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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광인, 차별과 배제를 거부한 이언진

이산저산구름 2011. 4. 13. 14:57

 

 

문제적 지식인의 삶의 궤적과 상상력
이언진은 역관이다. 역관은 중인 신분으로 실무능력을 갖춘 전문 지식인이다. 이언진은 지식을 가진 점에서 사대부와 가깝지만, 조선의 사대부들은 중인을 비천하게 여겼다. 그들은 중인의 능력을 보기보다 신분질서라는 경계의 틀로 중인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언진은 외국어에 능통하여 중국과 일본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세상 물정에 누구보다 밝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없었다.


이언진은 종이에 붓을 대기만 하면 세상에 전할 만한 작품을 지었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았으니, 자신을 알아줄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남에게 이기려 들지 않았으니 자신을 이길 상대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송목관집서松穆館集序>


이언진의 스승인 이용휴(李用休, 1708~1782)는 자신의 제자를 세상에 걸출한 존재로 보았다. 학문과 문학의 원숙한 경지에 들어선 스승의 눈으로도 20대에 불과한 젊은 이언진의 문학적 수준과 깊이를 인정한 발언이다. 누구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이언진의 문학적 창조성을 부러운 시선으로 언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용휴는 다른 글에서 “벽을 어떻게 걸어서 지나갈 수 있겠는가? 이언진이야말로 바로 이 벽과 같은 존재다.”라 하여 이언진의 진면목에 찬탄해 마지않거니와, 실제로 이언진은 글쓰기의 천재였다.  


무엇보다 이언진은 조선 사회가 가한 온갖 차별과 배제의 현실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아’를 지탱하면서 그러한 시대에 새로운 사유와 개성적인 한시로 시대에 저항하였다. 이를 통해 자신만의 가치와 언어, 그리고 뛰어난 감성과 상상력으로 현실을 전복하고 새로운 가치와 사회를 꿈꾸었다. 이언진은 자신이 생각하고 추구하는 문학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으며 시대에 맞선 것이다.


나만의 길을 꿈꾼 주체적 행보
이언진은 자신이 남긴 작품이 결코 의미 있게 취급되지 못하는 세상과 불화하며 끝까지 저항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사회적 구속에서도 각성된 주체의 힘으로 자신만의 자유로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러한 길은 외롭지만 자아를 확인하는 ‘나만의 길’이라는 점에서 시대성을 지닌다. 이언진이 자신의 시문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도 이러한 인식의 소산이다.


답장을 올립니다. 소생은 시문을 지어, 남에게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고 세상에 전해지기를 구하지 않으며, 나 혼자 즐길 뿐입니다. 한 축을 억지로 집사에게 빼앗겨서, 그것이 다른 이의 안목에 전파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얼굴이 붉어져 땀이 솟는 것을 그치지 못합니다. 그간 지은 여러 시들은 지금 모두 한바탕 불길에 주어버려, 한 조각 종이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소생이 집사에게 대해서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옅지 않지만, 이것은 곧 평소의 정견이므로, 비록 오정을 얻더라도 내 뜻을 빼앗지 못할 터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해량하소서.           ― <답상서答上書>


이 편지는 1766년, 그가 죽은 해에 보낸 것으로 보인다. 서얼시인 성대중(成大中, 1732~1812)이 이언진의 시문을 보기 위해 부탁한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이언진은 평소 자신의 시문이 남에게 알려지거나 스스로 인정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로 정중하게 거절한다. 이언진은 자신이 쓴 글을 ‘유희고游戱稿’ 혹은 ‘구혈초歐血草’라고 부르곤 하였다. ‘유희고’는 누구에게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기 위한 자오自娛한 것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단순히 혼자 노는 유희의 성격을 넘어 자기 존재를 표현하고, 자기 존재를 실현하는 그러한 것이다. ‘구혈초’라고 부른 것은 피를 토하며 쓴 글이라는 사전적 의미보다 스스로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을 의미한다.

 

어쩌면 이언진의 시문은 신분 하나로 모든 능력을 배제하는 사회에서 살아 온 그 억울함과 울분을 심혈을 기울여 담아내었기에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언진은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쉽게 줄 수 없고, 주더라도 자신의 시문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괴감마저 깔려 있다.

 

이언진은 죽기 직전 자신의 글을 모두 불에 태웠다. 다행히 그의 아내는 이언진의 작품 일부를 불에서 건졌다. 그의 문집 『송목관신여고松穆館燼餘稿』는 바로 불태워지고 남은 원고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언진은 이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진정한 사람이 없어 원고를 불살라 버리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이는 절망에서 나온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지만, 이 역시 기성 질서와 세상에 대한 이언진의 저항의 한 모습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글 진재교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