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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 사람의 전쟁』

이산저산구름 2012. 4. 25. 12:55

 

『나 한 사람의 전쟁』

 

책과 세상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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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 사람의 전쟁』


작년 이맘때쯤 나는 나름 내가 친했다고 여긴 한 출판사 대표에게 많이 섭섭했다. 그의 남편이자 시인이며 편집자인 윤성근 씨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었는데 그가 작고했음에도 부고를 해주지 않아 많이 섭섭했다. 물론 나는 윤 시인이 말기암으로 투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때 내가 섭섭함을 말하자 그 출판사 대표인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나중에’ 그 이유를 알려주겠다고 말해놓고는 지금껏 내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오늘 나는 그 답변을 들었다.


1주기인 오늘 도착한 윤성근 시인의 유고집 『나 한 사람의 전쟁』(마음산책)에는 투병에서 자기구원에 이르는 과정에서 쓴 시들이 실려 있다. 김승희 시인은 발문에다 다음과 같이 썼다. “(윤 시인이)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그는 시집 원고를 정리해서 아내에게 넘겼고 ‘부고하지 말 것과 동시에 1주기 때 유고 시집을 만들어달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따라서 이 시집은 시인이 생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한 것이고, 시와 산문 제목, 토씨 하나까지 다 사인이 남긴 그대로이다.”


나는 이 시집을 통해서 드디어 ‘답변’을 들은 것이다. ‘나중에’는 결국 이번 유고시집이 나올 때였던 것이다. 속 좁았던 나는 정은숙 대표에게 많이 미안했다. 유고시집에 실린 윤 시인의 시 두 편만 함께 읽어보자.


아내가 고등어조림을 맛있게 해줬다.

비가 와서 파리공원 산책로의 우레탄이

비단처럼 부드러워졌다.

산책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와

담배를 꼬나문 아저씨를 만났지만

짜증은 내지 않았다.

나의 돈 쓰는 단위도 병원비를 제외하면

동그라미가 두 개쯤 빠졌다.

아내의 음식 솜씨가 나날이 좋아진다.

나의 식욕과는 무관하게. (「축복받은 저녁」 全文)


외로운 날에는 혼자 있게 하소서.

슬픔이 차오를 때는 아무도 곁에 없게 하소서.

아무것도 바라지 말게 하시고

앞의 것들이 너무 큰 바람이면 내일은 적게 바라게 하소서.

용서해주시고, 더 이상 용서를 빌지 않게 하소서.

바라건대 더 큰 고통은 조금만 주시고

그리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지능을 갖게 하소서.

이런 것들이 너무 큰 바람이라고 할지라도

해량해주소서. (「고해」 全文)

 

 


윤성근 시인은 필 맥그로의『리얼 라이프』를 읽고 나서 “인생은 그저 인생”이라는 자기

 

구원을 얻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두 손 모아 윤 시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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