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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데이 (1886)

이산저산구름 2011. 4. 30. 09:15

메이데이 (1886)

국제 노동절로 기념되고 있는 메이데이가 원래 축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1856년 호주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를 주장하며 하루동안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축제를 벌이기로 한다. 처음 정한 날짜는 4월 21일이었고 연례행사도 아니었으나, 첫 해의 성공에 힘입어 4월 21일 무단 휴일을 갖는 전통이 이어지게 된다.

이는 미국 노동운동에 영향을 주어 미국 노총은 1886년 5월 1일 8시간 노동제 도입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다. 그리고 30년의 축제는 여기에서 끝난다.

5월 3일 파업의 중심지였던 시카고에서 경찰이 파업 중인 노동자들에게 실탄을 발사하여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다음날 이를 규탄하는 30만명이 참가한 집회가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 있었는데, 갑자기 폭탄이 터지면서 경찰관 70명이 다치고 7명이 숨지게 된다. 이에 경찰은 노동운동 지도부를 폭탄 테러범으로 몰아 대대적인 체포작전을 벌여 그중 8명을 재판에 회부한다. 결국 이들 중 4명은 교수형을 당하고 1명은 감옥에서 자살했으며 나머지 3명은 국제적인 항의운동 덕분에 나중에 석방된다. 노동자들은 재판에 회부된 지도자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옷깃에 붉은 장미를 달았다. 그로부터 7년 후 당시 구속 또는 사형된 노동운동가들은 모두 무죄로 증명되었다.

헤이마켓 집회 당시를 묘사한 신문 삽화

1889년 7월 세계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모인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는 8시간 노동쟁취를 위해 투쟁했던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5월 1일을 세계 노동절로 정한다. 그리고 1890년 5월 1일 제1회 대회를 치른 이후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과시하는 국제적 기념일로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절 행사는 1923년 일제 식민지 시절 조선노동총연맹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그러다 1957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3월 10일 대한노총 창립일이 '근로자의 날'이란 이름으로 지정되면서, 메이데이는 사회주의 국가의 경축일이라는 이유로 금기시되었다. 메이데이가 노동절로 복원된 것은 1994년 국회에서 근로자의 날을 3월 10일에서 5월 1일로 옮기도록 법률을 개정하면서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 명칭은 노동절 대신 근로자의 날로 남아있다.
메이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