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싶은 글

시대의 이단아, 허균

이산저산구름 2011. 2. 18. 00:40

 

인간 허균,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 

 

허균은 서얼들과 교유하였다. 신분이나 처지가 다른 인물과 속내를 소통하며 벗하는 모습은 매우 인간적이다.  

 

“나는 큰 고을의 원님이 되었다네. 마침 자네가 사는 곳과 가까우니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으로 오시게. 내가 응당 봉급의 절반을 들어 그대를 대접하리니, 결코 양식을 떨어지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네. 자네와 나는 서로 처지야 다르지만 취향이 같고, 자네의 재주가 나보다 열 배는 뛰어날 것이네. 그렇지만 세상에서 버림받기는 나보다도 심하니, 내가 이 점을 언제나 기가 막히게 생각하고 있다네. 나는 비록 운수가 기박해도 몇 차례 고을의 원님이 되어 자급자족할 수 있지만, 자네는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면하지 어렵구려. 세상의 불우한 사람은 모두 우리들의 책임일 것이라네. 나는 밥상을 대할 때마다 몹시 부끄러워 음식을 먹어도 목에 넘어가지 않으니, 빨리 오시게. 오기만 한다면 비록 이 일로 내가 비방을 받는다 해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네.” ― <여이여인與李汝仁>

 

허균이 1608년 1월에 공주목사로 부임한 이후 절친한 벗에게 부친 편지다. 벗인 이재영李再榮의 부친은 판서였으나, 모친은 사비私婢였다. 따지면 이재영은 서자가 아닌 호부호형呼父呼兄조차 못하는 얼자子인 셈이다. 허균은 그런 처지의 얼자를 벗으로 두었으니, 참으로 특이한 만남이다. 허균이 시를 배운 스승 이달李達 역시 서얼 출신인 점을 감안하면, 명문거족의 허균이 서얼에게 시를 배우고 벗을 한다는 것 역시 이례적이다. 당대 양반들은 사회 규범과 가치를 뒤흔드는 허균의 이러한 행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양반들의 시각과 달리 허균은 너무나 인간미 넘치는 인물이었다.  허균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재주와 능력을 지닌 벗이 단지 서얼이라는 이유만으로 벼슬길에 나가지도 못하는 것을 벗의 처지에 십분 공감한다. 이러한 벗의 궁핍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내면의 진정성이다. 허균이 공주목사가 되자, 벗을 위해 자신의 봉급 반을 때내어 줄 테니 같이 살자는 요청은 진심어린 모습이다. 아무리 친한 벗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봉급을 반을 내어 가족까지 함께 살기를 권하는 경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서얼의 벗에게 이렇게 요청한 것은 궁핍한 벗의 처지에 내면으로 공감하고, 자신의 진정성을 벗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기에 가능했을 터다. 허균은 자신의 이러한 행위가 양반들로부터 비난받더라도 상관없다고까지 했으니, 참으로 인간적이다. 

 

예교禮敎 넘어, 마음의 만남

 

허균은 공주 목사가 된 지 8개월 만에 암행어사로부터 성품이 경박하고 품행이 무절제한 것으로 지목받아 파직당하고 만다. 당시 양반들은 허균의 품행을 문제 삼아 죄를 물었지만, 허균은 여기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는 부안으로 내려가 산천을 유람하며 기생 계생桂生 만나고, 천민출신 시인 유희경柳希慶과도 만나 교유한다. 허균은 규범과 예교를 넘어 인간으로 만나 정감을 소통하고 마음으로 만나기를 진정으로 원하였다. 그는 이를 가로막는 어떠한 규범과 제도도 거부하였다. 오직 마음이 통하는 벗과 만나기를 진정으로 원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으로 옮기고 그대를 자주 만나리라 하여 기뻐하였는데, 몇 달이 되도록 만나지 못하였네. 일이 있을 때마다 서글퍼지는데, 오직 자네가 찾아와 서글픈 마음을 해소하는 일이 더디어 하루가 천 년같이 지루하네. 물줄기 하나만 건너면 되는 거리이니 급히 서둘러 오도록 하게.” ― <여이여인與李汝仁>

 

1611 3월에 다시 서얼 벗인 이재영에게 보낸 편지다. 속내를 툭 터놓을 수 있는 오랜  벗에게 세속의 일에 골머리를 썩는 자신의 심정을 말한다. 자신의 봉급 반을 떼어 벗에게 주면서 함께 살자고 한 앞의 편지와는 사뭇 다르다. 오직 서글픈 마음을 털어내고 하루가 천 년 같이 지루한 날을 풀어 줄 사람은 오직 벗인 이재영 뿐이라고 하소연한다. 여기서 신분을 뛰어넘은 만남의 참모습을 읽을 수 있다. 허균은 벗과 마음으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벗을 사랑하는 허균의 방식인 셈이다. 시대를 넘어 변혁을 꿈꾸던 시대의 이단아 허균 역시 벗과 내면을 주고받기를 바란 감정을 지닌 인간이었다. 그가 적서를 차별하는 사회의 규범과 제도에 비판적 시선을 보낸 것은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마음으로 만나는 사회를 꿈꾸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글 / 진재교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