더라도 신의 섭리라는 걸 생각하게 만들죠.
“주련은 단박에 혀에 착 감기는 맛이 아니라 생각을 일으키는 쓴맛과 같다.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생기를 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한결같이 뛰어난 글로 되어 있어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온다”는 지은이의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어떻게 가고, 무엇을 먹고, 어디서 묵을지 아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여행서입니다. 그렇지만 올 여름 산을 찾는다면, 그리하여 거기 들어앉은 절집을 가게 될 때 동반하면 좋을 책입니다. 산중에 묻혀 사는 이들의 속깊은 생각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니 말입니다. 아니, 특별히 산사로 걸음하지 않더라도 집안에서 서늘한 깨달음을 만날 수 있는 책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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